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석철 Sep 27. 2015

12 자습시간

자습시간 활용법에 대한 보고서

  고2 상국이는 학교를 마치면 학원에 간다. 주말에는 과외도 한다. 그런데 성적이 오르지 않는다고 푸념을 한다. 그 얘기를 듣고 상국이가 공부하는 모습을 주의 깊게 살펴보았다. 그리고 상국이가 왜 성적이 오르지 않은지 그 이유를 금방 찾을 수 있었다.


  자습시간에는 그날 배웠던 것을 정리하고 복습하는 시간이다. 이 시간은 정말 소중하다. 왜냐하면 수업시간에 배웠던 내용이 진짜 내 것이 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자습시간에 앉아 있는 자세만 봐도 그 학생의 학업 수준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공부를 하는데 성적이 오르지 않는다고 푸념하는 아이들은 대부분 이 자습시간을 잠으로 허비하는 경우가 많다.


상국이는 자습시간에 인강을 위한 노트북에 휴대폰을 충전시키면서 본인의 체력도 충전시키고 있었다.


  이는 상국이의 문제만은 아니다. 거의 대부분의 아이들과 어른들이 수업을 들었다는 것을 공부를 했다고 생각한다. 즉  


[ 수업을 들었다 = 공부를 했다 ] 


이렇게 '착각'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수업을 듣는 것이 정말 공부하는 것이 아닐까?' 의아해할 수도 있다. 전국에 있는 모든 아이들이 수업을 듣는다. 그런데 왜 누구는 공부를 잘 하고 누구는 공부를 못하는 것일까? 차이는 수업을 듣는 것이 아니라 배운 것을 체내화 시키는 과정에 있다. 배운 내용을 스스로 요약하고 정리하는 과정을 통해서만이 실력이 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 과정이 없이는 절대 배운 지식이 내 것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아이들이 집에서 이런 저런 이유를 복습을 하지 않기 때문에 학교나 학원에서 자습시간을 할당해 놓고 있는 것이다.


  상국이를 따로 불렀다. 그 날 배운 것을 정리하는 자습시간이 얼마나 중요한지 구구절절이 설명해 주었다. 상국이도 참회의 표정을 지으며 앞으로 자습시간에 절대로 자지 않고 그 날 배운 것을 열심히 정리하고 복습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그 날 자습시간에 상국이가 공부를 잘 하고 있나 살펴보았다.


상국이는 자습시간에 엎드려 자지 않았다. 대신에 앉아서 졸고 있었다.


  예상치 못한 변수가 발생했다. 상국이는 전 보다 더 비효율적인 자습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편하게 자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공부를 하는 것도 아니었다. 목디스크를 유발하는 자세로 앉아서 졸고 있었다. 나는 후회했다. '그냥 편하게 자게 내버려 둘 걸 그랬나?' 차라리 편하게 자면 다음 시간에 정신이 맑은 상태로 수업을 들을 수 있었다. 


  상국이는 일단 잠에서 깨어나질 못했다. 그러니 무슨 공부에 대해서 운운하겠는가. 이런 아이들이 전국적으로 셀 수도 없을 정도로 많다. 아이들은 왜 잠을 잘까? 밀려오는 졸음을 참고 이겨내면서 공부를 해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당장의 달콤한 잠을 물리치고 공부를 해야 할 이유가 없으면 자게 되어있다. 역시 공부의 모든 문제는 결국 학습동기로 귀결된다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이런 아이들도 매일 자는 것은 아니다. 가끔씩 똘망똘망한 눈으로 자습시간에 앉아 있기도 하다. 


