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 남도 진성

by 레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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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도에서 남도 진성은 굴러들어 온 복이었다.

서울에서 출발해 오후 늦게 진도에 도착하면 세방낙조를 볼 계획이었다.

막상 도착을 해보니까 낙조를 보기에는 조금 이른 시간이었다.

어디 한군데를 둘러보고 가면 낙조와 시간이 딱 맞을 것 같았다.

그래서 찾은 곳이 남도 진성이었다.

시간을 보내려고 가는 곳이라서 별다른 기대는 하지 않았다.

세상일에도 그렇지만 여행길에서도 반전은 있게 마련이다.

남도 진성에 도착했을 때의 첫 느낌은 ‘오! 이것 봐라!’ 하는 놀람과 기대감이었다.

묵직한 돌로 쌓은 견고한 성벽이 길게 이어진 광경은 대번에 눈길을 사로잡았다.

조선 초기, 왜구의 잦은 침범을 막으려고 해안가와 섬 지방에 성을 쌓고 수군을 파견했다.

남도 진성은 당시 남도포로 불린 만호부 진의 외곽을 둘러싼 성곽으로 수군 진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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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 진성은 평평한 땅에 쌓은 성이다.

다른 곳에서 보았던 산에 쌓은 성과는 같은 듯 다른 느낌과 분위기를 보여주었다.

성안에는 아직 복원된 건물이 많지 않아 들판이 넓게 펼쳐졌다.

그 한쪽에 복원된 객사와 내아가 있다.

객사와 내아 건물은 멀찍이 떨어져서 보아도 강렬하게 눈에 들어온다.

건물이 먹물을 칠한 것처럼 온통 까맣기 때문이다.

화려하게 단청을 입힌 건물이나 무수한 세월의 흐름을 고스란히 보여주는 빛바랜 갈색의 옛 건물은 많이 보았지만, 이렇듯 검은 건물은 자주 보이지 않는다.

이렇다 보니까 건물이 많지 않아도 묵직하고 위엄있게 보였다.

그전에 다른 곳을 여행하면서 두어 번 이런 건물을 본 기억이 있어 왜 이렇게 까만지 궁금했다.

혹시 나무가 아닌가 싶어 만져보면 분명하게 나뭇결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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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고 보니까 이건 흑목(黑木)이라는 전통 기법이다.

바닷바람과 습기를 견디려고 일부러 나무를 태우고 기름과 먹으로 보호한 것이다.

세월을 견디기 위한 삶의 지혜가 엿보였다.

또 세월에 맞서기 위해 단단하게 갑옷을 입혀놓은 듯했다.

이것 말고도 눈길을 끄는 건 독특한 건축 형태다.

그중에서도 지금껏 본 기억이 없는 지붕이 무척 특이했다.

성안에 들어가면 가장 먼저 정면으로 보이는 건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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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건물은 팔작지붕인데, 정면의 넓은 지붕 밑으로 또 다른 지붕이 길게 이어져 있다.

모양과 자재만 다를 뿐, 마치 요즘의 처마 캐노피처럼 생각되었다.

그것이 기와로 된 지붕이라 내 눈에는 무척 특별하게 보였다.

한옥이나 고건축에 대한 전문지식이 없고, 전국을 여행하면서 본 게 전부다.

지난 기억을 더듬어 보아도 이런 형태의 건물은 본 기억이 없다.

평지에 쌓은 웅장한 성벽과 이런 독특한 건물이 있어 남도 진성은 굴러들어 온 복이었다.

남도 진성은 이름난 관광지는 아니지만, 나름의 의미와 역사가 있어 한 번쯤 둘러볼 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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