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제주한담

해녀를 처음 만난 날(우도에서)

by 홍난영

2014. 6. 25에 있었던 일을 추억함


차를 가지고 일찍 우도에 갔던 날이다. 국수여행 일환으로 우도에 있는 짬뽕집을 가려고 했던 건데 거기 오픈 시간이 9시라고 해서 맞춰 갔던 것이다. 도착하고 보니 8시 30분. 이거 시간이 너무 남는걸. 혹시나 해서 9시도 되기 전에 식당 앞에서 서성이고 있자니 직원들은 왔다 갔다 하는데 아직 오픈할 생각은 없는 것 같았다.


너무 일찍 왔어. 오늘의 메인 일정은 짬뽕 먹기인데. 8시 50분까지 그 앞에서 서성이고 있자니 직원분이 그러신다. 9시 30분까지 오시라고.


티 났나? 적당히 9시 넘어서 오면 될 것은 나는 왜 이렇게 일찍 서둘렀을까. 어떤 식으로든 시간이 정해지면 그때부터 내 마음은 급해진다. 울 엄마도 그랬단다. 어쩔 수 없다. 경이로운 유전의 힘.


어떻게 시간을 때울까 하다가 그냥 우도 한 바퀴를 돌아보기로 했다. 우도는 작으니까 한 바퀴 돌면 얼추 시간이 맞을 거야. 뭐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이참에 우도를 돌아보는 거지 언제 돌아보겠어. 난 호기롭게 내비도 켜지 않고 무작정 가보기로 했다. 바다를 끼고 돌면 되지 않을까? 작은 섬이잖아.


차를 몰고 설렁설렁 가고 있는데 웬 돌탑들이 보인다. 어쩐지 돌들이 쌓여있으면 눈길이 간다. ‘소원기원 돌탑길’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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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나라 사람들도 그러는지는 모르겠지만 한국 사람들은 돌이 보이면 일단 쌓는 것 같다. 그렇게 쌓인 것이 이런 예쁜 풍경을 만든 것인지, 예쁜 풍경을 만들려고 일부러 쌓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재미있는 광경이기도 해서 천천히 둘러보며 차를 몰았다. 그런데 갑자기 백미러, 사이드미러로 시커먼 게 주르르 보이는 게 아닌가. 뭐지? 갑자기 끼어드는 이 꺼멍배경은 뭐지?


맙소사. 해녀들이었다.


심장이 쿵쾅쿵쾅 뛰기 시작했다. 나는 주변 풍경을 보기 위해 차를 멈추는 척, 펼쳐져 있는 돌탑들에 시선을 꽂으며 차에서 내렸다. 그 와중에도 검정 해녀복을 입은 그분들은 삼삼오오 테왁과 망사리를 들고 걸어오셨다. 내게 이런 행운의 시간이 주어질 줄이야. 나는 그저 불턱을 보는 것만으로도 이미 감동을 했잖은가. 그 와중에 몇 그룹은 나를 지나쳐 가셨고 그중 몇 분은 내가 서 있는 곳에서 바다로 내려가시는 게 아닌가. 오마이갓.


차마 말을 걸 용기는 없었다. 하지만 그 자체가 너무 좋았다. 나는 해녀분들 사이에 끼어 있었다. 그걸로 충분했다. 더할 나위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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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SC03568.JPG 사진도 그저 멀리서


한참을 바라보았다. 해녀분들이 바다로 내려가서 오리발을 삐쭉 내밀며 바닷속으로 들어가실 때까지. 주황색 테왁이 떠오르는 게 내게 있어선 태양이 눈부시게 떠오르는 것과 같았다.


인생은 참 재미있다. 예상하지 못했던 순간에 기회(?)가 다가오기도 한다. 모든 기회를 다 잡을 필요는 없겠지만, 그 순간 내가 거기 있어야 잡을 수도, 놓을 수도 있다. 난 짬뽕을 먹기 위해 아침 일찍 바다를 건너왔는데 짬뽕 대신 해녀를 먼저 만났다. 만약에 짬뽕집 오픈이 10시였다면 나는 이 순간을 맞이하지 못했을 거다.


사람이 그저 흐르는 대로 살 수밖에 없다면 그냥 따르는 것도 좋겠다. 가끔은 이런 행운을 만나기도 하니까(소원기원 돌탑길에서 소원이 이루어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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