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정도는 출렁거려야 제맛이다!

by 레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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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전국 곳곳에 출렁다리가 생겼다. 지역마다 경치 좋은 곳에는 빠짐없이 출렁다리가 있다. 그 출렁다리가 관광객을 불러 모으고, 또 지역 홍보와 경제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 이렇게 유행처럼 생겨나고 있는 출렁다리는 언제부터 있었을까? 또 출렁다리는 어디서부터 유행이 시작되었는지 궁금하다. 굳이 알 필요가 있는 건 아니지만, 불쑥 떠오르는 궁금한 것들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요즘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으려고 chatGPT를 많이 사용한다. 그전에는 궁금한 게 있으면 포털을 찾았지만, 이제는 손쉽고 빠르게 원하는 걸 알려주는 chatGPT가 훨씬 더 편하다. 출렁다리에 대해 궁금한 것들을 chatGPT에게 묻자 불과 몇십 초도 되지 않아 원하는 답을 줄줄이 쏟아낸다.


내 기억 속에 가장 오래된 출렁다리는 춘천의 강촌 출렁다리이다. 7~80년대, 수도권에서 젊은 시절을 보낸 사람이라면 강촌 출렁다리를 모르는 이가 없을 것이다. 요즘으로 치면 강촌은 그 당시 젊은이들의 핫플레이스였다. 주말이면 춘천 가는 경춘선을 타기 위해 청량리역은 발디딜 틈이 없었다.


나 역시도 그때 피 끓는 젊은 시절을 보냈기에 여러 번 강촌을 갔고, 그때마다 건넜던 출렁다리를 기억한다. 오래되어 기억이 희미하긴 하지만, 그때의 강촌 출렁다리는 요즘의 출렁다리처럼 그렇게 많이 흔들리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찌 되었든 강촌 출렁다리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화려한 젊은 날의 추억이 출렁대는 곳이다.


그리고 전국에 출렁다리 열풍을 일으킨 곳은 파주 감악산 출렁다리이다. 감악산 출렁다리는 국내 최초로 기둥이 없는 산악 현수교다. 개통되면서 정말 많은 이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았던 곳이다. 그 유명세 덕분에 방송을 통해 여러 번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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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은 인연이 닿지 않아 파주를 여러 번 여행하면서도 감악산 출렁다리를 보지 못했다. 이번 파주 여행에서는 꼭 보아야겠다는 생각에 아예 첫 번째 여행지로 감악산 출렁다리를 정했다. 지금은 아침저녁으로 선선하고, 일부이긴 해도 성질 급한 나무는 벌써 불그레하게 물이 들었다.


불과 얼마 전만 해도 너무 더워 가을은 꿈도 꾸지 못했다. 특히 파주에 가던 날은 유난히 더웠다. 날씨가 하도 더워 인터넷에서 감악산 출렁다리 가는 길을 미리 찾아보았다. 궁금한 건 출렁다리를 가려면 산을 얼마나 올라가야 하는지였다. 이번만큼은 감악산 출렁다리를 꼭 가보고 싶었지만, 무더위 때문에 산을 많이 올라가야 한다면 다음으로 미룰 생각이었다.


다행히 주차장에서 20여 분 정도만 올라가면 된다는 말에 ‘그 정도쯤이야!’하는 생각에 예정대로 출발했다. 가는 날이 평일이어서 출렁다리로 가는 등산로와 붙어 있는 제1주차장에 차를 세울 수 있었다. 등산로는 나무 데크 계단으로 이어졌다. 계단은 다니기에 안전하지만, 오르는 건 산길보다 더 힘들다.


찌는 더위 때문에 계단을 오른 지 얼마 되지 않아 금방 숨이 찼다. 한때 열심히 산에 다녔다. 이럴 땐 무리하지 않으면서 호흡에 맞추어 한 발 한 발 쉬지 않고 올라야 한다는 걸 몸이 기억해 냈다. 숨이 차다고 쉬면 오르기가 더 힘들어지기 때문이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고, 계속해서 오르면 산 정상이 나오기 마련이다.

