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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석철 Oct 25. 2015

16 이해를 못하는 아이

왜 우리 아이는 이해를 못 한다고 말할까?

  중학교 1학년 상현이가 질문했다.


  「선생님 접속사 that 하고 관계대명사 that이 뭐가 다른 거예요?」


  지금까지 스무 번도 넘게 설명한 내용이었다. 순간 화가 나서  '너는 몇 번이나 설명해 줬는데 아직도 그걸 모르냐?!'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참았다. 앞에서 어른과 아이가 대화를 할 때 어른이 화를 내는 순간 더 이상의 대화는 힘들다고 얘기했었다. 한 번 생각을 해봤다.  그동안 1년이 넘는 시간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왜 상현이는 이제야 질문을 한 것일까? 두 가지 시나리오가 그려졌다.


  시나리오 A :  그동안 설명을 들으면서 궁금증이 생겼는데 참았다가 이제야 질문했다.

  시나리오 B :  그동안 수업을 듣지 않았다가 이제야 처음으로 들었다.


  어떤 것이 맞을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제라도 설명을 듣고 생각해 보니 헷갈려서 질문을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수업시간에 설명을 듣지 않고 앉아 있는 아이가 너무나도 많다는 것이다. 전국에 약 70% 정도의 아이들이 이에 해당될 것이다. 그러면 아이들은 교실에 앉아서 선생님의 설명을 듣지 않고 무엇을 할까? 질문에 대단 답은 간단하다 딴 생각을 하는 것이다. 쉬는 시간까지 몇 분 남았나 시계도 보고, 어제 있었던 드라마의 내용도 생각하고, 이번에 국어시간이 끝나고 쉬는 시간에 친구들하고 매점으로 달려가서 떡볶이를 먹을 생각도 하고, 마음에 드는 이성친구도 생각하고...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끝없이 이어진다.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설명하는 것을 들어야 하는데 다른 생각으로만 머릿속이 꽉 차있다. 지금의 어른들이 어릴 때는 달랐을까?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가르치는 만큼 아이의 머릿속에 지식이 들어간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아이들이 허락하는 만큼 지식이 들어오는 것이다. 상훈이는  그동안 접속사 that과 관계대명사 that이 머릿속에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던 것이다. 귀에는 들렸지만 스쳐지나 갔던 것이다. 그저 그런 것이 있나 보다 하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수민이 아버지에게 전화가 왔다. 격양된 목소리로 몇 분간 얘기한 내용을 간추리면 아이가 수업 내용을 이해하지 못 한다는 것이었다. 수민이가 수업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큰일이 난 걸까? 이 역시도 두 가지 시나리오가 그려진다.


  시나리오 A : 모르는 내용을 들으니 이해가 안 갔다.

  시나리오 B :  그동안 수업을 듣지 않았다가 이제 들어보니 무슨 말을 하는지 하나도 알 수가 없었다. 


  어느 것이든 큰일이 난 것은 아니다. 아이가 다 아는 내용이라면 수업을 들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수업은 당연히 모르는 내용을 들을 확률이 높다. 그리고  그동안 듣지 않았다가 이제라도 수업을 들으니 이 또한 흥분할 일이 아니다. 오히려 기뻐해야 할 일이 아닐까? 아이가 수업시간에 들은 내용이 이해가 안 된다고 하면 화내지 말고 기뻐하자. 왜냐하면 드디어 우리 아이가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이해를 못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한 번 들어서 이해가 간다면 전국에 공부 때문에 힘들어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두 번 읽고 세 번 읽어도 잘 이해가 안 가는 것이 공부이다. 그렇게 다섯 번 정도 읽으면 용어들이 익숙해지면서 어렴풋이 아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래서 '7번 읽기 공부법'이란 책도 나오는 것이다. 7번 정도는 읽어야 공부가 된다는 말이다. 우리 아이가 이해를 못한다는 말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말자. 오히려 이해가 된다는 말을 경계하자. 요즘 공부는 잘 되고 있는지 성적이 좋은 아이에게 물어보면 다음과 같은 대답을 들을 수 있다.


