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는 이번이 세 번째다.
오롯이 진도를 여행하려고 찾은 건 아니지만, 어쨌든 세 번째 방문이었다.
이번에 진도를 찾은 건 제주 가는 배를 타기 위해 거쳐 가는 일정이었다.
제주 가는 배는 아침 일찍 출발하기 때문에 전날 내려와서 하룻밤을 묵어야 했다.
서울에서 출발해 진도에 도착하면 늦은 오후가 되겠지만, 자주 올 수 있는 곳이 아니라 어디라도 한군데는 제대로 구경하고 싶었다.
시간상으로 딱 맞는 곳이 진도 관광 10선으로 꼽히는 “세방낙조”였다.
생각보다 일찍 도착하는 바람에 낙조 시간을 맞추기 위해 남도 진성을 둘러보고 세방낙조 전망대로 갔다.
도착한 세방낙조 전망대에는 이미 사람들로 붐볐다.
요즘은 전국 어디를 가나 평일과 주말이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여행객들이 많다.
물론 주말에 사람이 더 많은 건 사실이지만, 평일에도 그에 못지않게 사람들이 많은 걸 보면 이제 여행은 우리 삶의 일부가 되었다.
진도는 이번이 세 번째지만, 세방낙조 전망대는 두 번째다.
첫 번째의 기억이 희미한 걸 보면 이곳에서 제대로 된 낙조를 보지 못했던 듯싶다.
지금은 10월 중순이라 가을을 코앞에 두고 있다.
여름도 가을도 아닌 애매한 시기라 낙조 경치가 어떨지 걱정과 기대가 교차했다.
농익은 가을에는 어디서라도 멋지고 화려한 낙조를 볼 수 있다.
이때는 서울 하늘에도 멋진 낙조가 펼쳐져 여기가 서울인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낙조가 왜 유독 가을에 더 멋지고 화려한지 궁금하다.
진도 세방낙조는 중앙기상대에서 한반도 최남단 제일의 낙조 전망지로 선정한 곳이다.
그러니 그 아름다운 장관이 어떻게 펼쳐질지 무척 궁금했다.
낙조 전망대에 도착했을 때는 지는 해가 수평선 위에 떠 있는 구름 뒤에 숨어 있었다.
지는 해가 구름 사이로 황금빛 햇살을 토해내기 시작하면서 곧이어 멋진 낙조가 펼쳐질 거란 걸 예고하고 있었다.
얼마 되지 않아 하늘은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황금색과 붉은색이 뒤엉킨 강렬한 햇살이 넓게 깔린 회색 구름을 사정없이 헤치며 쏟아졌다.
그 진하고 강렬한 햇살이 하늘과 바다를 서서히 점령해 갔다.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더 화려하게 펼쳐지는 낙조를 보면서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피가 난무하는 처절한 전쟁터에서 용감히 싸우다 장렬하게 전사하는 영웅의 모습이 그려졌다.
사방을 붉게 물들이는 그 장엄한 붉은빛 때문이었을 것이다.
수평선 위의 구름이 저무는 해를 가리고 있었지만,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지는 해를 보는 것도 좋지만, 그보다는 그 해가 토해낸 햇살로 장엄하게 물든 하늘과 바다를 보는 게 더 좋기 때문이다.
아직 가을이 여물지 않아 깊은 가을날의 낙조보다는 빛의 향연이 살짝 떨어지는 것 같았다.
그래도 우리나라 최남단 제일의 낙조가 바로 이런 것이다! 하는 걸 보여주는 데는 부족함이 없었다.
정신없이 바쁘게 살아가는 도시에서는 하늘 보기가 쉽지 않다.
누가 보지 못하게 막는 것도 아니고, 하늘은 언제나 머리 위에 있는데 고개 들어 온전히 하늘을 보지 못한다.
그래서인지 세방낙조 전망대에서 보는 환상적인 낙조에 푹 빠져들었다.
나도 모르게 탄성이 터져 나왔다.
낙조를 구경할 때는 한눈팔지 말고 집중해야 한다.
시작된 낙조 경치에 취해 감상에라도 빠지면 온전하게 즐기지 못한다.
한번 지기 시작한 해는 수평선 밑으로 빠르게 가라앉기 때문이다.
낙조는 해 질 때의 경치를 보는 즐거움도 있지만, 해가 진 뒤에 낙조의 진한 여운을 즐기는 것도 또 다른 매력이다.
세방낙조는 시기마다 해지는 위치가 조금씩 달라지는 것 같다.
오늘 해는 전망대 정면에 있는 곡섬 위로 졌다.
곡섬의 나지막한 두 봉우리 사이로 지는 모습이 재밌고 아름다웠다.
해가 지고 나면 낙조 전망대를 찾은 사람들은 두부류로 나누어진다.
볼 걸 봤으니까 미련 없이 자리를 뜨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자리를 뜨지 못하고 낙조의 여운을 즐기는 사람들도 있다.
우스갯소리지만, 앞의 사람들은 관광객이고, 뒷사람들은 여행자가 아닐까 싶다.
멋진 세방낙조를 보면서 궁금한 게 생겼다.
‘낙조면 낙조지 왜 세방낙조라고 하는 걸까?’
‘세방이 무슨 뜻이지?’
포털과 요즘 자주 이용하는 chatGPT에게 물어보니까 몇 가지 이야기가 나온다.
진도군 지산면 세방리 일대의 낙조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고, 세방은 좁은 길이라는 뜻으로 예전에 이곳으로 오는 길이 좁아서 세방낙조라고 한다는 설도 있다. 또 섬과 섬이 얽혀 있는 바다의 틈새라는 의미에서 붙여졌다는 이야기도 있다.
어느 게 정답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름대로 다 의미는 있어 보인다.
가을 하늘을 화려하게 장식하는 낙조를 볼 때마다 드는 생각이 있다.
온종일 세상을 밝혔던 해는 이렇듯 장엄하고 찬란한 모습으로 하루의 생을 마감한다.
계절 내내 푸르름으로 보였던 나무들은 겨울이 오기 전에 화려한 단풍으로 존재감을 한껏 드러내고서야 한해를 마감한다.
사람도 이처럼 생의 마지막을 그 어느 때보다 화려하게 마무리할 수는 없는 걸까?
해와 나무는 내일과 내년을 기약할 수 있지만, 사람은 한번 저물면 그것으로 끝이라 그런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걸까?
내 안에 쌓인 세월의 무게가 커지니까, 멋진 낙조를 보면서도 별생각이 다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