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여정
같은 시각 강원도 위치한 일본 치안부에서는 저잣거리에 적힌 포상금 지급에 관심을 보인 동네 주민과 친일계 사람들이 찾아와서 요시무라 장교와 함께 있었던 여성을 보았다고 제보를 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러한 인파 중에 석재의 친구인 주병철도 있었던 것이다.
시끌벅적한 치안부 안에서 야마모또 경부보가 부하들에게 말했다. "(일본어로) 사토 순사부장, 왜 이리 시끄럽나?" 사토가 말했다. "(일본어로) 아시다시피 그 조선인 여자를 잡아 오면 포상금을 준다고 했는데, 벽에 적힌 내용을 잘 못 이해를 하고 그냥 생김새가 비슷한 여성을 보았다면서 찾아온 사람들이 많습니다."
야마모또가 말했다. "(일본어로) 미치겠군. 여기가 지들 시장골목인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 같아... 하나 도움이 안 되는 이 사람들 모조리 내보네!", "(일본어로) 암튼 조선 놈들은 무식한 인간들만 득실득실하니, 저들이 모신다는 왕도 결국 대 일본제국 앞에서 꼼짝 못 하는 거지..."
복도에 지나가던 가나하라 경부가 야마모또에게 말했다. "(일본어로) 야마모또!, 뭔가 좀 얻은 정보는 없나?"
야마모또가 대답했다. "(일본어로) 하잇! 가나하라 경부님. 최근 열흘 동안 대략 100명 가까운 사람들이 여기 왔었는데, 전부 여성이 누군지도 모르고 비슷한 사람을 보았다는 정도였습니다. 그냥 은화 30전에 눈이 멀어서 온 사람들입니다.", "(일본어로) 이렇게 하다가는 살인 용의자를 잡는데 오랜 시간이 걸릴 듯합니다."
가나하라가 말했다. "(일본어로) 어디에 숨었는지는 모르지만, 대 일본제국의 일본군 장교를 살해하고서도 무사할 것으로 아는가 보군.", "야마모또! 혹시 요시무라 장교가 살해된 때를 기준으로 그 시점에 이상할 일이 생긴 것은 없는지도 함께 알아보는 게 좋겠군.", "가령 그 시기에 다른 누군가가 죽었거나 실종되었거나 또 다른 일본인이 납치 혹은 죽은 것은 없는지 모두 조사해 보도록!", 야마모또는 그렇게 하겠다고 했다.
치안부 건물로 들어와서 복도를 지나가던 주병철은 야마모또에게 다가가서 말했다 "저,... 제 친구가 석 달 전부터 행방불명되어서 그가 살았는지, 죽었는지 전혀 알 수가 없습니다.", 야마모또가 대답했다. "친구가 사라져? 너 이름은 뭐냐?", 병철이 대답했다. "네, 저는 주병철이라고 합니다.", 야마모또가 말했다. "네 친구의 이름은 무엇이냐?", 병철이 대답했다. "네, 석재라고 합니다.", "제가 며칠 전에 저쪽에 있는 산 근처에 초가집이 하나 있고, 거기에 사는 노인을 만났는데, 웬 남자가 밤에 비명소리를 지르는 것을 들었다고 하면서, 그 산에 살고 있는 야생 짐승들에게 잡혀 먹혔을 것이라고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친구가 살아 있을 것 같아서요"
야마모또가 말했다. "주병철이. 지금 나보고 너의 친구를 찾아달라는 것이냐?", 병철은 대답했다. "아무래도 벽에 붙여있던 일본군 장교분과 비슷한 시기에 실종된 것 같아서 뭔가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닌가 싶었습니다."
가나하라가 옆에서 듣고 있다가 말했다. "야마모또! 그 조선인이 말하는 것이 맞다면, 그 친구에 대해 당장 알아보도록!", "그리고 그 자의 주변인물들까지도 조사한 후에 내게 보고하도록!"
야마모또가 대답했다. "(일본어로) 하잇!,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가나하라는 자신이 일하는 방으로 들어갔다. 야마모또는 주병철에게 말했다. "네놈의 친구가 가장 친한 인간이 누구인지 알아내서 나에게 갖고 와라. 그럼 가보고", 주병철이 말했다. "순사님, 혹시 저도 이런 곳에서 일할 수 있나요?"
