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우리 아이가 학습에 대한 동기를 가지게 할 수 있을까
중학교 1학년 지수는 성적이 중간 정도인 평범한 학생이었다. 대부분의 엄마가 한 번쯤은 해봤을 무모한? 시도를 지수의 엄마도 했다.
「지수야. 네가 반에서 1등 하는 게 엄마의 소원이다.」
지수가 알겠다고 했다. 의외의 반응이다. 뚱한 표정으로 들은 척도 안 하거나, 엄마는 공부를 얼마나 잘했냐고 난동을 부리거나, 격분한 마음에 집을 뛰쳐나가는 것이 대부분의 아이들의 보이는 반응이기 때문이다.
시험을 준비하는 한 달 동안 지수는 평소와 다르게 열심히 공부했다. 그러나 반에서 1등을 하지는 못했다. 현실은 의욕만 가진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괄목할 만한 성적 향상을 보였다. 평균이 60점대에서 80점대로 오른 것이다.
그리고 지수의 삶은 달라졌다. 지수를 대하는 가족의 태도, 선생님들의 칭찬, 아이들의 부러운 눈빛 등등... 이는 예상치 못한 것이었지만 달콤했다. 다음 시험에서 엄마는 지수에게 별다른 얘기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지수는 기를 쓰고 공부를 했다. 그 달콤한 것들을 잃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중학교 2학년 종훈이는 반에서 공부를 곧잘 하는 학생이었다. 공부를 좀 하니 엄마가 더 큰 욕심을 냈다. 종훈이의 엄마는 지수의 엄마보다 업그레이드? 된 소원을 말했다.
「종훈아. 네가 SKY 대학교에 들어간 뒤, 네가 통역을 하면서 같이 세계일주를 하는 게 엄마의 소원이다.」
얘기만 들어도 짜증이 밀려오는 이 말을 종훈이는 매일 들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닦달하는 엄마의 독촉에 종훈이는 결국 펜을 내려놓았다. 성적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평균 90점대에서 60점대로 하락했다. 엄마는 하얗게 질렸고 여기 저기 좋다는 고액과외 선생님을 수소문했다. 수업을 받으려면 몇 달을 기다려 된다는 말에 웃돈을 주고 아이를 바로 맡겼다. 그리고 이제는 문제가 다 해결될 것이라고 안심했다. 몇 달 뒤 시험을 봤다. 성적은 계속 60~70점대에 머물렀고 종훈이 엄마는 머리띠를 두르고 화병으로 쓰러졌다.
지수는 엄마의 소원이 학습에 대한 동기가 되었다. 반면에 종훈이는 그렇지 못했다. 왜 이 둘은 같은 엄마의 소원이라는 얘기에 이렇게도 다르게 반응한 것일까? 사실 이 질문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지구상에 없기 때문이다. 왜 그때 지수가 엄마의 소원을 이뤄주기 위해서 공부를 열심히 했는지 본인도 모를 것이다. 무수히 많은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주고받아서 그때 그렇게 된 것이다. 만약 일 년 전이나 후에 같은 얘기를 들었으면 어땠을까? 알 수 없다.
「옆집 아이는 이번 시험에 반에서 3등 안에 들면 필리핀에 어학연수 보내 준다니깐 열심히 공부하던데, 너는 왜 미국에 보내 준데도 공부를 안 하니?」
어학연수가 누군가에게는 꿈에 그리던 소원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PC방 가는 것보다 못한 것일 수도 있다. 이러한 예는 우리 주위에서 너무나도 쉽게 찾을 수 있다.
고등학교 2학년 동규는 학원을 빼먹고 당구장에서 친구들과 놀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멀리서 화장실을 청소하고 있는 엄마를 발견했다. 엄마가 건물 청소일을 하는 건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순간 울컥하는 기분이 들어서 그냥 건물을 나와버렸다. 그동안 엄마가 힘들게 돈을 벌어서 가족이 생활하는 것을 애써 외면했었다. 그 현실을 처음 맞닥뜨린 기분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었다. 엄마가 그렇게 고생해서 번 돈으로 보내 준 학원에 가지 않고 흥청망청 망나니처럼 놀았던 자신이 견딜 수가 없었다.
다음 날 동규는 삭발을 감행했다. 그리고 공부를 시작했다. 안 하던 공부를 하려니 좀이 쑤셔서 견딜 수가 없어 보였다. 중학교부터 고등학교 1학년까지 놀았으니 수업 내용을 따라갈 리 없었다. 나는 속으로 조금 하다가 말겠지 싶었다. 그러나 내 예상이 빗나갔다. 동규는 무척 괴로워 보였지만 그만 두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특히 수학과 과학에 흥미를 보였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고차원적인 사고를 하면서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재미도 느꼈다. 매일 학교가 끝나면 곧장 학원으로 와서 12시까지 수학을 공부하고 2시까지 과학을 공부했다. 그런데 몇 달이 지나도 성적은 제자리 걸음이었고 동규는 지치기 시작했다. 그러나 포기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1년을 버티자 드디어 성적이 오르기 시작했다.
