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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석철 Sep 29. 2015

13 수업시간

수업시간에 아이들이 공부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학생들은 오전  9시부터 수업을 듣는다. 12시에 점심을 먹고 다시 수업을 듣는다. 그리고 학교를 마치고 학원에 가서 다시 수업을 듣는다. 대한민국 학생들이 하루 중에 가장 많이 하는 일은 수업을 듣는 것이다. 그런데 궁금증이 생긴다.


  수업시간에 과연 우리 아이는 공부를 열심히 할까?


  수업은 잘 따라가고 있는 것일까? 몇몇 부모님은 담당 선생님에게 전화해서 아이가 요즘 잘 하고 있는지 실제로 물어보기도 한다. 


  「안녕하세요. 저 원섭이 엄마예요. 」

  「아. 예~ 어머니 안녕하세요.」

  「제가 일하느라 바빠서 아이를 잘 볼 시간이 없는데, 요즘 애가 잘 하나요?」

  「원섭이는 별다른 문제는 없어 보여요. 수업도 열심히 듣고, 숙제도 성실하게 해 오는 편이에요.  」

  「아. 그래요? 다행이네요. 다 선생님  덕분입니다.」

  「아니에요. 원섭이가 알아서 잘 하는 거죠 뭐~」


  아이가 공부를 열심히 하면 선생님과 부모님의 대화는 이렇게 훈훈하게 마무리된다. 그런데 이런 경우는 별로 없다. 문제는 대부분의 아이들이 학업에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이다.


  「안녕하세요. 다빈이 엄마예요.」

  「아. 예 어머니 안녕하세요.」

  「선생님. 전화를 드릴까 말까 한 참  고민했는데요... 하아...(한숨) 저기 다빈이가요...」

  「네...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든다.)」

  「이번에 가져온 성적표를 봤는데요...」

  「아. 예...(불길한 예감은 틀린 적이 없다.)」

  「80점이 넘은 과목이 하나도 없네요...」

  「아. 네...」

  「얘가 뭐가 문제일까요?...」

  「.....」


  그리고 정적이 흐른다.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딱히 할 말 없다. '저는 열심히 가르쳤는데요. 얘가 공부를 안 하는 걸 어쩌겠습니까?'라고  말하는 것은 책임을 전가하는 것처럼 들린다. 코치의 능력은 지도하는 선수의 성적으로 평가되고 교사의 능력은 가르치는 학생의 성적으로 평가된다. 그렇다고 '죄송합니다. 다 제 잘못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도 좀 이상하다. 그리고 학교 선생님과 학원 선생님은 입장이 다르다. 학교 선생님은 아이의 성적을 주는 권한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학생이나 부모님이 섣불리 불만을 제기하기 힘들다. 괜히 한 마디  잘못했다가 우리 아이가 밉보여서 수행점수나 태도 점수에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학원 선생님은 되도록 아이가 학원에 오래 다녔으면 하기 때문에 진실을 은폐? 하는 경우가 많다. 사실은 문제가 많은데도 이를 드러내려 하지 않고 일단 덮어둔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과연 우리 아이가 수업시간에 어떻게 보내는지 알 길이 요원하다. 이러한 답답함을 조금은 해소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바로 아이의 책이나 노트를 살펴보는 보는 것이다. 책이나 노트는 이 책의 주인이 수업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오히려 가르치는 선생님보다 더 객관적일 수 있다. 


  선생님들은 가르치는 방법과 열정에서의 차이가 있을 뿐, 전달하는 지식의 내용적인 면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고 봐야 한다. 없는 내용을 만들어서 가르치는 것이 아니니깐 말이다. 다 교육과정에 나와 있는 내용을 설명하고 전달하는 것이다. 그래서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다른 수업을 들어도 아이의 성적에 변화가 없는 것이다.


  책이나 노트를 보는 별다른 기술은 없다. 그냥 펼쳐 놓고 보면 된다. 그리고 상식적으로 판단하면 된다. 과연 이게 수업을 열심히 들은 사람의 책인지, 아니면 책은 펼쳐 놓고 수업시간에 앉아 있었지만 딴 생각을 하면서 시간을 보낸 것인지. 이는 누구나 판단할 수 있다. 만약 아래처럼 필기가 되어 있으면 적어도 수업시간에 딴 짓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색깔볼펜으로 정갈하게 필기한 흔적이 보인다. 이는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중요하다고 강조한 것을 반영한 것이다. 이렇게 필기를 한 책으로 공부를 하면 어떤 부분이 더 중요한지 한 눈에 파악이 되기 때문에 성적이 안 좋을 리가 없다. 


  고등학생 때였다. 수업시간에 놓친 필기를 하기 위해서 당시 공부를 잘 했던 친구의 책을 빌렸던 적이 있다. 그런데 책을 펼치고 깜짝 놀랐다. 그 단원의 키워드는 형광펜으로 칠해져 있었고, 일반적인 필기는 파란색으로, 선생님이 중요하다고 강조한 내용은 빨간색으로 정리가 되어 있었다. 한 눈에 무엇이 중요한지 일목 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샤프로만 적어 놓았던 내 필기와 너무나 비교가 되었다. 이 후로 나도 그 친구를 따라 했다. 


