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석철 Sep 29. 2015

14 최고의 선생님

우리 아에게 꼭 맞는 최고의 선생님을 찾아서

  공부와 관련된 대부분의 문제는 결국 동기로 귀결된다. 마찬가지로 교육에 관련된 많은 문제도 결국 교사의 문제로 수렴한다. 학창시절에 어떤 선생님이 좋아서 그 과목을 열심히 했던 경험이  한두 번씩은 있을 것이다. 반대로 좋아했던 과목인데 어떤 선생님 때문에 싫어지게 되는 경우도 있다.


  한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들었던 심사평이 있다. 


「청중은 아무 감흥도 없는데 본인만 감동을 받으며 노래를 부르는 가수는 3류, 본인도 감동을 받고, 청중도 감동을 받으면 2류, 본인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청중은 감동하면 1류 가수.」 


  꽤 재미있는 심사평이라서 오랫동안 기억에 남아 있다. 이를 선생님에게 비유하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 


「아이들은 전혀 이해를 못하고 있는데 본인만 신나서 설명하면 3류, 본인도 신나고 아이들도 잘 이해하면 2류, 본인은 아무렇지도 않은데 아이들이 이해를 잘하면 1류 선생님.」      


  선생님이 새로 온다는 소문이 돌면 학생들이 가장 많이 하는 질문은 '그 선생님 잘 생겼어요(예뻐요)?'이다. 이런 질문을 듣고 씁쓸한 요즘 아이들의 세태를 한탄하며 혀를 찰지 모른다. 그런데 선생님이 새로 온다는 소문이 돌면 기존 선생님들이 가장 많이 하는 질문도 '그 사람 잘 생겼어요(예뻐요)?'이다. 그렇게 외모에 대한 평가가 끝나고 새로운 얼굴이 익숙해질 즈음, 아이들에게 '새로 오신 선생님 어떠니?' 하고 물어보면 대다수의 아이들은 바로 대답을 하지 못한다. 약간은 난처한 표정으로, '아.. 네, 괜찮은 것  같아요..'라는 애매모호한 대답을 한다. 아마도 본인들이 선생님을 평가한다는 것에 대해서 불편해하고, 뒤에서 남을 흉보는 것은 아닌지  조심스러워한다. 이 질문은 결국 새로 온 선생님이 ‘잘 가르치느냐?’하는 것이다.

      

  만약에 여러분에게 아래와 같은 질문을 던진다면 어떻게 대답하겠습니까?


  「당신은 어떤 선생님이 잘 가르치는 선생님이라고 생각합니까?」


  아마도 개인의 경험에서 비롯된 다양한 주관적인 생각들이 나올 것이다. 이를테면 열정적이고 헌신적으로 가르치는 선생님, 재치 있고 유머러스해서 수업시간에 웃음이 떠나가지 않게 만드는 선생님, 학창시절에 공부를 잘해서 좋은 대학을 졸업하고 학생들의 성적도 잘 올려주는 선생님, 학생의 눈높이에서 진심 어린 소통을 하는 선생님 등 여러 대답이 나올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생각들은 모두 주관적일 수 있으며, 이런 말을 들은 다른 사람들도 동의할지는 미지수이다. 그러면 정말로 누구나 고개가 끄덕여지는 잘 가르친다는 기준은 무엇일까? 이 질문에 대해서 1987년 키프(Keefe)라는 학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수업의 질이란 수업이 얼마나 학습자에게 적절한가에 달려있다.」 


