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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석철 Dec 27. 2016

52 풀꽃도 꽃일까? (2)

경쟁 아닌 협력. 주입 아닌 토론. 배제 아닌 배려.

논점 4. 진로 (풀꽃도 꽃이다 2권 p.78)


  사내자식이 뭐 할 게 없어서 그 시시한 만화가가 되겠다는 것이냐, 평생 남들 앞에 기 한번 못 펴고 지지리 궁상으로 가난에 찌들어 비실비실 살다가 뒈지고 싶냐, 아빠처럼 떵떵거리는 권력 갖고 부자로 편케 잘살라고 그렇게 입이 닳도록 말했더니 그 정반대로 뭐 만화쟁이, 그딴 건 죽어도 안 돼, 죽어도 안 된다고, 정 그딴 걸 하고 싶으면 이 에미를 죽이고 해!


  직업에 귀천이 있을까? 요즘 세상에 있다고 말하면 큰일 난다. 하지만 우리 마음속에는 있는 것을 어쩌겠는가. 다른 사람은 속여도 본인의 마음은 속일 수 없다. 우리 사회는 어떤 일을 하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경제적, 사회적 지위가 달라진다. 그러니 어른들은 아이들의 적성과 소질을 살려주고 싶어도 쉽게 그럴 수 없는 것이다. 살아보니 적성과 소질을 살린다고 행복하지만은 않더라는 것을 경험적으로 체득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말할 수밖에 없다.


「일단 공부해서 대학교에 들어가고 난 뒤에 너 하고 싶은 것을 해라.」


  문제는 이 말을 듣고 공부에 매진하는 아이들이 드물다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요즘 초중학교 부모님들을 만나보면 공부에 소질도 관심도 없다면 아이들이 하고 싶은 것을 시켜주겠다는 말을 많이 듣는다. 하기야 그런 말이야 예전에도 많이 들었다. 그러나 예전에는 이를 실천에 옮기는 경우는 드물었다. 초등학교 때 그렇게 얘기를 해도 막상 아이가 중학생이 되어서 성적표를 보고 나면 생각이 달라지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그런데 요즘에는 정말로 공부는 너 알아서 하라고 하고 아이의 적성과 소질을 계발시키는 데 초점을 둔 부모님들이 늘어나고 있다. 막상 좋은 대학교를 나와봤자 딱히 취직이 잘 되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 주된 이유이다. 이게 기쁜 일인지 슬픈 일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경기 악화로 어떻게든 먹고사는 문제가 어려워지자 드디어 적성과 소질에 맞는 교육을 시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논점 5. 공교육 붕괴 (풀꽃도 꽃이다 2권 p.91)


  ‘남들보다 먼저 하면 이길 수 있다!’ 부모들의 이 기대와 믿음을 확실하게 실행해 주는 것이 학원에 있었다. 그 유명한 ‘선행 학습’이다. 그것은 ‘남들보다 먼저 해서 꼭 승리’하길 바라는 마음을 딱 받아 ‘남들보다 먼저 가르쳐주는 것’이니 그보다 잘 어울리는 찰떡궁합은 더 있을 수 없었다. 이때부터 학원들만 배불려주는 자선을 베풀며 애들만 학대하는 잔혹극이 계속 공연되는 것이었다.     


  아까운 돈을 투자한 선행 교육은 아이들도 학원 교육도 함께 망치는 탁월한 효과를 나타냈다. 학원에 다니는 아이들은 누구나 방학 때 다음 학기에 배울 내용을 선행 학습으로 미리 배우게 된다. 하고 싶어서 하는 능동적 반복이 아니라 억지로 하는 그런 수동적 반복은 오히려 집중력을 저하시키고 공부를 지겨워하게 하는 역효과를 나타낼 뿐이었다.     


  이렇게 선행 학습이 이루어지고 있으니 아이들은 당연히 학교 공부를 하나 마나 한 것으로 우습게 여겼다. 그래서 언제나 절반 이상이 수업 시간에 선생 얘기를 듣지 않고 학원 숙제를 하고 있었다. 나머지 절반의 절반은 책상에 엎드려 심야삼경이었다. 그 아이들은 집에서 학원 숙제를 하느라고 잠이 모자라는 것이었다. 그러니 집에서 학원 숙제를 한 아이들은 학교에서 자고, 집에서 잔 아이들은 학교에서 학원 숙제를 하게 되는 것이었다.     

