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국민들이 명문대를 갈망하는 이유
오랜만에 제자에게서 연락이 왔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한 4~5년 전 즈음에 가르쳤던것 같다.
"쌤 저 동욱(가명)인데요 고민 상담좀 해주시겠어요?"
당시 동욱이가 고등학교 1학년부터 2학년까지 가르쳤으니 동욱이에 대해서 조금은 안다고 말할 수 있다. 일단 담배를 피웠다. 그리고 거짓말을 자주 하고 들통이 나면 겸연쩍게 웃으면서 얼버무리고 넘어갔다.
치밀한 아이들은 거짓말을 해도 티가 안 나게 하는데 어딘가 좀 어설펐다. 지각, 결석이 너무 흔해서 집에서도 포기 상태였다. 보통 이정도의 생활습관이면 공부를 잘 하기는 힘들다고 볼 수 있다.
어쨌든 그 땐 그 때고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어떻게 지내는지 물어봤다.
"제가 현역때는 순천향대 합격해서 재수해서 올해 동국대 전자공학과 붙었는데요. 제가 이제 올해 12월말에 공익근무요원으로 군대를 가요. 뭔가 수능에 대한 아쉬움이 남더라구요 그래서 공익 근무요원 2년이란 시간동안 수능 공부를 다시 할까하는데 고민이 들어서요..."
당시에 내신과 모의고사 성적이 3~5등급 정도 나왔다. 생활 태도가 엉망이어서 그렇지 학습 능력이 현저히 부족한 학생은 아니었다. 하지만 공부의 가장 중요한 요소인 '꾸준함'을 기대하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현역으로 순천향대에 합격한 걸 보니 그래도 고3 때는 나름 노력한 것 같았다.
그리고 재수를 결심했고 1년 동안 열심히 했을 것이다. 고1~2 모습으로는 동국대에 갈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지만 재수는 제대로 한 것 같았다.
"순전히 동국대에 만족을 하지 않는다면 참고 다닐꺼같은데 뭔가 제 수능성적에 만족을 못해서요 조금만 더하면 서성한까지 간다? 더 노력하면 스카이 갈수있다 이런 생각이 들더라구요..."
역시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나보다. 고등학교 때는 인서울만 해도 좋겠다고 생각하다가 막상 인서울을 하면 꿈이 더 높아진다. 이는 인간의 본성적인 측면에 관한 것이라 나쁜 것은 아니지만 예전의 모습을 생각하면 명문대를 희망하는 동욱이가 대견하기도 하고 놀랍기도 했다.
"일단 동국대 1학년 재학중이긴 한데 공익 2년이니까.... 2년 동안하면 하늘 볼수 있을거 같아서요. 재수도 저혼자서 벌어서 한거거든요... 이걸 부모님께 지원을 받는게 현명한걸까요?"
의문이 풀렸다. 고등학교 때 그렇게 엉망이었던 학생이 어떻게 인서울을 뚫었는지. 보통 학생들은 부모님이 재수학원에 등록시켜주면 고3과 마찬가지로 학원에 가서 공부를 한다. 재수생 시간표는 학교와 비슷하다. 3~4시까지 수업을 듣고 이후에는 자습이다.
그런데 학습 동기가 부족한 학생들은 처음에는 열심히 하다가 이내 곧 초심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수 많은 초점을 잃은 눈동자들이 둥둥 떠다니는 곳이 바로 재수학원이다.
그런데 동욱이는 본인이 아르바이트로 돈을 벌어서 재수를 했으니 보통 아이들과는 정신상태 부터가 달랐을 것이다. 독학 재수 학원은한 달에 4~50만원 선이고 종합반은 이것 저것 다 하면 100만원 이상이다. 아마도 아르바이트하랴 공부하랴 쉽지 않았을 것이다.
돈 50만원이 쓸 때는 별거 아닌 거 같아도 벌어보려고 하면 장난이 아니다. 최저임금을 받으면서 육체노동과 감정노동에 시달리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아마 동욱이도 깨달았을 것이다. 그래서 이 악물고 공부를 해서 성적을 올렸을 것이다.
실제로 재수를 해서 수능을 어떻게 봤는지 궁금했다.
"32322나왔어요 이과 기준으로요 영어가 듣기에서 말아먹어서여...ㅎㅎ 빈칸추론이나 그런건 다맞았는데.."
국어 3등급, 수학 2, 영어 3, 과탐 2,2 가 나왔으니 아마 수학과 과학 덕분에 동국대 전자공학과에 붙었을 것이다. 암튼 기특했다.
역시 공부는 정신력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공부가 제일 쉬운거야.' 백번 말 해봤자 경험하기 전 까지 아이들은 그게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다. 미국의 심리학자 존 듀이도 말하지 않았던가 진정한 교육은 '경험'을 통해서만 일어날 수 있다고.
"제가 노가다도 뛰어보고 방학때 직장도 다녀보고 알바도 다해봤는데 지금 공부가 제일 쉽더라구요. 직장 다닐때는 학교 좋은 애들만 좋은일 시키더라구요 그래서 서러웠기도 하구요...그래서 오기로 하늘에 가려구요"
흔히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공부하라고 말 하면서 늘 함께 하는 얘기가 있다. "공부가 제일 쉽다." 그러면 아이들은 공부가 제일 어렵다고 대답한다. 어른들 말도 맞고 아이들 말도 맞다.
사실 공부가 신체적으로 가장 편한 건 맞다. 공부가 힘들다는 아이들에게 방학 때 택배 상하차 아르바이트 일주일만 시켜보면 아이들도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하지만 대한민국 청소년들이 태어나서 이제껏 경험한 것이 공부 밖에 없다. 비교할 대상이 없으니 아이들 입장에서는 공부가 제일 어려운 게 맞다.
동욱이가 '서럽다'고 했다. 사실 우리 모두 본인 또는 자식을 좋은 대학교에 보내고자 하는 이유가 그 동안 서러웠기 때문이다. 명문대학에 가지 못했다는 이유로 받았던 비교, 차별, 구박, 멸시 등이 우리 마음 속 깊은 곳에 다 있지 않은가?
개개인은 감정이 있는 사람이지만 이 사람들이 모인 사회는 감정이 없는 '시스템'이다. 그래서 사회는 아주 냉정하게 사람을 차별한다. 이런 사회에서 사람들이 좋은 대학교에 가고자 하는 생각을 갖는 것이 당연하지 않을까?
이렇게 또 한명의 학생이 학벌지상주의자로 변해가는 과정을 안타깝게 바라볼 뿐이었다.
대학교 간판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말하기 전에 대학교 간판으로만 사람을 판단하지 않는 사회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무조건 명문대를 강요하는 풍토도 줄어들 것이다.
"선생님 언제 한번 식사라도 해요 ㅎㅎ"
이제 사회에 첫 발을 내딛는 제자에게 별건 못 해 주지만 조만간 먹고 싶은 밥이라도 한 번 사줘야 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