  「미정아. 요즘 공부는 잘 하고 있니?」

  「예?... 아.. 니요.. 잘 안 되는 것 같아요.」

  「그래 무슨 문제 있어?」

  「음... 잘 모르겠어요. 잘 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미정이는 치열한 격전지인 인문계 여고에서 전교 1, 2등을 다투는 아이이다. 반면에 성적이 좋지 않은 아이는 십중팔구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민석아, 요즘 공부 잘 되지?」

「네. 요즘 정말 공부가 잘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응 그래 계속 열심히 해라~」

「네. 알겠습니다~」


  왜 공부를 잘 하는 학생은 공부가 잘 안된다고 대답을 하고, 그렇지 못한 학생은 공부가 잘 된다고 대답하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것도 어렵지 않다. 공부를 잘 하는 아이는 이해가 가지 않는 내용을 계속 붙들고 씨름하고 있는 것이고, 그렇지 못한 아이는 이해가 가지 않는 내용은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생각하면 복잡하고 머리가 아프니깐. 그래도 공부는 해야 하니 쉬운 문제만 보고 있는 것이다. (이도 아니면 이렇게 불편한 주제의 대화를 빨리 종결시키기 위해서 어른들이 원하는 답을 해주고 자리를 뜨는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이해가 잘 가지 않는 내용을 가지고 씨름하는 학생은 공부가 잘 안된다고 말하는 것이다. 이를 비고츠키라는 심리학자는 '근접발달영역'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하였다. 비고츠키는 학생의 능력을 실제적 발달 수준과 잠재적 발달 수준으로 구분하였다.


실제적 발달 수준 :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수준

잠재적 발달 수준 : 도움을 받아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더 높은 수준


  이 두 수준 사이에 존재하는 영역이 근접발달영역인 것이다. 이를 그림으로 표현하면 아래와 같다.

근접발달영역


  비고츠키는 연구를 통해서 실제적 발달 수준은 비슷하더라도 근접발달영역은 다를 수 있음을 강조하였다. 실제로 교육현장에서 학생을 지도해보면 같은 70점을 받았던 학생인데 6개월 뒤에 계속 그 점수를 유지하는 학생도 있고 90점으로 오르는 학생도 있다. 대부분의 부모님이 하는 얘기는 다음과 같다.


「우리 아이는 머리는 좋은데 노력은 하지 않아요.」


  이는 비고츠키의 말을 빌리자면 아래와 같을 것이다.


「실제적 발달 수준은 낮지만 잠재적 발달 수준은 높은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적 발달 수준에서 잠재적 발달 수준으로 가는 첫 단계는 본인의 수준보다 높은 문제를 접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때 나오는 학생들의 반응은 십중팔구 다음과 같을 것이다.


「무슨 말인지 하나도 이해가 되지 않아요.」


  그러니 아이가 이해가 안 된다고 말을 해도 전혀 흥분할 일이 아니다. 아이의 눈 높이에 맞는 수업을 하자는 말을 많이 하는데, 그렇게 아이의 수준에 맞는 것만 배우면 발전이 더디다. 대한민국에서 공부는 취미나 교양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공부에서 어느 정도 성과를 보이지 않으면 평생 몸을 써서 힘들게 일해야 하는 미래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학생들이 어려운 내용을 학습하면서 이해가 안 되는 것은 공부를 하면서 늘 겪게 되는 자연스러운 일상이다. 이렇게 학생들이 근접 발달 영역에서 힘들어할 때 선생님이 학습자의 이해와 인지적 발달에 도움을 줄 수 있다. 모두가 바라는 교사의 진정한 역할이 이것이 아닐까?


  정리하면, 아이가 공부를 하는데 이해가 안 된다고 하면 기분 나빠하지 말자. 어떤 문제가 생긴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동안 공부를 하면서 아무 생각도 안 한 것이 문제라면 문제랄까? 수준이 올라가기 위해서는 당연히 이해가 안 되는 문제를 접해야 하고 이를 뛰어넘어야 한다. 이렇게 본인의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근접 발달 영역은 선생님의 도움을 받아서 한 걸음 더 올라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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