야마모또가 말했다. "이 놈 봐라. 왜, 여기서 일하고 싶냐?", 주병철은 말했다. "제가 딱히 일하는 것이 없어서 어떤 일이라도 시켜만 주시면 잘할 수 있습니다.", 야마모또가 대답했다. "그래? 알았어. 일단 가봐!"
야마모또는 일본인이면서 조선인과 소통하는 데는 전혀 지장이 없을 정도의 언어가 가능했다.
주병철은 치안부 건물에서 나왔다. 그리고 고민을 하게 된 것이다. 걸어서 나오면서 주병철은 혼잣말로 말했다. "음, 석재의 주변에 인물이라... 가장 친한인물?, 고태식??"
주병철은 그렇다고 고태식을 저 일본 순사들에게 얘기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치안부에서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심각하게 고민을 해야 할 상황이었다.
벌써 하루가 빠르게 지나갔다.
다음날 아침 박무열은 부모님에게 인사를 하고 가방을 챙겨서 집을 나왔고, 여동생의 유골이 묻혀있는 경기도 이남 지역으로 출발했다. 그렇게 출발하는 박무열을 누군가 부른 것이다.
"박무열 씨!. 저도 같이 갑시다.", 박무열은 대답했다. "혹시, 누구시죠?",
"저는 고태식이라고 합니다.", 고태식이 이어서 말했다. "아, 제 이름보다 저의 친척 형님이름을 알려드려야 이해를 하시려나?, 제 형님 성함은 고신국입니다."
박무열이 대답했다. "아, 신국이 동생이시군요?", "그런데 어쩐 일로 저와 함께 내려가신다고..." 고태식은 말했다. "실은 저의 친한 친구 녀석이 지금 경기도 이남지역에 가 있는 것 같아서 저도 함께 내려가서 친구 근황이라도 알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경기 이남까지는 제법 시간이 많이 걸릴 텐데요..."
박무열이 말했다. "저의 동생은 갑작스러운 죽음 앞에서도 자신의 생각보다 국가의 존폐를 걱정했던 것 같습니다.", "동생 앞에서 제가 많이 반성이 되었고, 그냥 며칠의 시간이 걸려도 걸어서 가보려고 합니다."
// 대략 150km 정도 떨어진 곳이었기 때문에 도보로 40시간은 걸어야 하는 거리였다. //
고신국이 대답했다. "저도 박무열 씨와 같은 생각입니다.", "저의 죽마고우가 살았는지 죽었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저 편하다고 쉽게 찾아갈 생각은 없었습니다. 그럼 같이 걸어서 가시죠"
그렇게 둘은 며칠이 걸릴지 모르는 여정을 위해 함께 출발했다. 그리고 일본군이 의병들과 싸움을 하는 상황이므로 산이 아닌 평지로 움직이기로 했다. 고태식은 일본에서 살고 있는 친척이 있었고, 또한 그가 미술공부를 위해서 동경에 다녀온 적이 있었기 때문에 안전을 생각하여 그동안 배워왔던 일본어로 상황에 대처할 생각이었다. 박무열 역시 부친인 박기린과 함께 일본 술에 대해 배우기 위해서 다녀온 적이 있었다.
이 둘은 조선인이지만 시기가 상당히 안 좋은 상황에서 최우선으로 생각한 것은 각자의 신변 보호였다.
그렇게 출발한 여정으로 다섯 시간을 걸어간 뒤에 잠시 배고픔을 달래고자 박무열이 가방에 넣어서 갖고 온 삶은 계란과 감자, 그리고 설탕을 탄 보리를 끓인 물과 같이 먹었다. 한 20분 정도를 쉬었다가 다시 여정을 위해 걸었다. 둘은 그렇게 강원도 횡성을 지나 문막이라는 곳에 도착했고, 그로부터 네 시간가량 걸었을 때에 경기도에 들어온 것이다. 총 열 시간 정도를 걸었을까, 다리가 저리고 피곤해서 다시 쉬어가기로 했다.