  이런 현실 앞에서 교사는 속수무책이었다. 절대다수의 부모들이 사교육을 신뢰하는 한 그들이 자기들 돈 들이고 선택한 길이니 어찌할 도리가 없는 일이었다. 학교는 사교육 복습장으로 바뀌고, 주기적으로 사교육 효과를 평가해 주는 시험장으로 전락해 있었다. 그러다보니 선생들 입에서는 “너희들 학원에서 다 배웠지?”하는 말이 불쑥불쑥 나가고는 했다.      


  이런 현상에 대해 매스컴에서는 ‘공교육의 포기’니 ‘공교육의 와해’니 하며 공격하고 비판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건 현장 교사들이 교육을 포기하거나 무책임해서 하는 말이 아니었다. 사교육 광풍이 공교육을 초토화시키는 것을 도저히 막아낼 방법도 없고 힘도 없는 교사들이 토해내는 자조의 한숨이고, 절망적 탄식이었던 것이다.


  대학원 졸업 논문을 쓰기 위해서 13년 만에 모교를 찾았다. 교감 선생님을 만나고 잠시 학교를 돌아보았다. 예전에 생활했던 복도를 걸어보니 감회가 새로웠다. 그리고 한 교실에 아이들의 수가 눈에 띄게 줄었다는 것을 확인했다. 일제히 칠판을 향하던 책상의 배치도 '모둠' 형태인 5~6명씩 마주 보고 있었다. 달라지지 않은 것은 여전히 아이들은 학업에 관심이 없었다. 창문 밖에서 슬쩍 본 중학생들은 앞에서 선생님이 수업을 하거나 말거나 스마트폰을 하고 있었다. 선생님도 제제를 하다고 포기한 모양이었다. 엎드려 자거나 친구와 장난치는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래도 예전에는 중학생들이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는데...'라는 숙연한 생각으로 학교를 나왔다.


  공교육이 무너지고 있다. 아니 무너졌다. 2014년 전국 교육감 선거에서 진보 교육감들이 대거 당선되었다. 당시 가장 큰 이슈는 '자사고 폐지'였다. 공부 잘하는 아이들이 특목 자사고로 다 빠져나가서 일반고가 슬럼화 된다는 것이다. 이에 시민들이 지지를 보냈지만 자사고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교육감의 권한으로 자사고를 없앨 수 없더라는 것이 이유다. 교육감의 권한은 자사고가 제대로 운영하고 있는지 관리 감독하는 것으로 제한된다는 것을 당선되고 나서 알았다.


  공교육이 이렇게까지 된 원인에 대해서 학교와 사회, 그리고 학원이 서로에게 비난의 화살을 보낸다. 그리고 어른들이 계속 이러고 있는 사이에 아이들은 교육 현장에서 방치되고 있다. 사교육의 중심에 있는 한 사람으로서 사교육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누구보다 잘 인식하고 있다. 그리고 사교육은 공교육에서 포용하지 못하는 아이들이 학업을 이어나갈 수 있게 도와주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초가 너무 부족해서 학교 수업을 전혀 따라가지 못하는 아이들. 학업 능력이 출중해서 학교 수업에는 도통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아이들. 또는 음악, 미술, 체육, 어학, 과학 등의 분야에 타고난 재능이 있는 아이들이 그러하다. 


  하지만 지금의 사교육 현장은 우리 아이만 뒤쳐지지는 않을까 불안해하는 경우. 우리 아이가 더 성적이 올라서 남보다 잘 하길 원하는 경우. 우리 아이가 이 좋은 성적을 역전당하지 않기 위해서 더 열심히 공부해야 하는 경우. 결국 모든 학생이 사교육에 매달리고 있다. 지금 우리의 현실은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정상이 아니다. 이런 문제를 조정래 선생님도 인지하고 있었다. 과연 책에서는 이런 문제에 대해서 어떤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을까?


논점 6. 자기 객관화 (풀꽃도 꽃이다 2권 p.279)


  저와 아내는 속칭 일류 대학을 나왔습니다. 그래서 애들도 우리 닮았겠거니 했습니다. 그런데 커가면서 학교에 다닐수록 그게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부부는 처음엔 당황스러웠고, 그 다음에 재빠르게 상황을 정리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우리고, 자식은 자식이다.’ 하는 그 다름을 받아들이기로 마음을 작정한 것입니다. ‘이 세상에 할 일은 많다. 그 무엇이든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도록 능력을 키워주자.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도록 능력을 키워주자. 제가 하고 싶은 일을 즐겁게 하고, 행복하다면 그게 성공한 인생이다. 이 세상 모든 직업은 성심껏 하면 굶지 않게 해준다.’ 우리 부부는 이렇게 마음을 정리하고 자식들 문제를 풀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니 본인들이 원하는 대안학교도 쉽게 보낼 수 있었던 것이지요.   

