처음 한담해안산책길을 걸었을 때는 그저 예쁘기만 했다. 곽지해변까지 연결된다는 점도 좋았고 그 길이가 왕복 2.4km 정도인 것도 마음에 들었다. 소소했지만 훌륭했다.
한담해안산책길 한쪽 끝에는 ‘장한철 산책로’라고 쓰인 비석이 하나 서 있다. 장한철이 누구인가 했더니 ‘표해록’을 쓴 사람이란다. 조선 영조 시절, 장한철은 육지로 나가 과거를 보고 싶어 했다. 1770년, 드디어 한양길에 오르지만, 풍랑을 맞아 유구제국(오키나와) 등을 거쳐 5개월 만에 다시 제주도에 돌아온다. 그 이야기를 쓴 것이 '표해록'이다.
이런 그의 이야기를 읽고 나니 마음이 아파졌다. 얼마나 좌절했을꼬…
그에게 이 길은 그냥 길이 아니었을지 모른다. 육지에 가지 못해 찢어지는 마음을 달래던 길이었을 수도 있지 않겠는가. 하고자 했으나 ‘어쩔 수가 없어’ 하지 못하는 상황. 나도 그 고통을 안다. 나도 스무 살 때 세상엔 어쩔 수 없는 일도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 이후로도 내 의지로도 될 수 없는 일이 수두룩했다.
다시 장한철 산책로를 걸었을 때 감회가 남달랐다. 어쩐지 이 길을 걷고 나면 나의 좌절이 사라져버릴 것 같았다. 꼬불꼬불, 올랐다 내려갔다, 요동치듯 고요하듯 걷고 나면 그까짓 거, 어쩔 수 없으면 없는 대로,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지 뭐~ 라는 생각이 고개를 내민다.
이어지는 곽지과물바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제주바다. 특히나 노을이 지는 바다를 보고 있으면 평안해진다.
지금 안된다고 조급해하지 말자.
결국, 안되더라도 슬퍼하지 말자.
최선을 다하면 그것으로 된 거야.
장한철은 결국 육지에 올라 과거를 봤고 ‘대정현감’이 되었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