  사실 초보자가 상급자로 가기 위한 지름길은 상급자를 따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지난번 시험하고 비슷한 시간을 공부했지만 결과는 더 좋았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 형광펜과 파란색, 빨간색 볼펜을 사용하면서 필기를 하다 보니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 이거는 이 단원의 핵심 문장이니깐 형광펜으로 칠하자.' '아 이 내용은 선생님이 중요하다고 했으니깐 빨간색으로 써야지.' 이전에 샤프로만 필기를 할 때는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칠판에 있는 내용을 옮겨 적을 때가 많았다. 수업시간에 질적인 변화가 온 것이다. 그래서 아이와 학업에 대해서 상담을 할 때 단색으로 필기를 하는 학생을 보면 우선적으로 색깔볼펜과 형광펜의 사용을 권장한다.


  아마 대부분의 책이나 노트를 펼쳐보면 아래처럼 되어 있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될 것이다. 아래 노트는 위의 노트와 같은 수업을 들은 학생의 것이다. 이렇게 수업시간에 필기부터 차이가 나니 아무리 학원을 보내고 과외를 시켜도 생각만큼 공부가 잘 안 되는 것이다.



  경험상 필기하는 방법만 달라져도 성적은 달라진다. 그러나 필기하는 습관을 바꾸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람은 해오던 습관을 바꾸는 것에는 본능적인 저항감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단색으로 필기하는 아이들에게 색깔볼펜과 형광펜 사용의 중요성을 설명하고 한 번 해보라고 권해보면  대체로 두 가지 결과를 맞이하게 된다. 


  첫 째, 본인은 그냥 샤프로만 필기하는 것이 공부가 더 잘 된단다. 물론 성적은 좋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인의 방법을 고수하겠다고 단호하게 말한다. 그러니 방법이 없다. 여기서 아이에게 


「너는 선생님이 좋은 방법을 알려 줘도 왜 시키는 대로 하지 않니? 그러니 니 성적이 그 모양이지!」


  이렇게 말하고 싶어도 참아야 한다. 억지로 볼펜을 손에 쥐게 할 수는 있지만, 강제로 공부를 시킬 수는 없기 때문이다. 특히 사람은 감정이 상해 버리면 오히려 더  삐뚤어지는 경향이 있다.


  둘 째, 형광펜과 색깔 볼펜으로 필기를 하고 싶지만 지금 준비가 안 되어 있으니 다음 시간에 꼭 사가지고 오겠다고 약속을 한다. 물론 약속은 지켜지지 않는다. 삼일이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도 아이들은 계속 잊어 먹는다. 볼펜을 사오는 것도 기억하지 못 하는 학생이 어려운 학업 내용을 기억할 수 있을까? 또 사오려고 했는데 돈이 없단다. 그런 아이들일 수록 피시방은 잘 다니고 쉬는 시간에 간식 사먹을 돈은 있다. 돈이 없는 것이 아니라 볼펜을 살 돈이 없는 것이다. 이처럼 교육현장에서 만나는 아이들이 제대로 된 필기를 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상당히 길다. 몇 달이 지나도록 '준비'조차 못 하는 학생도 있다. 또 어찌어찌  준비했어도 금방 잃어버린다. 아니면 누구한테 빌려 줬는데 못 받았다고 필기를 못 하는 것을 그 학생의 탓으로 돌린다. 혹시 '우리 아이는 아니겠지?'라고 생각하는 부모님은 지금 아이의 필통을 한 번 확인해 보자. 


  위의 두 학생의 경우는 어쨌든 필기는 되어 있었다. 문제는 아이들의 책을 펴보면 아래와 같은 경우도 꽤 많이 볼 수 있을 것이다. 처음에는 필기를 하다가 (물론 이마저도 하기 싫은 공부를 억지로 하는 티가 난다.) 나중에는 미술시간이 되어 버렸다. 




  이렇게 수업시간을 의미 없게 흘려 보내고서는 1년이 아니라 10년을 공부해도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 이 때 어른들이 할 수 있는 최악의 선택이 아이를 불러서 잔소리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많은 어른들이 이 방법을 선택한다.


「너 책이 이게 뭐야? 공부를 하는 거야 마는 거야?」

「아니 갑자기 왜 그래요?」

 

  아이 입장에서는 마른 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진 것이다.


「너 책하고 공책을 보니깐 필기가 하나도 안 되어 있잖아! 편하게 공부하게 해 주니깐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어디 수업시간에 딴 짓을 하고 있어! 얼마나 힘들게 번 돈으로 공부시켜 주는데! 이딴 식으로 할 거면 다 때려 치우고 당장 기술이나 배워! 」

「.....」


  이렇게 아이에게 한 번 속 시원하게 퍼붓고 나면 마음이 가라앉을까? 그렇게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 혹시 아이가 '아 수업시간에 필기를 안 하고 딴짓을 하다니 정말 잘못했구나!'라고 생각할까 아니면 '흥 갑자기 왜 이래? 아 짜증 나.  드라마할 시간 다 되었는데 잔소리 좀 그만하지...'라고 생각을 할까? 실제로 예전에 공장에서 일할 때 만난 홍대리의 아버지는 화를 참지 못하고 결단을 내렸다.


