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신국의 아지트
세 시간 정도가 지났을까, 동수가 운전한 차는 강원도에 위치한 기와집에 도착했다. 동수가 내려서 문을 두드렸다. "여보시오, 고 사장님 도착했습니다." 그리고 잠시 뒤에 사람 두 명이 나와서 문에 잠궈놓아던 빗장을 열었다. 두 명이 문을 당긴 후, 차가 문 안으로 들어갔다. 다시 두 사람은 문을 닫고 빗장을 걸어서 잠갔다. 그리고 차가 도착하자 남자 세 명이 나왔다. 차 문을 열고 고신국이 내렸다.
남자 한 명이 고신국에게 말했다. "어떻게 일은 잘하고 오셨나요?" 고신국은 대답했다. "내 안부를 항상 챙기는 것은 우리 동생 태식이 뿐이야..."
그렇다 고신국이 아지트라고 말한 이 집은 바로 2년 전에 고태식이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거주하던 집이었다. 그런데 지난 1년 정도를 새롭게 개조를 하였다. 우선 나무로 되어있던 문을 철문으로 바꾸었고. 담벼락을 좀 더 높게 쌓아 올려서 외부에서 침입자가 함부로 담을 넘어서 들어가지 못하게 만든 것이다.
그리고 별도의 별채를 만들어서 그곳에 지하 공간과 연결될 수 있도록 구조를 바꿨다. 이러한 방식은 고신국과 고태식이 서양식 건물을 참고하여 일꾼들을 시켜서 만든 것이다.
총대지는 500평 정도이었으며, 문을 열고 들어가면 마당이 200평, 본채로 사용하던 집이 100평, 그리고 별채로 만든 공간이 100평, 음악이나 미술 작품을 전시할 공간 50평, 미술 작업 공간이 30평, 차고 20평이다.
그리고 방은 안채(본채+별채) 모두 열다섯 개 정도가 있었다. 본채에 방이 일곱 개, 별채에 여덟 개가 있었다.
차고는 고신국의 차를 두 대 세우고도 남는 넓은 공간이었다.
태식과 함께 나온 사람은 정혜영과 춘길이었다.
고신국은 말했다. "춘길 의병장님, 혜영 씨, 그동안 모두 잘 지냈나요?"
정혜영과 춘길은 고신국의 연락을 받고 열흘 만에 아지트로 오게 된 것이다.
춘길이 말했다. "고 사장님. 아니 부단장님 해야겠지요?. 아직도 말을 편하게 못 하셔서 의병장. 의병장이라고 하시네요 하하", 고신국이 말했다. "그게 어디 쉽게 바뀌겠나요? 춘길 씨를 보면 산에서 호랑이와 싸워서 이긴 장수 같아 보이니... 볼 때마다 호칭은 안 바뀌네요"
고신국이 지금 만나서 얘기하고 있는 춘길과 동수의 강인함에 다시 한번 느끼고 있었다. 그 이유는 1908년 11월 25일 경성예술원 총격전에서 그 둘은 총을 맞고 쓰러졌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순간 백호와 함께 남수가 뛰어 들어가서 그 둘을 부축하고 장소를 빠져나온 뒤 곧바로 차에 태워서 응급조치를 취했기 때문이었다.
정혜영이 말했다. "고 사장님, 잘 지내셨죠? 지난번 후원해 주셔서 연주회 잘 마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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