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인생글생

당신의 글은 재미가 없어요

by 홍난영

2012년 꿈에 그리던 나의 첫 책 <서울 누들로드>가 나왔다. 당시 '먹는언니'라는 닉네임으로 블로그를 운영하던 나에게 주어진 행운이었다. 그 책을 본 다른 출판사에서는 '제주 누들로드'라는 컨셉으로 책을 한 권 내자고 제안하셨고 나는 흔쾌히 그러자고 했다. 거절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렇게 추진된 제주 국수여행. 2013년, 2014년, 그리고 2015년. 짬짬이 제주에 내려가 돌아다니며 국수를 먹었다. 제주의 부속섬을 돌았고(우도, 마라도, 가파도, 비양도, 추자도까지) 제주 동서남북을 돌아다녔다.


그때 내가 안 사실. 아, 나는 7박 8일 매 끼니를 국수만 먹어도 사는 애구나. 정말이지 수십 끼를 연달아 국수만 먹었는데도 밥이 그리워진다거나 하지 않았다. 예의 상 고등어구이를 한 번 먹었을 뿐이었다.


당신의 글은 너무 무심합니다


여행 후 글을 써 출판사에 넘겼지만 계속 '빠꾸'를 당했다. 내 글이 너무 무심하다는 거다. 무심해서 재미도 없고... 우린 국수 맛집 책을 쓰는 게 아니다, 희로애락을 담아보라.


이런 말 하면 웃기지만 내 MBTI는 INTP다. 성격 자체가 무심하다. 그러니 글도 그렇게 나올 수밖에. 하지만 출판사 대표님의 많은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쓰는 글이 거지 같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을 수 있었다. 희미하긴 하지만 나도 살면서 느끼는 게 있지 않겠는가. 특히나 제주 국수여행은 더욱 그랬다. 그런데 왜 그걸 글에 녹여내지 못하지?


오랫동안 투병하시다 돌아가신 엄마, 그 10년 동안 우울했고 무기력했던 나. 안 그래도 딱딱했던 내가 그 사이 더욱 딱딱해졌지만 제주 국수여행 중엔 나도 모르게 운전하면서 콧노래를 부르는 지경까지 갔다. 국수여행은 나를 그렇게 바꿨고, 결국 2015년 제주로 이사를 오기까지 했으니 그 안에 희로애락이 다 담겨있지 않겠나. 그런데 나는 그걸 충분하게 글에 녹여내지 못하고 있었다.


이제와 생각하면 녹여내지 못했던 것도 있지만 녹여낼 생각도 안 했던 것 같다. 나를 완전히 뒤집어엎어야 한다. 왜 나는 그때 그런 감정이 들었나, 나는 왜 그런 생각을 했었나.


결론적으로는, 책을 낼만큼 글이 다듬어졌으나 출판사 사정으로 출판은 되지 못하고 말았다. 그래. 어쩌면 출판사 사정이라는 건 핑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진짜로 책 디자인까지 다 했었다. 내 눈으로도 봤다(하지만 그게 무슨 소용이람).


글이 너무 아까워 브런치에 올렸고 그 브런치북은 2018년 추천 작품으로 선정되었다.


https://brunch.co.kr/brunchbook/jejunoodleroad


인생의 터닝포인트


제국 국수여행은 내 인생의 터닝 포인트였다. 그리고 글쓰기에 있어서도 터닝 포인트였다. 노골적으로 인생 이야기를 하라는 게 아니라 글에는 작가의 인생이 스며들어 있어야 함을 알게 되었다. 그건 솔직함이었다. 내 감정을, 내 인생을 '은근하게' 세상에 드러내야 하는 건 쉽지 않은 작업이다. 물론 사람들은 나에게 관심이 없어 그런가 보다, 하지만 글을 쓰는 입장에선 반드시 거쳐야 하는 작업임은 틀림없다.


글에 경험만 들어가면 재미가 덜하다. 물론 그 경험이 특별하다면 그 자체로 재미있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경험을 통해 얻은 인사이트나 희로애락이 들어가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 그 글을 읽을 이유가 없지 않겠는가. 널린 게 글인데.


그래서 나는 오늘도, INTP라는 불리한 조건(?)에서도 나의 세계를 경험하고, 많이 생각하고, 그래서 나는 뭘 느끼고 있는지는 탐험한다. 글쓰기 노트를 따로 마련할까 생각도 하고 있다.


DSC07594.JPG 비양도에서 먹었던 문어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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