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하면서 즐거울 때가 언제인가? 여행은 그 자체가 즐거움인데, 또 다른 즐거움을 이야기할 게 있나? 맞는 말이다. 그렇지만 여행 자체의 즐거움 외에 기대하지 않았던 또 다른 즐거움이 분명 있다. 개인적으로 두 가지를 꼽는다. 하나는 기대하지 않았던 여행지가 뛰어난 멋스러움과 아름다움을 보여줄 때다. 다른 하나는 여행지에서 우연히 좋은 사람을 만났을 때다.
요즘은 정보가 홍수를 이루는 시대이다. 어디든 가고 싶은 곳을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가만히 앉아서 각종 자료를 다 볼 수 있다. 그러다 보니 가기도 전에 가려는 곳에 대한 기대치가 나도 모르게 생긴다. 여행지에 도착하면 그 기대치를 기준으로 평가가 이루어진다. 기대치에 못 미쳐 실망하거나, 예상한 대로의 만족감을 얻거나, 기대치를 뛰어넘는 감동을 맛본다.
이것은 여행할 때마다 늘 반복되기 때문에 여행 자체의 즐거움이다. 별다른 기대 없이 갔다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아름다운 경치를 마주하는 경우는 그 범주를 벗어난다. 기대치를 뛰어넘는 것과는 또 다른 차원이다. 이럴 때는 복권이라도 당첨된 것 같은 기쁨과 흥분에 휩싸이기 마련이다. 흔히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한다. 이런 경우는 애초 기대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만큼 결과의 기쁨은 몇 배가 된다. 오랫동안 여행했지만, 사실 이런 경우는 흔치 않다.
오랜만에 찾은 이천 여행에서 흔치 않은 그 특별한 즐거움을 맛봤다. 이천에서 가 볼 만한 곳을 찾다가 애련정을 발견했다. 이천시가 꼽는 9경의 하나인데다 평소 정자 여행을 좋아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관심이 갔다. 전국에 아직 가보지 못한 정자가 많지만, 그래도 이름깨나 알려진 곳을 많이 가봤다. 그러다 보니 나름 정자를 보고 즐기는 나만의 감성이 있다.
가볼 만한 정자를 찾다가 마음에 드는 곳을 발견하면 숨겨진 보물을 찾은 것처럼 기쁘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애련정을 찾았을 때는 딱히 그런 느낌이 들지 않았다. 뭐라고 표현하긴 애매한데, 좋은 것도 싫은 것도 아닌 어중간이었다. 다른 때와 달리 마음이 확 끌리지 않았다. 이제 생각해보면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는 것처럼 오히려 정자 여행을 자주 하면서 나도 모르게 생긴 고정관념 때문이었다.
정자는 산이나 강, 계곡, 바다와 같은 자연의 아름다움을 품고 있다. 물론 정자 자체가 아름다움을 보여주는 곳도 더러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렇다 보니 정자 하면 정자가 품은 경치부터 떠올리게 된다. 애련정은 도심에 있다. 자연의 아름다운 경치와는 거리가 먼 도심에 있어 애련정에 대한 기대감이나 끌림이 크게 생기지 않았다. ‘이천에 이런 정자 있구나. 가는 김에 한 번 들러볼까?’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애련정을 갔다.
애련정 주변에 공영주차장이 있기는 한데 빈자리가 없었다. 도심이라 주차장은 이미 꽉 차 있었다. 빈자리를 찾으려고 애련정 주변을 천천히 두 번이나 돌았지만, 허탕을 쳤다. 차 세울 곳을 찾느라 온 정신이 거기에 팔렸을 때, 눈에 들어온 애련정은 저절로 입을 벌어지게 했다. 보는 그 순간 마음을 빼앗겼고, 그 때문에 흥분이 되면서 마음이 조급해졌다. 아름다운 애련정 경치가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 같아 어디든 빨리 차를 세우고 싶은데, 그러지 못해 속이 까맣게 타들어 갔다.
할 수 없이 길가에 차를 세우고 부근에 있는 주차장을 검색했다. 다행히 멀지 않는 곳에 주차장이 있어 차를 세우자마자 서둘러 애련정으로 잰걸음을 놀렸다. 화창한 봄날의 애련정 경치는 길게 이야기할 것 없이 한마디로 기가 막혔다. 사람들이 비현실적으로 아름답다고 할 때, 그 말의 의미가 온전하게 다가오지 않았다. ‘얼마나 멋있기에 그런 표현을 쓰는 거지?’ 지금껏 여행 관련 글을 쓰면서 비현실적으로 아름답다는 표현을 써본 적이 없다. 눈 앞에 펼쳐진 애련정을 보면서 그 표현의 의미와 느낌이 이런 거구나 하는 것을 깨달았다.