  

  처음에 누구나 다 그게 어렵습니다. 특히 우리나라 부모들 대부분은 자기와 자식들을 분리하고, 독립시키질 않고 자기와 동일시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가정 비극의 씨고, 뿌리입니다. 그 동일시로 인해 자식의 출세가 자기의 출세가 되고, 자식의 성공이 자기의 성공이 됩니다. 그런 비이성적 사고방식이 자식에게 집착하게 만들고, 그 집착이 자식이 1등 하기를 바라 자나깨나 공부를 닦달하게 되고, 그러다 보니 공부에 별 흥미가 없는 애들은 문제아로 몰리며 별의별 일들이 다 생기게 되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 세상에 어려운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가장 어려운 일이 자기를 객관화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자식과 나를 분리시켜 생각하는 것, 그것부터가 자기를 객관화하는 일입니다.     


  애들이 성적만 중시하고 경쟁만 부추기는 일반학교에 염증을 느끼고, 더 다니고 싶어하지 않으면 어쩌겠습니까. 공부란 그게 재미가 있어서 자꾸 하고 싶어지는 사람만 열심히 하면 되는 것이지, 공부가 적성에 맞지 않는 사람들까지 죽자 사자 매달릴 필요는 없는 일입니다. 인생살이에서 공부란 취지에 따라, 필요에 따라 적당하고 알맞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무한 경쟁이라는 황당한 깃발을 내걸어놓고 서로 1등 하겠다고 혈안이 되어 교육 광풍을 일으키고 있지 않습니까. 아이들의 인생은 아이들이 주인공입니다. 그들이 싫어하는 일을 강요하지 말고, 그들이 좋아하는 길로 가도록 도와주십시오. 그게 부모의 참된 역할입니다. 해매다 일반학교의 자퇴생들이 7만여 명입니다. 그리고 몇 년 사이에 대안학교가 300여개로 급증하고 있습니다. 그건 개성을 무시하고 성적만 중시하는 공교육의 실패를 입증하는 동시에, 대안학교가 그야말로 교육 문제를 풀 수 있는 하나의 ‘대안’이라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결국 부모는 부모고 자식은 자식이라는 것이다. 피를 나눈 사이지만 서로 다른 인생을 살아가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어려운 말로 '자기 객관화'라고 소개했다. 일리가 있는 말이다. 하지만 이게 그렇게 말처럼 간단한 거였으면 세상에 부모-자식 간 문제는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나아가 현재 어른들에게 설문 조사를 해보면 가장 후회되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젊었을 때 돈을 더 모았으면 하는 것이 2위고, 학창 시절에 공부를 더 열심히 했으면 하는 것이 1위다. 지금의 아이들도 당장에는 하기 싫은 공부를 하지 않고 좋아하는 일만 해서 행복하겠지만 나중에 이런 말을 할지도 모른다.


「왜 예전에 때려서라도 공부를 시키지 않았어요?」


  참 어려운 문제다. 책에서는 이렇게 개인 차원에서 하는 노력 외에도 사회적 차원에서의 노력도 요구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획일적인 주입식 경쟁 교육을 탈피한 '혁신 학교'의 확대다. 혁신 학교의 핵심 정신은 다음과 같다.


  경쟁 아닌 협력.

  주입 아닌 토론.

  배제 아닌 배려.


  이론적으로나마 이러한 가치를 실현할 수 있는 학교가 생긴다면 희망이 보이는 듯하다. 실제로 혁신학교는 매번 학부모들의 뜨거운 관심과 학생들의 적극적인 참여로 새로운 교육에 대한 롤 모델로 자리 잡고 있다. 물론 위에서 말한 학교의 핵심 정신을 토대로 교육할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을 것이다. 이제 막 시도하는 이러한 시도가 단지 실험이 아니라 제대로 자리 잡아서 우리 교육을 조금이나마 긍정적인 방향으로 인도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여기서 우리 시민들의 인식도 달라져야 한다. 고등학교 때 국영수 학습 능력으로만 모든 것을 평가하는 것을 지양하고 인간의 다양한 능력에 대한 가치를 인정해야 할 필요가 있다. 모든 인간의 능력은 다르다는 이 당연한 진리를 조정래 선생님은 나태주 시인의 <풀꽃>을 통해서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있다. 


풀꽃

                                       나태주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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