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독서노트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난영 Aug 14. 2024

개인과 집단, 그 조화를 위하여

소설 <퀸의 대각선>을 읽고

얼마 전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퀸의 대각선>을 읽었다. 처음엔 가볍게 시작했으나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래 글에선 약간의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다. 


많은 생각을 하게 된 포인트는 '개인과 집단'이다. 소설에선 집단의 힘을 중시하는 니콜과 개인의 힘을 중시하는 모니카가 주인공으로 나온다. 처음엔 개인의 힘이 더 쎄냐, 집단의 힘이 더 쎄냐의 문제가 머리에 떠올랐지만 뒤로 갈수록 그 문제는 중요한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니콜과 모니카 둘은 모두 개인이며 집단에 속한다. 다만 내가 해석한 바에 따르면 니콜은 개인, 혹은 그 개인이 속해있는 집단의 목표를 위해 그 어떤 합의도 하지 않은 또 다른 집단을 조종한다. 모니카는 개인, 혹은 그 개인이 속해있는 집단의 목표를 위해 나름의 합의 과정을 거친다(물론 자세히 나오진 않는다). 


개인이냐, 집단이냐의 문제라기보다 '소통'의 문제라고 본다. 모든 인간은 개인이며 집단이다. 하지만 또 하나의 분리된 집단을 조종하느냐, 아니면 시스템에 넣느냐는 완전히 다른 문제다. 


예를 들어보자. 


나는 한림쉼터라는 유기견보호소의 리더다. 리더이긴 하지만 함께 운영하는 팀이 있다. 즉, 개인이자 집단이다. 우리는 한림쉼터에 보호하고 있는 유기견들을 잘 돌본다라는 목표 아래 '시스템'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다. 많은 것을 공개하고 의논한다. 100%를 공개하는 건 '트루먼쇼'처럼 하지 않는 한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 만약에 한림쉼터를 잘 운영한다는 목표 아래 또 다른 집단을 조종하여 기만하고 속인다면? 우리끼리는 잘 뭉칠지 몰라도 우리 외의 사람들을 이용한다면 그건 잘못된 것일 거다. 


소통의 과정은 매우 고통스럽다. 집단이 클수록 더욱 그러하다. 그래서 많은 리더들이 독선적일 수 있다. 과정이 고통스럽기에 쉬운 쪽을 선택하는 거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니콜은 집단을 이용해 먹으려는 '개인'의 이기심이라고 본다. 니콜은 집단의 힘을 믿는다기보다는 그 집단을 이용할 줄 아는 본인의 천재성(?)을 믿는 것이다. 


집단의 힘을 그런 식으로 이용하면 위험하다. 


물론 시스템을 만들어 조직적으로 운영하고, 소통을 통해 합의를 이뤄 움직인다고 해도 그 목표의 설정이 잘못되면 파멸로 나아갈 수도 있다. 역사적으로 그런 사례가 무척 많았으리라 본다. 물론 니콜의 사례도 많았을 것이다. 


그래서 다양한 분야의 학문이 탄생했으리라. 파멸을 막아보고자 여러 방면에서 다양한 방법론이 연구되었을 것이다. 


여기서 나는, 나만 옳다고 주장하는 것도 아니고, 내가 인류를 구할 수 있을 거라 말하는 것도 아니다. 나는 그럴 깜냥이 못된다. 다만 타인(타 집단)을 기만하고, 조종하는 등의 이기적인 행동만큼은 스스로 자각하고 없애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생각할수록 어려운 문제다. 계속해서 생각이 날 것 같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