시간을 재보지는 않았지만, 체감상으로 20여 분 정도가 지났을 즈음에 오르막 계단 위로 하늘이 보였다. 산 정상은 아니지만, 능선에 도착했고 그곳에는 감악산 전망대가 있다. 이곳 전망대에서는 맞은편 저 멀리에 있는 운계 전망대와 산과 산을 이어주는 감악산 출렁다리가 아스라이 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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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만들어 놓은 출렁다리이지만, 자연의 경치를 거스르지 않았다. 오히려 아슬아슬하게 이어진 출렁다리가 있어 자연의 아름다움에 독특함을 보태놓았다. 감악산 출렁다리는 도로로 인해 잘려 나간 설마리 골짜기를 연결하는 150m의 산악 현수교다. 골짜기를 가로질러 산과 산을 이어주고 있다. 다리에 기둥이 없어 더욱더 아슬아슬하게 보였다.


멀리 떨어져서 출렁다리를 보고 있으니까, 군 시절의 유격훈련이 생각났다. 유격훈련에는 외줄타기와 두 줄 타기 그리고 석 줄 타기가 있다. 그 줄타기 훈련을 위해 산속 훈련장에 설치되어 있던 그 줄이 생각났다. 전망대에서 출렁다리까지는 금방이다. 전망대에서 경치 구경하면서 쉬었기 때문에 출렁다리로 가는 발걸음은 새털같이 가볍다.


출렁다리는 이쪽 끝에서 보면 가운데 부분이 축 늘어졌다가 맞은편 쪽으로 날렵하게 솟아오른 모습이다. 산에 설치된 출렁다리들은 다들 이런 모습인데, 늘어졌다가 날렵하게 솟아오르는 그 이어진 선의 모습이 참 보기 좋다. 그 멋진 모습이 마음을 설레게 한다.


사람이 많진 않지만, 오가는 사람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상기되어 있다. 그만큼 출렁다리가 즐겁고 재밌다는 걸 표정으로 보여준다. 지금껏 몇 군데 출렁다리를 가보았지만, 사실 생각처럼 출렁거리는 맛이 없어 짜릿한 즐거움을 크게 느껴보지 못했다. 이곳도 그렇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출렁다리에 발을 들여놓았다.


막 발을 들여놓았을 때는 흔들림이 별로였지만, 얼마 가지 않아 출렁대는 흔들거림이 온몸으로 짜릿하게 전해졌다. 생각했었던 것 이상으로 흔들거려 살짝 놀랍기도 했고 또 그만큼 재미있었다. 스릴이 느껴지는 흔들거림이 한낮의 날카로운 햇살은 물론 타는 듯한 더위를 잊게 해주었다. 걸으면 걸을수록 재밌고 즐거웠다. 재미가 있어서 그랬던지 더 강한 흔들거림을 맛보고 싶어 다리에서 막 뛰고 싶은 충동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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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껏 가보았던 출렁다리 중에서 흔들거림에 있어서는 감악산 출렁다리가 최고란 생각이 들었다. 출렁다리를 건너는 동안만큼은 나도 모르게 동심으로 돌아갔다. 출렁다리를 건너면 운계 전망대와 운계폭포로 갈 수 있다. 날씨가 이 모양이라 운계폭포에서 쉬어 갈까도 생각했지만, 폭포에 물이 별로 없다는 소리에 갈 생각을 접었다.


다시 또 출렁다리에 들어섰다. 올 때는 출렁다리 자체에 더 많은 관심을 가졌지만, 돌아갈 때는 출렁다리에서 보이는 경치에 눈이 많이 갔다. 눈 앞에 펼쳐지는 감악산 경치는 물론 발아래로 내려다보이는 경치가 역시나 멋있다. 출렁다리 한가운데에서 감악산의 경치를 눈에 가득 담고 또 가슴으로 즐겼다.


지금은 이 더위가 끝날 것 같지 않지만, 머지않아 가을은 찾아오게 마련이다. 그렇게 가을이 오면 짙은 초록으로 뒤덮인 지금의 감악산은 울긋불긋 화려하게 변신할 것이다. 지금의 이 자리에서 그 가을 경치를 본다면 어떤 기분일까? 번잡한 게 싫어서 제아무리 좋은 곳이라도 사람이 많으면 일단 피하고 본다. 그래도 감악산 출렁다리 한가운데에서 짜릿한 출렁거림과 함께 농익은 가을 경치는 한번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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