「오. 이게 웬일이야. 석현아 네가 자습시간에 깨어있을 때가 다 있고~」

「선생님 왜 이러세요. 제가 언제 잠을 잤습니까?」


  잠을 자는 아이들의 특징은 본인이 잠을 자는지 인지할 수 없다는 것이다본인은 자고 있으니 이를 보는 주위 사람들만 아 얘가 자고 있네.’라고 확인할 뿐이다그래서 자주 잠을 자는 아이들과 얘기를 해 보면 본인은 정말로 잠을 잔 적이 없고 잠깐 눈을 감고 쉬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오늘은 잘 잤나 봐?」

다섯 시간이나 잤어요.

정말 그거밖에 안 자고 생활이 되니?

잘 되는데요평소에는  한두 시간 밖에 못 자는데...     


  혼란스러울까 봐 설명을 하면 위에서 한두 시간을 잔다는 얘기는 학교에서 자는 시간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은 다섯 시간을 학교에서 잤다는 것이다. 밤에 자는 시간까지 더 하면 열 시간이 넘게 잠을 자는 것이다. ‘에이 설마 내 아이는 아니겠지...’하는 부모님이 많을 것이다. 아마 학교 교실에 CCTV를 달아서 보면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학교의 수업시간에 잠을 자는지 보고 놀라게 될 것이다.    

 

  이렇게 더 이상 잠이 오지 않을 정도로 잠을 자고 온 날이면 아이들은 자습시간에 공부하려는 시도를 한다. 그런데 평소에 해보지 않은 공부를 하려니 요령이 없다. 아이들이 공부를 하려고 시도하는 방법이 대부분 비슷하다. 바로 문제를 푸는 것이다. 여기서도 아이들은 문제를 푸는 것을 공부를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  즉


[ 문제를 푼다 = 공부를 한다 ] 


이렇게 ‘착각’한다는 것이다. 문제를 풀면서 공부를 한다는 말은 부분적으로는 맞다. 그리고 문제를 풀면 성적이 오르기도 한다. 그렇지만 어느 시점이 되면 더 이상 점수가 오르지 않는다. 그래도 아이들은 계속 문제를 풀면서 50점에서 70점으로 올랐던 것처럼 70점에서 90점으로 점수가 오를 것을 기대한다. 


  근본적인 물음을 던져보자. 공부란 무엇일까? 공부는 머릿속에 지식을 저장해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이는 반만 맞는 말이다. 공부는 머릿속에 지식을 저장하고 이를 꺼내는 과정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예컨대 A와 B라는 수학 공식을 외웠다고 하자. 시험에서 A 공식을 묻는 문제가 나왔다. 그런데 B 공식을 꺼내 들었다. 그러면 문제가 틀리게 된다. 즉 내가 A 공식을 알고 있다고 인정해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로 알고 있는데 말이다. 그러므로 머릿속에 지식이 있어도 이를 적절하게 꺼내야지만 비로소 그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인정받는다는 것이다. 



  공부는 ‘입력 + 출력’의 과정이 합쳐진 것이다. 입력은 수업을 듣고 책을 읽고 내용을 이해하고 머릿속에 저장하는 과정이다. 출력은 머릿속에 있는 과정을 말하고 쓰고 문제를 풀면서 꺼내는 과정이다. 그래서 수업만 들어서는 공부가 안 되었던 것이다. 반대로 문제를 푼 학생도 공부가 되었다고 볼 수 없다. 왜냐하면 학습을 한 내용이 머릿속에 있고, 이를 올바르게 꺼내는 훈련을 하는 것이 문제를 푸는 과정이다. 그런데 문제를 푸는 학생들을 보면 문제를 푸는데 필요한 지식이 머릿속에 없는 경우가 많다. 지식이 없으니 상식으로 풀거나 찍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리고는 공부를 했다고 생각한다.

      

  문제를 푸는 것에 대한 오해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학생들이 문제를 푸는 것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문제를 풀고 채점을 한다. 여기까지는 좋다. 그런데 풀었던 문제가 맞으면 좋아하고 틀리면 욕을 한다. 그리고 답안지를 대충 훑어보고 넘어간다. 끝이다. 