고태식은 박무열에게 말했다. "무열 씨는 겉으로 보기와 다르게 잘 걷는 것 같습니다.", "평상시에도 많이 건너 보죠?", 박무열이 대답했다. "아니요. 저는 걸어 다니는 것보다는 그냥 양조장에 처박혀서 다니지 않아요.", "제 동생이 사고로 죽은 후부터 뭔가 새로운 변화가 필요했나 봅니다. 뭔가 저에게도 목적이 생겼던 것 같기도 하고요..." 박무열이 말하자, 고태식이 대답했다. "그것은 바로 우리들에게 감정이라는 게 있기 때문이겠지요."
고태식은 말했다. "제가 궁에서 일하다가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궁에서 나와서 생활하게 된 이유도 제게 생겨난 감정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싶었던 열정이 강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사람들에게 있는 유일한 희로애락에 대한 감정, 그리고 정체성에 대한 의문... 즉, 나는 누구이며, 왜 지금 여기서 살고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하루도 몇 번씩하고 살았습니다."
고태식은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부모님을 따라서 일본에 갔다가 그곳에서 미술 하는 사람들과 알게 되었고 그들의 그림을 보면서 문화적인 충격을 받고 온 것입니다. 그러다가 선왕시절에 궁에서 여러 가지 분야에서 일할 사람들을 모집하는데, 신국 형님의 아버지, 즉 저의 큰 아버지의 추천으로 궁 안에서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냥 평범하게 살아갈 수도 있겠지만, 그림을 그리는 동안 저의 내면을 밖으로 꺼내서 종이나 천 위에다 표현하는 것은 새로운 삶의 방식이며, 제가 좋아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궁을 나왔죠"
박무열이 말했다. "태식 씨가 말하는 그림이라는 것이 참으로 대단한 것 같네요. 저와 같은 사람들은 그림을 볼 줄도 모르고 그릴줄도 모르기 때문에 격이 높은 사람들의 취미생활 정도로 보고 있었거든요."
그렇게 둘이 얘기하고 있을 무렵,...
들꽃열매교회에 모였던 백호와 석재, 상수는 김들꽃, 윤열매 선교사가 만들어준 음식으로 저녁 식사를 해결할 수 있었다. 상수가 말했다. "선교사님들, 이런 음식은 처음 접해 봅니다.", "저희가 며칠간 제대로 끼니를 때우지 못했더니, 가히 진수성찬을 보게 됩니다.", 석재도 말했다. "급히 막걸리를 생각나게 하는 음식이네요"
백호가 말했다. "석재 씨는 이제 술을 마시지 않을 텐데, 막걸리 생각이 나시나 봅니다". 석재가 대답했다 "그러게요. 제가 하루에도 술을 마시지 않은 적이 없었는데, 삶이 이렇게 바뀌게 되네요"
윤열매 선교사가 말했다. "두 분은 서로 잘 아는 사이신가요?", "상당히 친해 보입니다." 백호가 대답했다. "아, 그렇게 보이셨군요. 네, 석 달 정도를 함께 생활하다 보니, 편한 사이가 되었어요." 김들꽃 선교사가 대답했다. "상인으로 물건을 팔고 다닌다고 하셨는데, 내일 저희가 전하는 성경 속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 마을 어르신들이 오실 때에 그분들에게 아주 싸게 드릴 것이 있을까요?"
상수가 대답했다. "백호 형님, 뭐 그냥 공짜로 드려도 되지 않을까요?", "어르신들이 좋아하실 텐데요"
백호가 김들꽃 선교사에게 말했다. "제가 한번 수레에 있는 물건들의 상태를 보고 알려드릴게요."
윤열매 선교사가 말했다. "이제 시간이 많이 늦어져서 김들꽃 선교사님과 저는 마을에 있는 나무로 만든 집으로 이동할게요. 지금 이 시간에는 교회로 아무도 찾아오지 않으니, 편하게들 있으시면 됩니다."
그렇게 두 명은 자리를 옮겨서 이동했다.
그리고...
연재소설 '악보제작소(제24화)'가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