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에 유래된 순대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단다. 바로 함경도 순대와 제주 순대다. 황광해 음식칼럼니스트에 따르면(데일리한국 : [이야기가 있는 맛집] 순대 편) 이들 순대는 ‘순대’라는 이름은 같지만 서로 다른 경로로 한반도에 유입되었단다. 두 가지의 순대는 이렇다.
우선 제주 순대. 제주는 고려 때 100년간을 원의 직접통치를 받았다. 원은 몽골이 세운 제국으로 널리 유럽의 땅까지 정복했었다. 몽골족은 유목민이고 그 때문에 휴대용 식량이 발달했다. 순대도 그런 음식 중 하나였다. 이것이 유럽에 전파되어 소시지를 만들고, 제주에 전파되어 제주식 순대인 ‘피순대’를 만들 었다고 한다.
반면 함경도 순대의 기원은 이렇다. 조선 초, 당시만 해도 함경도는 이민족의 땅이었다고 한다. 따라서 함경도식 순대는 현지에 살고 있던 이민족들이 먹던 음식이었다는 거다. 함경도 순대는 한국전쟁 때 강원도 등으로 피난을 간 사람들에 의해 각지로 전파됐을 거라 추정했다.
함경도 순대와 제주순대의 가장 큰 차이는 ‘피’의 양이다. 육지는 채소, 곡물과 함께 피를 약간 섞어 만들었지만 제주는 대부분이 피다. 내가 듣기로는 피에 메밀가루를 함께 넣어 퍽퍽을 넘어 뻑뻑한 것이 특징이라 했다.
제주엔 이런 순대가 들어간 국수가 있다. 가시리에 있는 나목도 식당이다. 이 식당은 돼지고기 전문식당이긴 하지만 독특하게 순대국수가 있다. 그런데 이 순대국수가 내가 상상했던, 순대국에 국수를 만 형태가 아니었다. 온전히 국수를 위해 몸 바친 돼지의 야심 찬 변신이었다. 돼지부속고기들은 형태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자잘했고 피로 빡빡이 속을 채우고 있는 순대 두 알. 그리고 칼국수 뺨치는 굵기의 국수. 그것은 내 생애 첫 순대국수의 모습이었다.
식당 직원 분은 걱정스러우셨는지 내게 물었다.
“먹을 수 있겠어요?”
맞다. 어려운 도전이긴 하다. 난이도가 높은 국수다. 그래도 다행이라면 내가 돼지부속고기를 좋아하고 순대국밥도 좋아한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이 순대 스튜 같은 국물과 면은 비교적 무난하게 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순대라는 마지막 난관에 부딪히고 말았다. 피로 꽉 찬 이 순대는 솔직히 쉽지 않았다.
서울에서 흔히 먹던 당면순대나 순대전문점에서 먹을 수 있는 부드러운 식감의 순대와 완전히 달랐다. 일반 순대라면 쑤욱, 이가 박힐 텐데 이 순대는 조금 더 힘을 줘야 한다. 빡빡함이 느껴진다. 게다가 익숙한 맛도 아니었다. 순대가 두 알 들어있었길 망정이지 그 이상 있었으면 고민했을 것 같다. 정말이지 최고로 긴장감이 흐르던 국수였다.
누가 이런 순대국수를 만들었을까? 혹시 국수의 고수가 아닐는지. 평범한 국수는 이미 다 평정했다, 내겐 난이도 높은 국수가 필요할 뿐이다. 그래 서 세상을 등지고 산속에서 돼지들과 함께 지내며 한 그릇의 새로운 순대 국수를 만들어냈으니. 국수 고수가 되려는 자, 내게로 오라. 이 한 그릇의 순대국수를 맛보고 즐길 수 있다면 그대는 고수. 이런 상상이 되는 국수다.
사실 이 순대국수는 먹으러 갈 때도 약간의 용기가 필요하다. 식당에 들어갔을 때, 그곳이 돼지고기 전문점인 만큼 모든 테이블에선 고기를 구워 먹고 있었다. 뻘쭘했지만 용기 내어 가게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가 물었다.
“순대국수만 따로 먹을 수 있어요?”
이렇게 물어본 이유는 순대국수의 가격이 무척 싼 3천 원이었기 때문이다. 보통 이런 가격의 국수는 고기를 먹은 사람에게 서비스 형태로 판매하지 않던가. 나는 고기를 먹어야만 순대국수를 먹을 수 있는 게 아닐까 싶었다. 하지만 국수만 먹을 수도 있었다.
테이블 하나 차지하고 3천 원짜리 국수 한 그릇 먹으려니 조금 미안해졌다. 하지만 그보다 더 컸던 감정은 외로움이었다. 모두들 고기를 먹을 때 나 홀로 순대국수를 먹는 외로운 경험을 감수해야 한다. 그때의 외로움 때문에 나중에 제주로 이사 오고 나서 다시 한번 가서 당당히(?) 고기를 구워 먹었다.
그런 면에서 순대국수는 경험으로도, 맛으로도 순대국수 라인의 최고 레벨이다. 순대국수에 도전해보고 싶은 사람은 일단 난이도가 낮은 국수장터의 순대국수, 그다음 레벨의 가시식당 순대고기국수를 먼저 먹어보는 게 좋겠다. 여기까지 올라와서 문제가 없었다면 이제 나목도의 순대국수를 즐겨보자. 여기 순대국수도 끄떡없다면 그대는 고수~ 세계로 뻗어나갈 차례다. 한국은 너무 좁다, 나가자 세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