  그런데 이렇게 해서 성적이 올라가는 경우는 드물다. 사실 문제를 푼다는 것은 머릿속에 있는 지식을 확인하는 과정이다. 그래서 맞으면 당연한 것이고 틀리면 좋아해야 한다. 그 부분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다고 틀린 문제가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어느 부분을 더 공부해야 되는지 틀린 문제가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문제는 맞추려고 푸는 것이 아니라 틀리려고 푸는 것이다.     


  틀린 문제를 통해서 본인의 부족한 점을 분석할 수 있다. 어떤 지식이 부족한지, 아니면 지식은 있는데 활용능력이 부족한지 탐색해 볼 수 있다. 즉 일단 입력의 문제인지 출력의 문제인지 구분을 하고, 모자라는 부분을 보완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과정은 힘들고 어렵다. 그래서 학생들이 하지 않는다. 그래서 문제를 많이 풀어도 성적이 제자리인 것이다.


  고1 상훈이 아버지에게 전화가 왔다. 아이가 수업을 들은 내용이 하나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흥분해서 말했다. 왜 상훈이는 수업 시간에 들은 내용이 이해가 가지 않았을까? 이는 역설적이게도 수업만 들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수업이라는 것은 모르는 내용을 듣는 것이라 이해가 가지 않는 내용이 많다. 만약에 수업시간에 들은 내용이 다 이해가 간 다면 그 수업은 그 학생에게 맞지 않은 것이다. 수업시간에 들은 내용이 약간 혼란스럽고 아리송한 것이 정상이다. 그리고 그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을 정리해서 본인의 것으로 만들어야 하는 것이다. 가만히 눈만 뜨고 있으면 저절로 공부가 되는 수업은 없다. 공부의 입력과 출력이 균형 잡혀 있지 않으면 이렇게 오랜 시간을 공부해도 발전을 기대하기 힘들다. 


  그리고 공부라는 것이 시간이 필요하다. 문제는 학생들이나 어른들의 마음이 급하다는 것이다. 빨리 노력에 대한 결과를 기대한다. 요리도 10분 뒤에 설렁탕을 준비하라고 한다면 제대로 끓일 수가 없다. 그저 즉석식품을 사다가 데워서 줄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공부도 과목마다 필요한 적정 학습 시간이 있다. 학습자의 수준에 따라서 개인차가 있지만 주관적으로 영어나 수학의 기본을 잡는데 걸리는 시간이 대략 천 시간 정도 인 것 같다. 이는 하루에 세 시간씩 일 년을 공부해야 달성할 수 있는 시간이다. 그렇다. 공부는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요구되는 힘든 작업이다. 이 시간도 입력과 출력의 균형이 잡히지 않으면 실력이 늘지 않는다. 많은 선생님들이 본인의 수업만 들으면 이 시간을 줄일 수 있다고 광고한다. 그런데 아이들을 지켜보니 이런 저런 수업을 들어도 실력이 향상하는 데 걸리는 시간에는 큰 차이가 없는 것 같다. 결국 공부의 왕도는 없었다. 정도가 있을 뿐이다. 


  정리하면, 수업을 들은 것은 공부를 한 것이 아니다. 배운 내용을 정리하고 복습하는 것이 진짜 공부를 한 것이다. 그리고 문제를 푸는 것도 공부를 한 것이 아니다. 머릿속에 있는 지식을 꺼내는 훈련이 문제를 푸는 과정이다. 그런데 머릿속에 지식이 없으니 꺼낼 지식이 없다. 그러므로 문제를 풀기 전에 선행되어야 할 것은 머릿속에 지식을 정리해서 넣는 작업인 것이다. 이러한 입력과 출력의 균형이 잡힌 공부를 통해서만 실력은 발전한다. 그리고 이런 과정은 수업시간이 아니라 자습시간에 이루어진다. 

매거진의 이전글 11 천기누설 공부비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