「그렇게 공부가 하기 싫으면 다 때려 치워라!」


  그리고 마당에 책을 다 가지고 나와서 불로 태워버렸다고 한다. 그리고 홍대리는 어찌어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공장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공장에서 일하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다만 대기업의 요구조건을 맞추려면 최저임금으로 주야 2교대를 돌아야 한다. 따라서 일은 고되고 밤낮으로 열심히 일해도 미래를 보장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아이가 공부를 하기 싫다고 해서 아이가 원하는 대로 들어준 아버지는 좋은 아버지일까?


  미희를 처음 봤을 때 중3이었다. 그런데 아이가 너무 기본이 안 되어 있었다. 다른 선생님에게 물어봐도 비슷한 대답이 들려왔다. 수학은 분수의 통분, 이항을 못한다는 것이다. 어머니와 통화를 해보니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아이가 공부를 힘들어해서 중1부터 중2까지 공부를 쉬게 해주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중3 과정을 제대로 따라갈 수가 없었다. 아이가 힘들다고 해서 원하는 대로 들어준 어머니는 좋은 어미니일까?


  그럼 화가 치밀어 오르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 상황을 파악했으니 티내지 말고 조용히 알고만 있자. 섣불리 고치려다가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


「너 책이 왜 이래? 왜 필기가 하나도 없어? 공부는 제대로 하는 거니?」

「엄마 왜 허락도 없이 남의 책을 보고 그래?!」


  아이가 '사생활을 침해'했다고 길길이 날뛰면 대처를 하기 힘들다. 일단 자식이라도 남의 물건을 주인 허락도 없이 손을 댄 것은 사실이니깐 말이다. 또 핑계의 내공이 높은 아이도 상대하기 힘들다.


「너는 수업시간에 뭐하는 거니? 왜 이렇게 책이 깨끗해?」

「이 선생님은 필기 안 하고 프린트로 정리해서 준단 말야. 엄마는 잘 알지도 못하면서 그래!」


  이 또한 대조할 수 있는 증거가 부족하기 때문에 할 말이 없다. 그러므로 책을 보고 홧김에 잔소리를 하게 되면 아이의 행동을 고치지도 못하고 감정만 상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좀 더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사실 하루 종일 앉아서 수업을 듣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이는 지금의 어른들이 학창시절에도  마찬가지였다. 수업시간에 계속 집중하면서 공부할 수 있는 아이는 전국에 몇 명 없다. 더군다나 공부를 해야 할 이유도 없는데 말이다. 이런 아이를 180% 확 바꾸는 것은 사실상 어렵다.


  이럴 때 선생님에게 전화해서 물어보는 게 좋다. 이야기할 때는 사실대로 담담하게 말하는 것이 좋다. 어떤 부모님은 우리 아이가 공부를 못한다고 인식되면 무시당할까 봐 아이의 성적을 부풀려서 말하기도 한다. 그런데 아이를 삼일만 가르쳐 보면 거짓말은 금방 드러나기 때문에 다 부질없는 짓이다. 또 반대로 아이의 능력을  한 없이 깎아내리는 부모님도 있다. 굳이 이럴 필요도 없는 것 같다. 그저 솔직하게 아이의 책을 보니깐 필기가 하나도 안 되어 있는데 수업시간에 필기는 잘 하는지 신경 써 달라고 말하면 된다. 그렇게 하나씩 조금씩 고쳐 나가야 한다.


  그리고 아이에게도 왜 필기를 안 하느냐고 '훈계'를 하면 안 된다. 훈계를 듣고 본인의 부족한 점을 바로잡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대부분 마음속으로 감정만 상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지 말고 요즘 공부하는 것에 대해 '상담'을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상담이라고 해봐야 거창한 것이 아니라 그저 요즘 어떻게 지내나 들어주는 것이다. 별일 없어도 그저 들어주자. 앞뒤 안 맞는 말을 해도 참고 들어주어야 한다. 얘기를 하다 보면 말하는 사람의 마음속에서 스스로 반성이 일어나고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도 떠오르게 마련이다. 얘기를 들어주는 것이 잘못된 점을 지적하는 것보다 더 효과가 좋다. 그러므로 얘기를 들어주는 것이 사실 엄청나게 도와주고 있는 것이다. 


  정리하면, 우리 아이가 수업시간을 어떻게 보내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책이나 공책을 살펴보면 된다. 그런데 필기가 엉망인 것을 보고 흥분해서 화를 내면 안 된다. 일단 모른 척 해야 한다. 중요한 것은 아이가 수업시간에 열심히 공부를 하도록 이끄는 것이지 아이의 단점을 지적해서 감정을 상하게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이를 직접 지도하는 선생님에게 상황을 잘 설명하면 된다. 그리고 아이에게는 요즘 공부는 것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어주자. 의외로 사람들은 말하다 보면 스스로의 부족한 점은 반성하고 고치는 경우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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