애련정은 안흥지 한가운데에 있는 둥근 섬에 자리 잡았다. 애련정 양쪽으로 안흥지를 가로지르는 다리가 있어 멋과 운치를 더했다. 안흥지는 널찍한 저수지로 빙 둘러 벚나무가 심겨 있었다. 서울은 이제 막 벚꽃이 꽃망울을 터트리기 시작했는데, 이곳은 이미 절정에 올라있었다. 불어오는 봄바람에 꽃비가 날리는데, 그 꽃비에 가릴 듯 말 듯 보이는 애련정의 경치는 눈물이 날 만큼 아름다웠다. 현실에 있는 게 아니라, 무릉도원에 와 있는 듯한 착각에 빠졌다.
안흥지는 호수라고 부르고 싶다. 둘 다 물이 갇혀 있으니까 어감상으로 느낌이 더 좋은 호수라고 부르고 싶다. 연못도 좋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커서 어울리지 않는다. 애련정 옆에는 이제 막 연둣빛 어린잎들이 돋아난 커다란 능수버들이 서 있다. 이 나무가 있어 애련정의 경치와 운치를 한껏 끌어올린다. 호수를 향해 가지를 축 늘어뜨린 능수버들은 가녀린 여인처럼 보이기도 하고, 한 많은 여인의 모습으로도 보인다.
애련정의 사계가 어떨지 모르겠지만, 지금 이때 보는 애련정이 가장 아름답지 않을까 싶다. 흩날리는 꽃잎 속으로 보이는 애련정의 장관은 일 년 중 딱 이때만 볼 수 있는 최고의 경치이다. 일 년에 딱 한 번뿐인 귀한 순간을 오래도록 가슴에 담고 싶어 선뜻 애련정으로 가지 않았다. 호수를 따라 나 있는 산책로를 걸으며 애련정의 사방 경치를 하나도 빠짐없이 둘러보았다.
애련정은 어디서 보아도 다 멋있지만, 개인적으로는 북쪽에서 보는 게 제일이다. 이쪽에서 보면 호수와 다리, 정자와 능수버들 그리고 흩날리는 꽃잎이 하나로 어우러져 완벽한 한 폭의 풍경화를 보여준다. 이처럼 멋진 경치를 보면 그림 같다는 표현을 곧잘 쓴다. 애련정 경치는 그 표현으로 부족하다. 세상 그 어느 화가라도 애련정의 이 경치를 그대로 그려낼 수 없다.
통일 신라 말 이전에 축성된 것으로 보이는 안흥지는 1970~80년대까지만 해도 연꽃이 장관을 이루었다고 한다. 수원이 고갈되면서 폐허가 된 것을 대대적인 준설공사를 통해 지금의 모습을 갖추었다. 애련정은 정확히 언제 지어졌는지 알 수 없다. 정자 옆 습지에 안흥지를 파서 연꽃을 심었고, 영의정 신숙주가 애련정이라는 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역대 임금들이 여주에 있는 영릉(세종대왕릉) 행차 길에 이천 행궁에 머물면서 애련정을 둘러보았다고 한다.
순종 황제 때, 일본군이 이천읍내 483가구를 불태운 충화 사건이 있었다. 이때 불타 버린 것으로 추정되는 애련정을 1998년에 복원했다. 애련지와 애련정이 복원되어 지금의 이 멋진 경치를 보여주고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옛것을 복원하는 의미와 가치 그리고 필요성을 오롯이 보여준다.
임금이 둘러볼 정도였으니 그때의 애련정 경치도 대단했을 것이다. 정자 여행 묘미 중의 하나는 정자가 만들어졌던 그때 그 시절의 경치를 상상해보는 것이다. 어느 정자든 지금보다 그때 그 시절의 경치가 더 아름다웠을 게 틀림없다. 그때는 순수한 자연이 그대로 남아있었겠지만, 지금은 개발에 밀려 많이 변하고 사라졌기 때문이다.
임금이 보았던 그때와 지금의 애련정 경치를 상상으로 비교해보면 비현실적인 지금의 경치가 더 아름답지 않을까 싶다. 지금껏 많은 정자를 보았지만 이런 생각이 드는 건 처음이다. 너무 호들갑을 떤다고 핀잔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애련정의 이 경치와 느낌, 감동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게 사실이다. 이 때문에 서두에서 기대하지 않았던 여행의 즐거움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이제 됐다 싶을 만큼 애련정을 즐기고 나서 다리를 건너 애련정으로 갔다. 가까이에서 보는 애련정은 호수 건너편에서 볼 때만큼 감동적이지는 않았다. 호수 건너편에서 내 안에 있는 감동과 감성의 그릇은 이미 가득 차버렸다. 애련정으로 부는 봄바람이 기분을 상쾌하게 해준다. 안흥지 위로 흩날리는 꽃잎과 허공으로 물줄기를 쏘아 올리는 분수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는다. 옛 선비들 같으면 대번에 시 한 수를 읊었겠지만, 풍류를 모르는 후손은 그저 바라볼 뿐이다. 그나저나 그 옛날 애련정에 올랐던 임금의 마음은 어땠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