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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든든홍 Oct 27. 2024

다자이 오사무의 <만년>을 읽고 든 생각

나 자신이 인생의 빛나는 수난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나 자신이 인생의 빛나는 수난자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만년'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문장이다. '만년'에는 오사무의 이야기와 그가 쓴 단편들이 수록되어 있다. 난 다자이 오사무의 책을 좋아한다. '인간실격'은 몇 번이고 반복해서 읽었을 정도다. 책 속의 오바 요조는 나와 닮아 있다.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우스꽝스럽고 과장된 행동을 꾸민다는 점이나 작은 눈초리에도 벌벌 떠는 지나친 취약성이 그렇다.


그의 책을 읽고 위로를 얻었다. 세상에서 내가 제일 찌질하고 소심하다 생각했지만 그의 책을 읽음으로써 다자이 오사무가 말을 걸어오는 듯했다. 타인의 꾸중에 세상이 무너지는 것처럼 두려워하는 것도, 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지나치게 불안해하는 것도 너만 그런 게 아니라며 무심히 중얼거리는 듯했다.


글머리에 인용한 문장 또한 내 생각을 관통하는 문장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육성으로 '헉'소리를 낸 건 처음이었다. 더러운 밖보다는 깨끗한 안에서 노는 요즘 아이들이 오히려 아토피, 알레르기 등의 면역질환에 취약하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더러운 환경의 세균들에 접촉할 일이 없어 면역력이 약해지는 것이다.


내 취약성도 진정한 '고통'을 겪지 못했기에 생긴 면역질환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영화 속 시련을 겪는 주인공(빛나는 수난자)의 삶을 살아보고 싶다. 매일 타는 버스에서 갑자기 사고가 나서 죽으면 어쩌지'하는 기우를 코웃음 칠 정도의 단단한 사람이 될 것 같았다.


지금의 나는 일어나지도 않은 일들에 삶의 기운을 빼앗기며 살아간다. 정신력이 눈에 보이는 것이라면 내 것은 아주 작고 못생긴 갓난쟁이일 것이다. 외적으로는 청소년의 모습에서 막 벗어나고 있는 나지만 내 안에 있는 갓난쟁이가 마구 울어대면 한없이 심란해진다. 그 울음은 불규칙적이어서 대비할 수도 없다.


술집에서 민증 검사를 당하는 것이 까마득해질 정도로시간이 지나고 나면 내적으로도 성장해 있을지 궁금하다. 그때도 겉으로는 의젓한 척 하지만 '이빨에 음식물이 껴서 상대가 날 더럽게 생각하면 어쩌지'하는 생각에 빠져 마구 우는 갓난아이가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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