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난영 Mar 10. 2017

음악회로 시작된 공부의 여정

사실 공부를 해야겠다고는 늘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먹고사는 데 바빠 미처 못했다고 하면 믿어줄까? 물론 남들이 볼 땐 뭔가 열심히 돈 벌고 있다고 생각할 즈음 은밀하게 백수 놀이를 할 때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공부나 했으면 좋았을 것을. 그저 돈 벌 궁리를 하느라 공부 따윈 언젠간 해야 할 숙제로 마냥 미루기만 했었다.


몇 년이 흘렀다. 그리고 지금 나는 8개월째 공부하고 있다. 선사시대를 지내 고대사를 지나고 있다. 이번 글에서는 내가 어떻게 ‘진짜로’ 공부를 시작하게 됐는지를 이야기하고자 한다.


제주에 이사를 오고 어쩌다 음악회 표가 생겼다. 제주교향악단의 정기연주회였다. 나는 살아오면서 음악회를 가본 적이 없다. 뭐랄까. 일찍이 음악을 포기한 음포자였달까. 중고등학생 때 음악시험은 나를 괴롭히는 놈이었다. 이론이야 그렇다 쳐도(사실 이론도 잘 이해가 안 갔다) 듣기 시험(?)은 아주 날 미치게 했다. 


유명한 교향곡 일부를 들려주고 그게 무슨 곡인지를 맞추는 시험이었다. 학교 앞 문방구에서는 수십 곡의 교향곡을 편집한 테이프를 팔았는데 그걸 사서 들었음에도 도저히 구분이 안 되는 거다. 어쩌겠는가, 시험에선 그냥 마구 찍을 수밖에 없었다. 그날 이후로 음악을 포기했다. 그런 마당에 음악회라니. 내 돈 주고 내 시간 투자해서 갈 필요가 있었겠는가.


하지만 이제 와 내 손엔 음악회 표가 한 장이 주어졌다. 가볼까? 가서 조는 거 아니야? 의심 반 호기심 반으로 가보기로 했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서일까, 시험과 상관없이 그냥 들어도 되는 거라 그럴까, 음악회는 생각보다 좋았다. 그 후로도 몇 번 더 가보게 되었는데 특히 ‘말러의 교향곡 5번’에서는 넋이 나갔다. 그때 블로그에 쓴 후기를 잠시 옮겨와 본다.


첫 빵부터 빠바바바바바~ 울리는 데 갑자기 양쪽의 바이올린들이 촥~ 올라가면서 쫘좌좌좌작 나오는 게 엄청 멋있었다. 마치 곤충들이 날개를 치켜세우고 붕붕붕~~ 떼로 날아다니는 느낌이랄까? 그 순간 음악이 음악만으로도 멋질 수 있겠지만, 음악회 속의 악기의 움직임도 엄청나게 멋있을 수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게다가 신기하게도 말러의 음악에선 인간의 감정이 엄청나게 느껴졌다. 다양한 감정들이 들쑥날쑥 느껴졌다고 할까? 뭔가 불협화음 같으면서도 조화가 잘되는 것 같았는데 연주 스킬이 떨어지면 완전 개판이 될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악 포기자의 귀에도 그렇게 들렸다. 

생각을 해봤는데 음악이든, 글이든, 미술이든 ‘공감대’가 형성되면 팬이 되는 게 아닐까. 뭔가 통하는 느낌을 받을수록 더 빠져드는 게 아닐까. 내가 음악 포기자가 됐던 이유는 음악과 나 사이에 무언가 통할 거리를 찾지 못해서가 아니었을까.


음악회를 몇 번 가면서 이제는 악기에 시선이 가기 시작했다. 호른을 부를 땐 왜  소리 나오는 부분에 손을 넣는 거지? 소리의 크고 적음을 주먹으로 조절하는 건가…? 그냥 단순히 손잡이가 저기 들어있는 건가? 아니, 저 악기는 이름이 뭐야? 어디서 많이 보긴 했는데.


호른


그러다 책 아이템이 하나 떠올랐다.  ‘악기史’였다. 말이 거창해서 악기사지 사실은 나 같은 음포자를 위한 책이었다. 이 세상에 어떤 악기들이 있고 그 악기가 어떻게 생겼는지, 또 어떤 소리를 내는지를 알려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클래식에 관한 책을 몇 권 읽어봤다. 그런데. 읽다 보니 악기사든, 음악사든 거대한 ‘서양사’도 어느 정도는 알면 더 좋겠다 싶은 거다. 욕심도 많으심. 그냥 악기의 세계만 파도 어마어마한데 말이다.


결국, 나는 거대한 계획을 세우기 시작했다. 일단 세계사 공부를 통해 큰 흐름을 공부한 후에 그 속의 작은 역사를 살펴보면 엄청 재미있을 것 같았다. 


그래. 일단 서양사, 동양사를 쭉 보고 그다음에 음악사를 파보자. 이왕 하는 거 미술사, 음식사 등의 여러 갈래도 해보자.


기약이 없는 계획이었다. 공부한다고 당장 글을 쓸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내 안에서 지식이 숙성되어야 글이 나오는 거니까. 그래도 앞으로 글 써서 먹고살려면 공부를 하는 수밖에 없었다. 몇 년 전에도 공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던가. 지금 하지 않으면 노답이었다. 


더 나이 먹으면 머리도 나빠질(?) 터였다. 그래서 그냥 했다. 어쩌면 내 안의 절박함이 음악회라는 계기로 뻥 터졌는지도 모르겠다. 지금도 공부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면서 좀 불안하긴 하다. 그 시간에 돈 벌어야 하는 게 아닐까 싶어서 말이다. 그래도 한다. 뚜벅뚜벅 가보기로 한다.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말이다. 어떻게든 되겠지. 

매거진의 이전글 공부가 빛이라면 나는 프리즘이어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