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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석철 Apr 03. 2018

75 왜 공부를 못 하는가?

왜 공부를 해도 공부를 못 하는가?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보자. 왜 공부를 못 하는가?


  답은 간단하다. 사람은 원래 공부를 못 한다. 비단 공부뿐만 아니라 춤, 노래, 스포츠, 연기, 운전, 글쓰기, 장사, 디자인 등등 99%의 사람들은 원래부터 이를 잘 못한다. 


  질문의 관점을 조금 바꿔보자. 왜 공부를 해도 공부를 못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간단하지 않다. 결국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전 세계의 학생, 부모님, 선생님, 교육자들은 이 질문에 대한 찾고 있는 것이다. 이번 글에서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아보려고 한다. 

 

  전 세계에서 가장 아이스하키를 좋아하는 나라는 캐나다이다. 그 해 리그에서 누가 우승을 하는지. 어떤 슈퍼스타가 탄생하는지는 온 국민들의 초유의 관심사이다.


  당연히 프로 리그에서 활약하는 선수들은 천부적인 재능과 소질, 운동 신경, 피나는 노력을 통해서 지금의 실력을 쟁취했을 것이라고 누구라도 생각할 것이다. 


  정말 그럴까? 과연 어떤 선수들이 활약하는지 캐나다 리그에서 한 팀의 선수 명단을 살펴보자. 어떤 특성이 있을까?

  아마 별 다른 특성을 찾지 못했을 것이다. 이번에는 범위를 좁혀서 생년월일을 살펴보자. 어떤 특이점이 발견되는가?


  잘 모르겠으면 선수들이 태어난 '달'을 보자. 1월 생이 8명, 2월 3명, 3월 3명, 4월 3명, 5월 2명, 6월 1명, 8월 2명이다. 이게 무슨 문제란 말인가? 그러나 이렇게 보면 얘기가 달라진다. 


  25명 중에 17명이 1~4월에 태어났다. 


  생일이 1~4월에 좀 많이 몰려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게 무슨 문제가 있을까? 예시를 하나만 더 살펴보자. 아래 표는 2007년 청소년 월드컵 결승에 진출한 체코 청소년 국가 대표팀의 선수 명단이다.


  21명 중 1월 생이 6명, 2월 6명, 3월 4명, 4월 1명, 6월 2 명, 8월 1명, 9월 1 명, 즉 1~3월 생이 16명이고, 4~9월 생이 5명이다.


  역시나 위의 캐나다 아이스하키 팀의 생일과 비슷한 경향성이 보인다. 선수들 중에 유난히 1~3월생이 많다.


  매월 12월에 유소년 선수들을 선발한다. 스카우터들은 조금이라도 재능과 소질이 있는 어린 선수들을 발굴하려고 눈에 불을 켜고 찾아다닐 것이다. 


  보통 8~9세 초등학교 저학년들이 그 대상인데, 이 나이의 아이들 중에서 10개월을 더 살았다는 것은 엄청난 경험을 더 한 것이다.


  사실 기어 다니고 엉거주춤 걸어 다니는 나이를 제외하고 처음 장난감 공을 가지고 노는 시기는 대략 5~6세 정도이다. 그러니 무언가를 2년 동안 한 아이와 3년 동안 한 아이를 비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1월생이 12월 생보다 체격이 크고, 더 힘이 세고, 더 운동 감각이 좋을 수밖에 없다. 적어도 더 좋아 보인다. 그래서 조금이라도 더 오래 산(?) 아이들이 발탁되는 경향이 있다.


  이렇게 유소년 팀에 선발이 되면 그 이후에 이 아이들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바로 경험 많고 열정적인 코치들에게 전문적인 훈련을 받는다. 


  그래서 선발될 당시에는 별로 크지 않았던 실력 차이가 5년이 지난 뒤에는 선수와 취미로 즐기는 사람으로 갈라진다.


  이렇게 어릴 때 어른들의 물심양면적인 지원을 다 끌어오는 '선점효과'를 컬럼비아 대학교 로버트 머튼 교수는 '마태복음 효과'라고 설명했다.


  마태복음 25장 29절 -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


  참고로 미국의 축구와 농구는 이러한 선발, 분류, 차별화를 하지 않는다. 그래서 선수들의 생일이 1~3월에 몰려있는 현상이 없다.


  그러나 유소년 선발을 하는 영국 축구 프리미어리그는 288명이 1~3월 생이고, 136명이 9~12월 생이다.


  최근 국제 청소년 축구 시합을 뛴 135명 중 113명의 선수가 1~3월 사이에 태어났고, 22명이 9~12월 생이다. 


  여기서 드는 궁금증은 '만약 선발되지 않은 선수들이 선발된 선수들이 받았던 전문적인 교육과 훈련을 받았더라면 어땠을까?'이다. 


  이러한 가정의 결과는 아무도 모르는 것이지만 이에 대한 답을 평창 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딴 여자 컬링 대표팀에서 찾아보려고 한다. 


