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게임을 하면서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왜 게임에 빠져 드는가? 그 원인을 알아야 문제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게임 중독 때문에 공부를 못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유 때문에 게임 중독이 된 것일 수 있다. 게임 중독이 사실은 결과일 수 있는데, 게임 중독을 원인으로 보기 때문에 게임 중독 치료에 실패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그 말도 일리가 있다.
학업 스트레스를 과다하게 받고 있는 한 중학생이 있다. 고달픈 하루하루를 게임 덕분에 간신히 버티면서 부담을 잊기 위해 게임에 빠져들었다면, 이 아이에게 게임을 못하게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 스트레스를 푸는 시간이 사라지고 결과적으로 학업이 더 떨어질 수도 있다. 이 정도까지 게임에 집착하게끔 만드는 원인이 무엇일까 먼저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게임과 관련된 문제를 가진 사람들이 보이는 중독의 모습은 상당히 다양하다. 따라서 대응하는 방법도 다양할 필요가 있다. 자녀가 게임에 몰입하기 시작하면 부모님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그리고 상담실에 들어와서 하얗게 질린 얼굴로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경우가 빈번하다.
"우리 아이가 예전엔 이러지 않았는데 게임을 하면서부터 폭력적으로 변하고, 무기력해지고, 성적도 나빠지기 시작했어요!"
부모님들은 이 모든 부정적인 결과가 모두 게임 탓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게임이 모든 문제의 원인이 아닐 수 있다. 게임중독 자체만 교정하면 모든 문제 행동이 사라질 것을 기대하지만 이마저도 예상과 현실은 다르다.
연구 결과 게임에 빠졌던 청소년이 게임에 대한 문제 행동이 사라진 후 채팅 중독, 쇼핑 중독으로 옮겨가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오로지 게임이 모든 문제의 원인이 아니었다는 증거이다. 게임을 통해서 얻고자 했던 것이 있었을 것이다. 그것을 파악하지 못하면 게임 중독을 치료해봤자 다른 곳에서 본인이 원하는 것을 충족하려고 시도할 뿐이다.
다르게 생각해보면 게임에서 얻고자 했던 것을 게임이 아닌 곳에서 채워주면 자연스럽게 게임에서 멀어지게 될 것이다. 게임 중독의 해결을 정면이 아니라 측면으로 파고들어간다고 할까?
게임 중독과 관련된 국내외 많은 연구들을 분석해보면, 연구들마다 평균적으로 게임중독의 원인이 5~10개 정도 드러난다. 모든 연구들마다 공통적으로 나오는 핵심적인 이유 세 가지를 정리해보자. 과연 게임의 어떤 특성 때문에 우리 아이들이 중독이 되는 것일까?
아이들의 심리를 알아야 효과가 있는 치료 방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무작정 게임을 그만하라고 잔소리하면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한다. 그리고 연구에서 아이들이 게임을 가장 하고 싶을 때가 언제인지 물었을 때, 엄마가 잔소리할 때라고 한다.
요즘 아이들이(어른들 포함) 주로 하는 게임을 보면, 전략 시뮬레이션(스타, 롤), 총싸움(오버워치, 배그), 캐릭터 키우기, 간단한 퍼즐, 맞고 등이 있다. 이 게임들의 공통점이 무엇일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새로운 것에 대해서 경험하길 좋아한다. 예컨대 현실에서 번지 점프는 너무 두렵지만 손가락을 몇 번 움직이는 도전이라면 마다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
게임 속으로 들어가 보면, 도전을 해서 몬스터를 잡거나 문제를 해결하면 독특한 갑옷과 멋진 무기를 받는다. 이렇게 도전을 하고 보상을 받는 과정에서 우리 몸 안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혈관에 엔도르핀이, 뇌에는 기분이 좋아지는 도파민이 분비된다. 이때 우리 뇌가 "게임은 재미있어."라고 느끼며 그 기분을 더욱 느끼고 싶어 게임에 빠지게 된다.
더 강한 적과 싸울수록 더 큰 성취감을 기대할 수 있다. 현실에서 무언가를 열심히 했을 때 이렇게 강하고 빠르게 성취감을 느끼는 경우는 거의 없다.
총으로 적을 맞추거나 상대와 싸우는 전략 시뮬레이션 게임도 흥분, 긴장, 스릴을 제공한다. 손에서 땀이 나고 이겼을 때의 흥분과 짜릿함은 이로 말로 표현할 수 없다. 온몸에 전율이 흐른다. 현실에서 이 정도의 흥분과 성취감을 느끼는 경험은 거의 없다. 군대 정도?
연구 결과 이렇게 게임을 하는 것은 우리 뇌의 중독 행위와 연결된 신경 회로를 강화한다고 한다. 슬롯머신에서 도박을 할 때 도박꾼은 대부분의 시간은 돈을 잃지만 때로는 돈을 따기도 할 것이다. (그래도 도박에 중독된다.)
