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신 시험을 잘 보기 위한 비법?
오래전 일이다. 학원에서 일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어머니 한 분이 교육비를 내러 오셨다. 보통 교육비는 카드나 계좌이체 두 가지로 많이 이루어진다. 그런데 그 어머니는 직접 현금을 가지고 오셨다. 늦어서 죄송하다며 꼬깃꼬깃한 천 원짜리까지 포함해서 결재를 했다. 시장에서 치킨을 튀겨 판다는 것을 들은 적은 있었지만 그날 처음 뵈었다. 돈을 내미는 손에는 수많은 기름 흉터 자국이 있었다. 그 손은 시간이 지나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과연 교육비를 내려면 치킨을 얼마나 팔아야 되는지 계산을 해봤다. 그리고 30만 원이라는 돈이 누군가에게는 적은 돈지일 모르겠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너무나 큰 돈일 수 있음을 깨달았다. 그 날의 경험 이후로 나는 스스로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되었다.
「나는 돈 값은 하고 있는가?」
나라에서 늘 사교육이 문제라고 하니 그리 당당하지는 못한 사교육 강사지만 받은 돈 값은 하고 싶었다. 그러나 이런 엄마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들은 공부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래도 나는 그런 아이들을 공부시켜야 한다. 공부를 시켜서 아이의 실력을 올리고 성적을 올려야 한다. 그것이 학원 강사의 유일한 존재 이유가 아닐까? 아이들 실력마저 키워주지 못한다면 학원 강사는 그저 가계를 힘들게 하고 사회를 어지럽히는 능력 없는 고학력 집단에 불과할 것이다.
1학기 중간고사가 끝났다. 학생들은 저마다 성적표를 받았다. 내신 시험의 좋은 점은 1달 열심히 공부하면 바로바로 성적이 달라진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내신 시험의 결과는 지난 한 달 동안 내가 얼마나 성실하게 공부하였는가를 나타내는 지표이다. 물론 몇몇 과목은 사전 지식이 많이 필요해서 한 달 동안 노력했다고 원하는 결과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수능 모의고사에 비하면 비교적 단 시일에 성적 향상을 기대할 수 있다.
고1 지민이는 공부에는 별 관심이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시험 대비를 하는 동안에도 학원에 자주 늦고 숙제도 안 해오기가 일수였다. 어느 날은 공부를 시켜 놓고 옆 교실에서 수업을 하고 오니 자리가 비어 있는 것이 아닌가? 말도 안 하고 도망친 것이다. '이런 애를 가르쳐야 되나?...'하고 자괴감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도 가르쳐 보니 조금씩 발전하는 모습이 보여서 그나마 그것을 위안으로 삼았다. 이런 아이들의 특징은 반복을 싫어한다는 점이다.
한 마디로 정리하면 시험공부는 결국 시험 범위의 내용을 '반복'하는 것이다. 무언가를 창의적으로 발명하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내용을 머릿속에 잘 정리했는지 확인하는 시험은 반복하는 만큼 실력이 좋아진다. 평균적으로 5번은 반복해야 기본은 한다. 그런데 성적이 저조한 학생들은 이렇게 반복해 본 적이 없다. 이런 아이들은 책을 한 번 읽고 나서 공부를 끝냈다고 생각한다. 일단 이 생각이 바뀌기 전에는 실력 향상은 기대하기 힘들다.
「이거 했는데 또 해요?」
「그거 이미 다 아는데요?」
「학교 선생님이 프린트 주셨는데 여기서 시험문제 많이 나온 댔어요. 이것만 보면 돼요.」
「기출문제만 달달 외우면 돼요.」
이렇게 얕게? 공부하는 아이들은 절대로 실력을 올릴 수 없다. 물론 시험에서 점수는 올릴 수 있다. 그러다가 한계점에 부딪힌다. 어느 시점이 되면 점수가 정체되거나 하락하기 시작하고 고3쯤 되면 본인의 실력으로 갈 대학이 없다는 사실에 마음이 급해진다. 마음이 급하니 '단기 특강', '속성 2주 완성', '50일 1등급 만들기' 같은 덫에 걸린다.