  의성이라는 소도시의 척박한 환경에서도 이를 극복한 순박한(?) 여자 선수들의 노력, 그리고 이들의 우정에 언론의 관심이 모이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은 이 선수들이 어린 시절에 특출 난 운동 신경과 컬링에 대한 재능 또는 열정으로 선발된 선수들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김영미 선수가 고등학교 때 방과 후 활동으로 공부가 싫어서 컬링을 시작한다. 그리고 친구인 김은정 선수에게 같이 하자고 한다. 


  이후에 김영미 선수 친동생인 김경애 선수가 언니 심부름으로 컬링장에 왔다가 합류하게 된다. 그리고 김경애 선수 친구인 김선영 선수가 합류한다. 


  이들이 올림픽 은메달을 따게 된 것은 타고난 운동 신경과 컬링에 대한 재능 덕분일까? 후천적인 노력과 훈련을 통해서 실력이 향상된 덕분일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많은 사람들이 여자 선수들의 우정과 어려운 환경에서의 노력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다. 


  그러나 운동을 조금이라도 해본 사람이라면 그저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운동을 열심히 한다고 해서 올림픽에서 메달을 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캐나다 출신의 피터 갤런트 코치는 3년 동안 여자 컬링 대표팀을 이끌었다. 기술, 전술 등의 훈련과 더불어 멘토가 되어서 이들을 이끌었다. 


  선수들이 경기에서 지고 난 뒤 울고 절망에 빠져 있을 때, 이들에게 격려를 해주고 더 발전할 수 있도록 이끌었다. 


  여자 컬링 대표팀은 피터 갤런트 코치 이전에도 매번 크고 작은 시합이 있을 때마다 경험 많고 열정적인 감독과 코치의 지도를 받으면서 성장했을 것이다.


  이들은 세계 수준의 실력이 있어서 세계 수준의 코치를 만난 것이 아니라, 세계 수준의 코치를 만나고 나서 세계 수준의 선수가 된 것이다.

     

  이러한 현상이 스포츠 분야에서만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교육 현실에서도 빈번하게 일어난다. 어릴 때 조금 더 공부에 소질이 있고 관심이 있는 학생들에게 어른들의 지원이 몰린다.


  대표적으로 수준별 이동 수업이 그렇다. 수준에 맞는 수업을 한다는 취지는 좋지만, 막상 교육 현장에서 벌어지는 현실은 취지와는 좀 거리가 있다. 


  A반, B반, C반에 들어가는 선생님들의 표정과 말투, 수업의 열의가 너무나 다르기 때문이다. 요컨대 A반, B반, C반 아이들의 받는 교육의 질이 현저하게 다르다는 것이다.


  운동과 마찬가지로 공부에서도, 교육 현장에서도 이러한 선점 효과, 마태복음 효과는 너무나 크고 강력하다. 


  아래로 내려가다 보면 유치원, 놀이교실에서부터 아이들의 학업적인 역량에서 차이가 난다. 이때 반응하는 보육자의 표정, 말투, 눈빛 행동 등으로 인해 아이들은 지속적으로 '와 민서는 너무 잘하네~' 또는 '민서야 너는 왜 이렇게 못하니~' 등의 메시지를 받는다.


  이러한 낙인 효과(?)의 가장 비극적인 결론은 본인들도 스스로의 능력에 대해서 믿음을 잃어버린다는 것이다. 


  '난 해도 안 돼.' 


  그럼 정말로 교육의 질이 달라지면 아이들은 달라지는가? 아이들이 재능이 있었기 때문에 높은 교육의 질을 통해서 그 잠재력이 발현되는 것 아닌가? 


  1968년 하버드 대학교 사회심리학과 교수였던 로젠탈 교수와 미국에서 20년 이상 초등학교 교장을 지낸 레노어 제이콥슨은 한 가지 실험을 했다. 이들은 먼저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한 초등학교에 다니는 전교생을 대상으로 지능검사를 했다. 


  그리고 지능검사의 결과와 상관없이 무작위로 20% 정도의 학생을 뽑았다. 그 학생들의 명단을 교사에게 주면서 이 학생들이 지적 능력이나 성적 향상 가능성이 높은 학생들이라고 설명했다. 


  요즘 말로 하면 영재반이라고 소개한 것이다. 그리고 8개월 후 이전과 같은 지능검사를 다시 실시하였다. 정말 놀랍게도, 8개월 전에 뽑은 20% 학생들이 나머지 학생들보다 점수가 높게 나왔을 뿐만 아니라, 학교 성적도 크게 향상되었다. 


  어른들의 기대와 믿음이 아이들을 변화시킨 것이다. 지금은 공부를 조금 못해도, 부족한 점이 많아도 포기하지 말고 진심으로 이끌면 아이들은 달라진다. 


  어릴 때 공부를 조금 잘 하는 학생과 그렇지 못한 학생을 분류해서 현격하게 다른 교육의 질을 10년이 넘게 제공하고 난 뒤 공부를 못하는 원인이 스스로에게 있다고 말하는 것이 과연 합리적인지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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