그러나 비디오 게임은 게이머가 대부분의 시간을 이기도록 프로그램이 되었다. 지는 경우가 태반인 도박도 중독이 되는데 이기는 경우가 더 많은 게임의 중독성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다. 게임 속의 도전, 보상, 결투, 흥분, 짜릿함과 비교해서 현실의 평범한 삶은 너무 시시하다. 결국 게임의 세계에 사로잡히고 만다. 자꾸 뇌가 그 자극을 원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편하고 재미있고 즐거운 것을 좋아한다. 몸으로 직접 부딪쳐 보는 체험이나, 무언가를 완성하고 이룩하기 위해 진득하게 참고 기다려 본 경험이 부족하므로 그런 것은 낯설어한다. 학원을 오갈 때 길에서 버리는 시간도 아까워 자동차에 태워 오가며 어머니가 운전사 역할을 했던 아이들은 원하는 것을 바로 갖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쉽게 이루어내고 빠른 보상이 따르는 결과를 좋아하므로 '재미있는 것이 최고다'는 가치관을 가진 아이들이 많다. 그리고 게임만큼 이런 것을 충족시켜 주는 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최근 지하철역에서 본 게임 광고 카피는 "내가 진짜 살아있다고 느끼는 찰나의 순간들"이었다.
심리 사회적 발달 이론가인 에릭슨은 모든 유기체는 특정한 나이가 되면 완수해야 하는 삶의 목적이 있다는 이론을 제시했다. 비판점이 있지만 발달 이론분야에서 프로이드, 피아제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물론 모든 학생들이 심리학 교과서에서 그의 이론을 공부한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인간에게는 8단계의 발달 단계가 있다. 각 단계를 성공적으로 완수하면 정상적이고 건강한 개인으로 발달해 나갈 수 있지만, 어느 단계에서 발달 과업에 빨간불이 켜지면 그 단계와 관련한 트라우마를 갖고 살아가게 된다. 이번 게임중독에 해당되는 청소년을 중점적으로 살펴보자.
1단계 : 생후 ~ 1년 ‘신뢰 vs. 불신’
이 시기에 아기가 원하는 것을 일관되게 얻고 욕구를 만족스럽게 충족하며 자신이 안전한 곳에서 살아가고 있음을 경험하면, 이 세상을 살 만한 곳이라 신뢰하게 된다.
2단계 : 걸음마하는 2세경 ‘자율성 vs. 수치심’
이제 걸음마를 시작하고 세상을 탐색해 나가는 2세경의 발달 과제다. 환경에 대해 자유롭게 탐색하고 충분히 경험하여 성취감을 느끼면 자율성이 생기지만, 이때 부모가 지나치게 통제하고 혼내거나 겁주면 수치심과 의심을 갖는다.
3단계 : 미취학 아동 3~5세경 ‘주도성 vs. 죄의식’
또래들과 경쟁하고 자기가 원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주장하는 동안 아이의 주도성이 길러진다.
4단계 : 초등학생 ‘근면성 vs. 열등감’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학령기 연령대로, 이때부터는 열심히 노력하는 것을 통해 성취감을 맛보기 시작한다. 그리고 자기가 노력한 만큼의 결과를 얻지 못하면 주변 또래집단에 비해 뒤떨어진다고 느끼게 되어 열등감이 생긴다.
5단계 : 청소년 ‘정체성 vs. 혼동’
내가 누구인지, 또 사회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개념을 형성하면 건강한 정체성이 만들어지지만, 이를 해내지 못하면 혼돈의 심리 상태에 빠져서 모든 것을 부정하거나 정서적으로 큰 괴로움을 겪는다.
에릭슨은 특히 이 시기에 주요한 두 가지 과제가 있다고 말했다. 하나는 자신이 어느 집단에 속하여 그 집단의 책임과 의무를 완수하는 ‘소속감(commitment)’이고, 다른 하나는 가족의 울타리 밖에서 새로운 것을 찾아보려고 시도하는 ‘탐색(exploration)’이다. 이 두 가지를 모두 잘 해내면 성공적인 정체성을 형성하는데, 만일 소속감만 있고 탐색할 용기가 없으면 ‘정체성의 조기 마감(foreclosure)’이 일어난다.
부모나 사회가 정해준 “너는 이런 삶을 살아야 해”라는 것만 지킬 뿐, 그 외의 다른 것에 대해서는 시도해 볼 엄두를 내지 못한다. 모범생으로 자라서 대기업에 취업해 부모가 원하는 배우자를 만나 결혼하는 삶도 이러한 예로 볼 수 있는데, 그런 경우에도 언젠가는 갑갑함을 느끼고 일탈을 시도한다.
반면, ‘소속감’을 거부한 채 ‘탐색’만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은 ‘모라토리엄(moratorium)’에 머무른다. 어딘가 소속되어야 할 의무들을 거부한 채 그저 새로운 것만 찾아보겠다고 모든 발달 과제를 뒤로 하고 여행만 다니거나, 무엇이든 시도만 할 뿐 끝을 맺지 못하는 것이다. 취업을 미룬 채 계속 새로운 공부를 하고 자격증을 따겠다고 준비만 할 뿐 무엇 하나 실체가 있는 일을 하지 못하는 경우를 예로 들 수 있다.
