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초여름. 한라산을 올랐다. 등산을 별로 좋아하지 않던 나에게는 너무 높은 산이어서 화가 날 정도 힘들었다. 어찌어찌 정상에 올라 백록담을 봤고 이제 내려갈 일만 남았으니 괜찮아지겠지, 생각했다. 하지만 오히려 더 화가 치밀어올랐다. 왜 그런지 몰라도 화가 나서 미칠 지경이었다.
6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그때의 화가 비로소 이해됐다. 바로 미드 <굿닥터> 시즌2를 보면서다.
자폐 의사인 숀. 그는 새로운 외과 과장에 의해 병리과로 강제 이동당한다. 숀이 자폐이기 때문에 그쪽이 더 낫겠다는 과장의 개인적 판단에 의해서다. 하지만 숀은 외과의가 되고 싶어 한다. 이렇게도 해보고 저렇게도 해보지만 과장은 생각을 바꾸지 않는다. 결국 숀은 대폭발을 하고 어이없게 해고를 당하게 된다.
그때 숀의 그 분노. 나는 너무나도 이해가 갔다. 그리고 동시에 한라산에서 느꼈던 분노가 이해됐다.
엄마는 10년간 힘겹게 투병을 하시다 돌아가셨다. 20대 중반이었던 나는 엄마의 투병을 옆에서 도와야 했다. 엄마가 계실 때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직장에 다닐 수도 없었고 마음 편하게 친구들과 놀 수도 없었다. 어쩔 수가 없었다.
집에서는 뭐라도 할 수 있었겠지만 우울과 무기력으로 인해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5년이 지나도 똑같았다. 나에겐 자유가 주어졌지만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나 그대로였다. 그쯤 한라산을 올랐던 거다. 그런데…
한라산 속에 있는 나는 한라산에 매여있는 몸이었다. 특히나 하산의 길은 더했다. 오르는 것은 포기하고 내려갈 수 있지만 내려가는 걸 포기하면 그 산속에 머물러야 했다. 어쩔 수 없이 내려와야 했다.
그 ‘어쩔 수 없음’ 그게 대폭발을 일으켰던 것이다. 10년을 참아왔는데, 그 후로 나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는데, 또다시 어쩔 수 없는 상황에 갇히다니!
다시 <굿닥터> 이야기.
대폭발 하는 숀을 보며 눈물이 났다. 자신은 외과의사가 되고 싶은데 방법이 없는 거다. 그러니 미칠 노릇 아니겠는가. 결국 외과 과장이 잘리고 숀은 외과 레지던트로 복직한다. 그리하여 갈등 해소.
나는 한라산을 내려온 후 다시는 한라산에 오르지 않기로 했다. 나 스스로 어쩔 수 없음에 가두지 않겠다는 거다. 대신 가볍게 오를 수 있는 오름은 다녔고 어쩔 수 없음에서 해방되기 시작했다.
물론 살면서 어쩔 수 없음에 갇히는 일은 앞으로도 허다할 것이다. 하지만 스스로 가두는 일은 결코 하지 않을 것이며 갇히더라도 최선을 다해 탈출해낼 것이다.
나는 더 이상 분노하기 싫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