  즉 키프에 따르면 수업을 듣는 학생에게 적절한 수업을 하는 선생님은 잘 가르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이 ‘적절하다’는 말이 또 보통 골치 아픈 말이 아니다. 앞자리에 앉아서 선생님의 말씀을 정갈하게 필기하는 예림이에게도 적절해야 하고, 뒤에 앉아서 샤프를 휙휙 돌리며 '어제 치킨 시켜서 먹다가 남은 게 남아 있으려나? 형이 다 먹어 치웠으면 어쩌지? 차라리 어제 다  먹을걸...'이라고 생각하는 호식이에게도 적절해야 한다. 그동안 공부를 못한다고 구박을 받다가  지난번 시험에서 처음으로 평균 80점을 넘겨 위상이 한껏 높아진 기본 실력은 없지만 의욕은 넘치는 명호에게도 적절해야 하고, 어려서부터 제법 머리가 좋다는 소리를 듣고 자라 왔지만 갈수록 공부가 하기 싫고 이성친구만 사귀고 싶은 제민이에게도 적절해야 한다. 문제는 이들 모두가 한 교실에 앉아서 수업을 듣는다는 점이다.     


  학생들은 본인의 수준보다 월등히 어려운 문제를 접하게 되면 공부할 엄두를 못 낸다. 반대로 본인의 수준에 한참 못 미치는 문제를 접해도 공부를 할 필요성을 못 느낀다. 본인이 도전할 만한 수준의 내용을 접해야만 비로소 공부를 한다. 그러면 1:1로 과외를 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일까? 과외를 받는 아이들이 전부다 성적이 오르는 것은 아니니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참 속 시원하게 대답하기 어려운 문제이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친구들 사이에 일본 애니메이션 붐이 일었다. 그렇게 한 참을 빠져서 보던 중 '왜 일본 만화는 이렇게 재미있는데 우리나라 만화는 재미가  없을까?'라는 지극히 합리적인 궁금증을 가졌다. 당시는 인터넷이 활발하지 않던 시대라 일본 애니메이션에 관련된 책을 몇 권 보았다. 그리고 어떤 책에서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었다. 요약하면 일본은 다른 나라에는 없는 ‘오타쿠’라고 불리는 마니아 층이 있는데, 이들은 취미로 만화를 즐기지만 만화에 대한 그들의 식견과 실력은 전문가 수준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들의 높은 기준에 맞지 않는 만화는 살아남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나는 무릎을 탁 치며 ‘이런 내용을 정리해서 교실 뒤에 붙여놓으면 나처럼  궁금해하던 친구들이 좋아하겠다!’ 하고 혼자서 생각했다. 그리고 내용을 정리해서 A4용지 두 장으로 교실 뒤에 붙여놓았다. 그러나 나 말고 아무도 그런 궁금증을 가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예상과 달리 아이들이 아무런 관심을 보이지 않아서 내심 실망했다. 그런데 당시 영어를 가르치던 선생님께서 '이거 누가 붙여 놓은  거냐?'라고 물어보셨다. 나는 속으로 괜한 짓을 해서 혼나는 것이 아닌가 걱정했다. 그때 반 친구들이 내가 붙였다고 말했다.


  「너는 참 고급스럽게 노는구나.」

  「너는 다른 애들과는 다르구나.」

  「너는 나중에 큰 일을 하게 될 거다.」


  그 말을 들은 지 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나는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왜냐하면 인생을 살면서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그 말이 나를 잡아주었기 때문이다. 대학생 때 과제를 하다가 ‘에이.. 내 주제에 무슨 대단한 것을... 그냥 다른 애들처럼 대충 인터넷에서 베껴서 내자.’라는 생각이 들 때면 그 말이 떠올랐다.


「너는 다른 애들과는 다르구나.」      


  대학생 때 친구들과 밤새도록 흥청망청 술을 먹고 첫차로 집에 돌아올 때면 그 말이 떠올라 괴로웠다. 


「너는 참 고급스럽게 노는구나.」


  잊어버리려고 해도 머릿속 깊이 박혀서 빼낼 수가 없었다. 4학년이 되어서 취업을 해야 했다. 어디 적당한데 취업해서 쉽게 일하고 돈은 많이 벌고 싶었다. 그 때도 그 말이 나를 흔들었다.