6단계 : 초기 성인기 20-40 ‘친밀감 vs. 고립감’
이 단계는 가족이 아닌 이성이나 친구와의 관계를 얼마나 친밀한 사회적 관계로 만들 수 있는지가 중요한 임무다. 적절한 친밀감을 형성할 수 있어야 결혼하여 가정을 이루거나 직업을 갖고 사회적 정체성을 만들 수 있다. 이를 성취하지 못하면 자신의 삶이 고립되어 있다고 느끼며 강한 우울감에 빠질 수 있다.
7단계 : 중년기 ‘생산성 vs. 침체성’
자기가 직접 성취하는 것보다 이제는 후배들에게 도움을 주면서 성취감을 느끼고, 이를 통해 후배들의 감사를 받는 것이 중요해지는 시기다. 이때 자기가 물려줄 만한 것이 하나도 없다고 느끼면 침체에 빠진다.
8단계 : 노년기 ‘자아통합 vs. 절망감’
이제는 인생을 정리하고 돌아보면서 삶의 의미에 대해 음미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이 단계를 잘 넘긴 사람은 삶의 통찰과 지혜를 얻는다.
에릭슨은 청소년기에 꼭 경험해야 할 두 가지 과제로, ‘소속감’과 ‘탐색’을 통해서 정체성을 찾는 다고 말했다. 쉽게 말하면 ‘나는 어떤 사람이야.’라는 것이다. 그 나이 때는 이게 목숨보다 중요하다. 민서는 공부 잘하는 아이야. 지연이는 노래를 잘하는 아이야. 서현이는 운동을 잘해. 쟤는 일진이야. 쟤는 프로 게이머야. 뭐 하나라도 내세울 것이 있느냐 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시기라는 것이다.
현실에서는 공부도 못하고 운동도 못하고 외모도 자신 없지만 게임 세계에서는 최고 레벨인 학생이 있다. 게임 속에서는 대부분의 경우 현실보다 멋있는 자아 정체감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게임 속에서는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친절하게 대한다. 이럴 경우 아이들이 어느 곳에 머무르고 싶은 곳은 게임 속일까? 현실세계일까?
게임을 하는 동안 아이들이 보여 주는 집중력은 인상 적고 놀랍다. 레벨이 올라가고 구조물과 악당을 부술 때 네 살 된 아이들도 흥분하며 자랑스럽게 환호한다. 그런 성취가 실제가 아니더라도, 이미지일 뿐이지만, 그 순간 우리 아이들이 느끼는 감정은 진짜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이런 정체감은 게임에서 나오는 순간 지속되지 않는다. 게임에서 나와 현실의 문제들과 대면할 때 현실의 문제들을 잊기 위해 게임을 더 해야 하는 악순환에 빠져든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과의 교제, 대화, 그리고 지적인 자극을 갈망한다. 온라인에서는 쉽게 다른 사람들과 연결될 수 있다. 온라인에서 만난 사람들은 서로의 캐릭터에게 별명을 지어주고 안부를 묻기도 한다. 생사를 넘나드는 전투를 통해서 혈육처럼 느껴지는 유대감, 동료의식, 친밀감을 느낄 수 있다.
이처럼 팀원에게 소속감을 가지고 다른 사람들과 수다를 하면서 게임을 하기에 더 이상 혼자라고 느끼지 않는다. 그런데 하루는 24시간 이므로 온라인 세계에 몰두하면 현실의 관계들이 파괴된다. 그래서 현실에서 더 멀어지고 온라인에서 관계를 만드는데 더 많은 시간을 쏟는다. 결국 그들은 게임의 세계로 다시 가는 것 외에는 다른 선택이 없다고 느낀다. 역시나 악순환이다.
현실에서 가정, 직장, 또래들에게 받지 못한 느낌을 게임에 접속하면 몇 분 안에 그들의 집단에 안내를 받고 사랑을 받고 필요한 사람이 되고 그리고 받아들여지는 느낌을 갖는다. 이때 뇌에서 아드레날린이 분출한다.
온라인 자기표현과 상호작용의 전문가인 Nick Yee가 수행한 3천 명의 게이머에 대한 연구에서 40%의 남성과 53%의 여성들이 그들의 온라인 친구들이 현실의 친구들과 동등하거나 더 낫다고 말했다. MIT학술지의 조사에 의하면 게이머들의 1/4 이상이 지난주의 정서적 최고조는 게임에서 일어났다고 말했다.
성취감, 정체성, 소속감을 바로 느낄 수 있는 게임에 중독되지 않는 것이 더 이상하지 않은가? 현실에서 이것들을 얻으려면 굉장히 많은 시간 노력해야 하고 반드시 얻는다는 보장도 없다. 하지만 게임은 이거 하다가 싫으면 저거 해도 된다. 어차피 게임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게임을 통해서 성취감을 느끼고, 정체성을 확인하고, 받아들여지는 느낌을 얻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이니깐.
그래서 게임을 하지 말라고 아무리 얘기해도 아이들은 게임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면 게임 속에 있는 아이를 현실로 불러오기 위해서 어떻게 하면 좋을지 다음 글에서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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