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국수여행에서 꼭 먹어봐야 할 국수 중 하나는 바로 꿩메밀국수였다. 태어나서 아직 꿩요리를 한 번도 먹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꿩은 내 마음속의 진기한 식재료였다.
지금이야 만나기 어려운 꿩이지만 적어도 19세기까지는 닭이 꿩보다 더 귀했다고 한다.(《식탁 위의 한국사》, 주영하 지음, 휴머니스트, p.144). 바꿔 말하면 이때까지는 꿩이 더 구하기 쉬웠다는 거다.
하기사 당시에 집집마다 키우던 닭은 매일 알을 낳아주는 귀중한 가축이었을 테니 그런 닭을 쉽게 잡아먹진 못했을 거다. 차라리 사냥으로 꿩을 잡아먹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었을 거다. 그래서인지 조선시대 문헌엔 닭과 관련된 요리가 많이 보이지 않는단다. 이때만 해도 ‘닭 대신 꿩’이었다. 실제로 꿩이 오히려 보편적이었기에 냉면을 만들 때도 꿩 육수를 사용했을 거다.
꿩은 예전부터 한반도 전역에서 흔하게 서식했다고 한다. 제주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직도 제주엔 꿩이 제법 있는 모양이다. 걷다가 산 쪽에서 날아오르는 꿩을 본 적도 있다.
제주 중산간 사람들은 꿩을 잡아 음식을 많이 해 먹었다고 한다. 꿩엿도 있고 꿩조배기도 있다. 조배기는 수제비의 제주말로 손으로 조바(뜯어) 넣는다고 하여 조배기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한국인의 밥상>, 247회, 웃뜨르에 가봅서, 제주 중산간 밥상).
하지만 시대가 바뀌고 닭이 대량으로 길러지자 꿩의 입장이 바뀌었다. ‘꿩 대신 닭’ 시대가 온 것이다. 이제 꿩은 ‘향토음식’이라는 이름으로 존재하고 있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제주시 동문시장에는 꿩국수가 있다. 꿩메밀국수를 시키면 걸쭉한 국물의 국수가 한 그릇 나온다. 뭉텅뭉텅 썰린 메밀국수에 무와 조미김, 그리고 파 송송, 그리고 먹는 중간중간에 씹히는 꿩고기가 특징이다.
메밀은 찰기가 없어 뚝뚝 끊기기 때문에 메밀 100%라면 이곳처럼 짧은 토막처럼 나올 수밖에 없다. 그래서 나중엔 숟가락을 퍼먹었다. 국물은 꿩 육수에 메밀가루를 풀었다. 꿩은 메밀과 궁합이 잘 맞고 메밀은 무는 궁합이 잘 맞는다고 하니 삼박자가 딱딱 맞는 국수다. 담백하고 구수하다.
꿩메밀국수는 제주지역에서 간간이 보이지만 역시 ‘향토음식’화 되어서 그럴까, 현재는 닭칼국수가 더 많이 보인다. 특히 제주의 교래리에는 닭음식점이 많이 조성되어있다. 교래리는 1970년대 말부터 토종닭을 집 마당이나 텃밭 등에 풀어 사육해 토종닭 마을로 널리 알려졌고 2009년에는 토종닭 유통특구로 선포되기도 한 지역이다.
교래리에선 두 곳에서 닭칼국수를 먹었다. 저마다의 차별화가 엿보였다. 관광객에게 유명한 곳의 닭칼국수엔 살코기가 아닌, 토막 닭이 올라온다. 그래서 손으로 잡고 뜯어먹어야 한다. 살면서 닭칼국수를 먹으며 맨손을 사용할 줄을 몰랐다.
먹다가 식당 풍경을 슬쩍 바라보니 많은 사람들이 닭을 잡고 뜯고 있었다. 칼국수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은 아니니 꼭 한 번 보길 바란다. 그렇게 한 그릇 먹고 나면 속이 든든해진다. 주머니 가벼운 여행자라면 닭을 먹기 위해서라도 닭칼국수를 먹으러 와야 할 것 같다. 마치 회를 먹기 위해 회국수를 먹듯 말이다. 게다가 토종닭이라니 여행하다 허해졌다 싶으면 교래리로 가는 거다.
교래리의 다른 식당은 아예 식당 옆 마당에 닭을 직접 키운다. 그래서 식당에 일찍 가면 직접 키운 닭들이 낳은 유정란을 먹을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다. 아침마다 유정란을 거둬 반숙 고명을 만들어 한정으로 손님들의 닭칼국수에 고명으로 올린다고 한다. 탐나는 알이다.
여기도 토막 닭이 고명으로 올라오는데 독특한 것은 마치 간장으로 요리한 닭볶음탕 같다는 거다. 닭을 먼저 간장으로 조린 후 칼국수를 만드는지 국물이 간장 빛이다. 여기도 손으로 닭을 뜯게 만든다. 심지어 닭을 뜯다 보면 밥이 땅긴다. 닭볶음탕 같아서 그렇다. 결국 공기밥 하나를 시켜 국물에 말아도 먹고 닭과 함께 먹었다. 식욕을 부르는 닭칼국수다.
이들 국수를 먹고 나니 꿩과 닭, 모두 한 마리 든든하게 먹어보고 싶어 졌다. 꿩은 샤브샤브, 구이, 탕 등이 있고 닭은 한 마리 코스가 있는데 닭가슴살 회에서부터 백숙까지 코스 형식으로 나온다고 한다. 욕심난다.
꿩 대신 닭이면 어떻고 닭 대신 꿩이면 어떠랴. 둘 다 맛있는 것을. 국수로도 먹고 그 자체로도 먹고. 캬, 그저 행복한 이 세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