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 용미리 마애이불입상

by 레드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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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용암사는 특이한 사찰이다.

우리나라의 오래된 사찰들을 보면 누가 언제 창건했는지를 가장 먼저 밝히고 있다.

그런데 파주 용암사는 그런 내력이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창건 연대를 추정해 볼 수 있는 전설이 하나 있는 게 불행 중 다행이다.

고려 제13대 선종 때, 용미리 마애이불입상과 절 창건에 관한 설화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어 900여 년 전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한다.

용암사는 그리 큰 편이 아니고, 여느 산사들처럼 세월의 묵은 흔적이 잔뜩 배어 있는 것도 아니다.

그보다는 꼭 필요한 것만 자리하고 있는 간결함과 함께 단정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렇지만 장지산 품에 안겨 있어 산사의 그윽한 멋은 모자람이 없었다.

용암사에는 오래된 세월의 사찰임을 알려주는 보물이 하나 있다.

용암사의 상징이자 전부라고도 할 수 있는 용미리 마애이불입상이다.

사실 용암사를 찾은 건 마애이불입상을 보기 위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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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 어떻게 마애이불입상을 알게 되었는지는 기억이 흐릿하다.

아마도 심심풀이로 인터넷을 보다가 발견했을 게 분명하다.

인터넷을 보다가 눈을 번쩍 뜨게 하는 곳이 있으면 가봐야 할 여행지로 적어놓는다.

오랜만에 가는 파주 여행에서 용미리 마애이불입상도 여행의 목적지로 넣었다.

숲이 우거진 일주문을 지나 조금만 오르면 오른쪽에 범종각이 있다.

봉덕사종을 본떠서 만들었다는 범종은 크고 아름다워 용암사와 마애이불입상에 대한 기대감을 한층 더 높여주었다.

용암사에 많지 않은 건물은 깔끔하고 기품 있어 보였다.

대웅보전 앞에는 경주 불국사의 석가탑과 다보탑을 연상케 하는 두 탑이 서 있다.

눈에 익은 탑 때문인지, 처음 보는 용암사가 친근하게 다가왔다.

대웅보전과 삼성각을 둘러보고 서둘러 마애이불입상을 보러 갔다.

여행지의 사진이나 영상을 보면 엄청 멋있는데, 막상 직접 보면 그렇지 않을 때가 있다.

‘혹? 마애이불입상도 그렇지 않을까?’ 하는 걱정스러운 마음으로 계단을 올랐다.

계단을 올라가는 중간에 나무 사이로 보이는 마애이불입상의 얼굴을 보면 걱정 반 기대 반이었던 마음은 순식간에 사라진다.

걱정은 사라지고 한껏 부푼 기대감에 계단을 오르는 발걸음이 나도 모르게 허둥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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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4m로 우리나라 최대 규모인 마애이불입상의 첫 느낌은 놀람과 감탄 그 자체였다.

거대한 바위에 두 부처의 몸을 조각했고, 머리 부분은 따로 만들어 올려놓았다.

자료를 미리 보았으니까, 몸과 머리 부분이 따로 만들어졌다는 걸 알지 그냥 보면 알지 못할 것 같았다.

마애이불입상은 오랜 세월을 지나왔지만, 조각된 부분은 아직 선명하다.

눈은 감은 듯 뜬 듯하고, 미소가 보일 듯 말 듯 한 평온한 모습으로 허공을 바라보고 있다.

평온한 모습이지만, 거대한 크기에서 풍겨 나오는 자애로운 근엄함이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놀라운 작품을 보듯이 이리저리 자리를 옮겨 가면서 마애이불입상을 보았다.

그렇게 마애이불입상을 보다 보면, 문득 궁금한 생각이 든다.

‘선조들의 종교에 대한 믿음과 신뢰는 얼마나 컸던 걸까?’

‘그때 석불을 새겼던 석공들은 후손들이 이렇게 감탄사를 터뜨릴 거로 예상했을까?’

선조들의 믿음과 신뢰가 있어 우리가 소중하고 귀한 것을 보고 있다.

종교적인 의미를 떠나 선조들에게 감사한 마음이다.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은 후손들에게 무엇을 남겨줄 건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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