  「너는 나중에 큰 일을 하게 될 거다.」


  지금 생각해보면 고마운 말이지만 당시에는 스스로가 나태해질 수 없는 보이지 않는 채찍 같은 존재였다. 


  그때 선생님께서 어떤 생각으로 나에게 그런 말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별 생각 없이 그냥 가벼운 칭찬 정도로 하셨을 수도 있고,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을 수도 있다. 어쨌든 살아가면서 힘든 순간이 올 때마다, 그 말이 떠올랐다. 그 힘으로 많은 어려움을 견뎌낼 수 있었다. 그래서 나도 아이들에게 되도록 좋은 말, 희망적인 말, 학생의 장점을 살려서 행복한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말을 해주려고 노력한다. 


  「예지야, 성적표 나왔니?」

  「.....」  


  예지는 고개를 푹 숙이고 아무 말이 없다. 갑자기 집중 안 하던 공부를 열심히 하는 척을 한다. 


  「성적표 나온 거 다 안다. 점수 다 기억하고 있지?」

  

  똘망똘망한 눈망울이 튀어나오도록 놀란 눈에 눈물이 맺힌다. 그러다가 계속해서 추궁, 설득, 위로 등을 하니 굳게 다문 입이 서서히 열린다.


  「정말 이예요.. 실망하기 싫어서 전 안 보고 엄마 줘 버렸어요.」

  「그래? 점수 안 궁금해?」

  「네. 정말 안 궁금해요... 자꾸 중1 첫 중간고사가 평생 니 점수가 될 거라고...」

  「무슨 소리야?」


  그러자 옆에 있는 시험 못 본 다른 애들도 울 것 같은 얼굴로 거든다. 


  「정말 다 그래요~ 중1 점수가 중2 점수가 되고 그게 다음에 중3 점수가 되고...」

  「누가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니? 점수는 오르기도 하고 떨어지기도 하는 거지!」

  「정말이죠? 아니죠? 휴.. 다행이다~」

  「그럼! 물론 공부를 안 하면 그대로겠지만...」


  중학교 1학년 성적이 평생 간다는 말은 과연 사실일까? 몇몇 아이들에게는 사실일 것이다. 최상위권 학생들이 꾸준히 열심히 공부해서 성적을 유지하는 경우와 최하위권 학생이 계속 공부를 안 해서 성적을 유지? 하는 경우에는 말이다. 그 외에는 여러 가지 변수로 점수가 오르락 내르락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런데 왜 어른들은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아이들의 가슴에 비수를 박는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 설사 그런 경우가 많다 하더라도 계속 용기를 북돋아 자신감을 가지고 공부를 할 수 있게 도와줘야 하는데 말이다. 조금 있는 용기나마 ‘네 까짓 게 과연 무얼 할 수 있겠느냐?’는 식의 말투로 패배감에 젖어있는 아이들로 키울 필요가 있을까?     


  "산수유... 남자한테 참 좋은데..., 어떻게 표현할 방법이  없네."라는 광고 카피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천호식품 김영식 회장은 그의 저서 ‘10미터만 더 뛰어봐’에서 이렇게 말했다. 


  「어떤 사원에게 칭찬을 많이 해 주면, 그는 정말 유능한 사원이 된다. 그러나 안 좋은 소리를 많이 하면, 일 잘하는 직원도 어느새 바보가 되어 버린다. 말 한마디가 유능한 사원을 만들기도, 무능한 사원을 만들기도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칭찬만 하란 얘기는 아니다. 또 가식적인 칭찬은 상대방에게 아무런 감흥도 일으키지 못하고, 심지어 기분을 상하게 할 수도 있다. 위선적인 위로보다 진심 어린 조언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인다.