흔히 말하는 명문대학교는 아니지만 서울에 있는 4년제 대학교에 지원을 했다. 합격통지서를 받은 날 엄마와 같이 울었다고 한다.
고등학교 1학년 재성이는 노는 아이다. 소위 일진이라고 불리는 아이들과 어울려 다닌다. 재성이 엄마는 집 근처 시장에서 나물을 다듬어 판다. 재성이는 용돈이 필요할 때면 일하고 있는 엄마한테 갔다. 그날도 엄마한테 용돈을 받으러 가는 길이었다. 그런데 멀리서 손님과 실랑이를 하는 엄마를 발견했다. 자세한 건 모르지만 돈 몇 백 원 때문에 언성이 높아진 모양이었다. 얼마 되지 않는 돈 때문에 볼성사납게 소리를 지르는 엄마와 사람들을 뒤로 하고 재성이는 발걸음을 돌렸다. 그런데 갈 데가 없었다. 그래도 어디든지 가야 했다. 결국에 친구들이었다.
다음날 재성이는 염색을 했다. 피어싱을 하고 문신을 하고 잠시 주춤했던 담배도 다시 피웠다. 꿀꿀한 기분에 오토바이를 타고 친구들과 광란의 질주를 하면서 소리를 지르자 답답한 마음이 뻥 뚫리는 듯했다. 돈이 떨어지면 더 이상 엄마한테 가지 않았다. 대신 근처에 있는 초등학생이나 중학생의 돈을 뺐었다. 그렇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소식이 끊겼다.
엄마가 힘들게 사는 모습을 보고 동규는 삭발을 하고 공부를 시작했지만 재성이는 염색을 하고 본격적으로 비행청소년이 됐다. 가난한 환경이 동규에게는 학습동기로 다가왔고 재성이에게는 그렇지 못했던 것이다. 같은 자극에 왜 이렇게 다른 반응을 보인 것일까? 마찬가지로 설명할 수 없다. 그리고 우리 아이가 어떤 환경에 놓였을 때 어떤 반응이 나올지도 예측하기 힘들다.
중요한 것은 아이들마다 학습에 대한 동기를 느끼는 포인트가 다르다는 것이다. 누구에게는 좋아하는 이성친구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이 학습에 대한 동기로 다가올 수도 있고, 다른 누구에게는 키가 작고 못생긴 외모로 인한 열등감이 학습 동기의 기폭제가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우리 어른들과 사회는 모든 아이들에게 단 하나의 학습동기만을 강요한다.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 들어가고 좋은 직업을 가지면 잘 먹고 잘 산다.」
인생을 살아보면 틀린 얘기는 아니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말을 듣고 학습에 대한 동기를 느끼는 아이들이 소수라는 것이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아무런 감흥도 느끼지 못한다. 오히려 계속 듣다 보니 학습에 대한 반감만 커지는 경우가 더 많다. 그러므로 일반 적인 얘기가 아니라 우리 아이에게 맞는 학습 동기가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동기를 찾는 게 쉬운 일이었으면 누구나 다 찾았을 것이다. 때로는 공부를 하는 것보다 동기를 찾는 게 더 어려울 수 있다. 그리고 결국 학습에 대한 동기를 찾지 못한 채 학창시절을 마감하는 사람도 많다. 그러나 어렵다고 포기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학습동기를 가지는 것이 평범한 능력을 가진 우리들이 공부를 잘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너는 공부는 안 하고 매일 노니?」
「알아서 할게요.」
「하긴 뭘 해. 매일 컴퓨터, TV, 휴대폰...」
「아이 또 잔소리야.」
「잔소리를 안 듣게 하면 안 되니?」
「알았어요. 그만 좀 해요.」
대부분의 가정에서 발생하는 부모와 자녀의 불화는 결국 공부에 관한 문제이다. 공부를 안 하려는 아이들과 공부를 시키려는 어른들의 충돌은 승자가 없는 싸움이다. 이는 아이들이 학습에 대한 동기를 찾아서 스스로 공부하기 전까지는 해결하기 힘들다.
정리하면, 모든 아이가 학습에 대한 동기를 가지게 할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은 없다. 아이들마다 외모, 성격, 생각하는 방식, 관심 있는 분야, 타고난 소질, 처해 있는 환경, 사는 지역 모든 것이 다르기 때문이다. 결국 학습에 대한 동기는 본인이 스스로 찾는 것이지만 주변의 어른들이 도움을 줄 수는 있다. 우리 아이가 학습에 대한 동기를 찾아가는데 어른들이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지 다음 글에서 알아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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