어쨌든 선생님은 아이들의 짜증 섞인 푸념을 듣기 싫어서 '그래 너 하고 싶은 대로 해라'고 내버려둔다. 물론 이해는 된다. 말을 물가에 억지로 끌고는 왔지만 본인이 안 먹겠다는 데... 아무튼 반복을 안 하다 보니 성적은 늘 제자리걸음이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이런 아이들은 말로 설득하기보다는 반복의 효과를 직접 경험하게 할 필요가 있다. 그러면 말하지 않아도 알아서 반복하게 되어 있다.
지민이도 5번 반복을 목표로 본문 내용을 해석하고, 내용을 설명해주고, 중요한 부분은 암기를 시켰다. 그리고 문제를 풀렸다. 틀린 문제를 보니 맞을 수 있는 문제를 틀린 것이 대부분이었다. 또 반복을 시켰다. 당연히 아이는 뾰로통한 표정으로 물었다.
「아~ 이거 했는데 또 해요?」
꿀밤을 한 대 때려주고 싶지만, 참았다. 그리고 다소 강제적으로 공부를 시켰다. 빨리 보내 달라는 둥, 숙제로 해오겠다는 둥 하급 기술? 들이 들어왔지만 때로는 아이의 의견을 들어주고 때로는 단호하게 거절했다. 애들이 원하는 대로 다 들어주면 공부가 안 되고, 매일 최선을 다하기를 바라면 아이들은 지친다. 완급조절을 하면서 한 달 간 어느 정도 공부를 시켰다. 문제 푸는 것을 포함해서 시험 범위의 내용을 대략 10번 이상 공부한 것 같았다. 시험이 끝났다. 지민이가 흥분에서 시험지를 들고 뛰어온다.
「샘 97점 받았어요! 머리털 나고 이런 점수는 처음 이예요!」
물어보니 중학교 때 늘 6~70점 대를 맞았단다. 오히려 중학교 성적을 몰랐던 것이 공부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중학교 성적을 미리 알았다면 선입견이 생겨서 기대치를 낮게 잡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다행히 돈 값은 한 것 같아서 나도 기분이 좋았다. 앞으로 지민이는 공부를 잘할 수 있을까? 거기까지는 알 수 없다. 다만 노력하고 성공한 경험이 아이 인생의 궤도를 조금이라도 긍정적인 방향으로 틀었다는 것에 만족한다. 이제 지민이는 주변 사람들의 달라진 태도를 경험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공부 잘하는 사람에게는 특급 대우를 해주니깐. 집에서 가족들의 말투, 친구들의 눈빛, 선생님들의 인정... 사람은 이 달콤한 것들을 한 번 경험해보면 놓치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러나 모든 아이들이 다 좋은 결과를 받은 것은 아니었다. 열심히 했지만 생각보다 결과가 좋지 않은 아이도 있었다. 기대했던 것만큼 결과가 나오지 않은 학생은 원인을 분석해서 어리석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시험 한 번이 끝났다고 모든 것이 끝난 것은 아니니깐. 다음 시험은 의외로 빨리 다가온다. 그리고 다음 시험에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는 아이들이 늘기를 바란다.
정리하면, 많은 학생들이 공부의 비법을 알고 싶어 하지만 개인적으로 공부의 비법이란 없는 것 같다. 그러나 내신시험을 준비하는 데는 비법이 있다. 이는 바로 '반복'이다. 시험 범위의 내용을 얼마나 여러 번 공부했는지가 가장 큰 변수로 작용한다. 내신 범위의 내용을 읽고, 이해하고, 정리하고, 외우고, 문제를 풀고, 틀린 문제를 정리하는 사이클을 도는 것이다. 물론 반복은 지겹고 힘들다. 그래서 아이들 스스로는 잘 하려고 하지 않는다. 반복을 해 본 적도 없고, 어떻게 하는지 모르는 아이도 있다. 책을 한 번 읽고 나서 공부가 끝났다고 생각하는 아이들이 의외로 많다. 주변 어른들이 아이의 내신 공부를 도와준다면 아이 인생의 전환점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