  선생님이 마음먹기에 따라 아이들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 연구가 있다. 개인적으로 아주 흥미롭게 본 연구이기도 하다. 1968년 하버드 대학교 사회심리학과 로젠탈 교수와 미국에서 20년 이상 초등학교 교장을 지낸 레노어 제이콥슨은 한 가지 실험을 했다. 그들은 먼저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한 초등학교에 다니는 전교생을 대상으로 지능검사를 했다. 그리고 지능검사 결과와 상관없이 무작위로 20% 정도의 학생을 뽑았다. 그 학생들의 명단을 교사에게 주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학생들은 지적 능력이나 학업성취의 향상 가능성이 높은 학생들입니다.」


  즉 아이들을 무작위로 선별했지만 담당 교사한테는 이를 숨기고 '잠재력이 높은 아이들'이라고 거짓말을 한 것이다. 지금으로 비유하자면 무작위로 아이들을 모아 놓고 담당 선생님에게 '영재반'이라고 말한 것이다.


  그리고 로젠탈 교수와 제이콥슨은 8개월 후 이전과 같은 지능검사를 다시 실시하였다. 정말 놀랍게도 8개월 전 명단에 뽑은 20% 정도 학생들이 나머지 80%의 학생들보다 점수가 높게 나왔습니다. 뿐만 아니라 학교 성적도 크게 향상되었다. 


  즉 선생님이 유능한 아이들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교육을 하니 정말 그런 아이들이 된 것이다.


  학습의 질을 좌우하는 것은 학생의 학습동기, 즉 공부를 하고자 하는 마음이었다. 그리고 교육의 질을 좌우하는 것도 교사의 마음가짐, 즉 아이의 잠재력을 믿고 헌신적으로 가르치고자 하는 마음이었다. 가르치는 사람이나 배우는 사람이나 결국 본질은 '마음'이었던 것이다.

     

  가르치는 방식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선생님의 출신 대학이 중요한 것도 아니다. 최고의 선생님은 아이의 수준을 파악해서 진심 어린 마음으로 잘 이끌어주는 선생님이다. 이러한 선생님을 만난 아이는 행운아다. 왜냐하면 실제 교육현장에서는 학생의 수준에 따라 교육의 질도 달라지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많은 교육현장에서 ‘수준별 학습’이라는 그럴싸한 이름으로 성적으로 반을 나누어서 수업을 하는 경우가 많다. 나는 이 수준별 반 편성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성적이 우수한 반에 들어가는 선생님의 표정과, 성적이 낮은 반에 들어가는 선생님의 표정이 너무나 다르기 때문이다.  ‘너희한테 얘기한다고 알아듣겠냐? 내 입만 아프지. 한심한 것들...’이란 표정으로 들어와서 과연 교육이 이루어질 수 있을까? 앞의 연구에서도 확인했듯이 선생님의 기대는 아이들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다. 이는 부모도 마찬가지이다. 지금은 공부를 조금 못해도, 행동하는 것이 어설퍼도, 생각하는 것이 부족해도 포기하지 말고 아이들을 이끌어 주어야 한다. 주위의 모든 어른으로부터 ‘포기’당한 아이들은 화석처럼 굳은 얼굴로 입만 움직인다.


「전 할 줄 아는 게 하나도 없어요.」 

「전 원래 이래요.」 

「제가 뭘 하겠어요.」 


  이런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아이를 전국에서 제일 유명한 강사의 수업을 듣게 한다고 달라지는 것이 있을까?


  정리하면, 최고의 선생님은 우리 아이를 헌신적으로 이끌어주는 선생님이다. 아직은 미흡한 점이 많지만, 성장 가능성을 믿고 아이의 수준을 고려해서 적절하게 가르친다면 그 아이는 훌륭한 교육을 받는다고 말할 수 있다. 선생님이 진심으로 다가가야 비로소 아이의 마음은 움직인다. 그리고 마음이 달라지면 공부를 대하는 아이의 태도가 달라진다. 그 결과 성적은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것이다. 결국 마음이었다. 다른 것은 다 부수적인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13 수업시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