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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난영 Apr 02. 2019

남들과 다른 나만의 속도

며칠 전부터 라라가 밥그릇을 앞에 두고 멍을 때리고 있었다. '그렇지'라는 말과 함께 밥 먹기를 시작했던 라라. 먹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강아지가 왜 그랬을까? 


우리 집엔 강아지가 다섯 마리 있다. 우리 아이들인 탐탐, 라라, 제제, 주주(이하 탐라제주)와 임시보호 중인 블랙이까지. 거실에서 여기저기 조금씩 흩어져서 밥을 먹는다. 그 와중에 라라가 며칠 전부터 멍을 때리기 시작한 거다. 


물론 다견가정에서 밥을 줄 때는 최대한 멀리 떨어뜨려 주라는 이야기를 듣곤 했다. 가능하다면 각 방에서 주면 더 좋다고. 하지만 아이들이 다섯이나 되나 보니 편의상 거실에서, 하지만 되도록 떨어뜨려 밥을 주곤 했지만 그럼에도 라라는 그게 불편했던 모양이다. 하기사 라라는 가장 늦게 먹는 아이다. 다른 아이들은 밥을 다 먹고 어슬렁거린다. 남의 밥을 뺏어먹지 못하도록 교육은 시켰지만 어슬렁거리는 것까지는 막을 수 없다. 


오늘, 늘 하던 대로 밥을 줬다. 그런데 '그렇지'라고 여러 번을 이야기해도 라라가 통 밥을 먹지 않는다. 다른 아이들이 다 먹고 어슬렁댈 때까지 먹지를 않았다. 나중엔 으르렁거리며 밥 지킬 생각만 하지 먹지를 않는다. 그래서 방에 들어가 밥그릇을 놓아주고 방문을 닫아주니 그제야 먹는다. 라라는 그렇게 한참을 느릿느릿 먹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제주로 내려오기 전의 내가 떠오른다. 


나는 느린데 남들은 저 멀리 달려 나갔다. 멀어져 가는 그들을 보며 조바심이 생겼지만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나는 이대로 패배하는 건가, 라는 두려움이 치밀어 올랐다. 그러면서 멘탈은 무너져 내렸고 더더욱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랬지. 그런 과정을 통해 제주에 내려오기로 마음먹었었지. 그러면서 서울보다는 조금은 느린 제주에서 마음의 안정을 찾아갔었지. 


라라 또한 그랬을지 모르겠다. 가장 가까운 곳에서 밥을 먹는 주주는 그야말로 흡입을 하는 아이다. 라라는 주주의 속도를 보며 조바심을 느꼈을까, 나처럼 두려움을 느꼈을까. 


사람과 마찬가지로 강아지에게도 나름의 속도와 생각이 있다. 할 수 있는 만큼은 지켜줘야겠다. 그리고 나 또한 다시 한번 생각한다. 휘둘리지 말고 나의 속도로 가자고. 나는 그러고 싶었던 거니까.


그동안 몰라줘서 미안해 라라야. 우리 함께 나름의 속도로 행복하게 살아가 보자. 


봄날의 라라

제주 유기동물을 돕습니다, (사)제제프렌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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