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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드산 Oct 15. 2021

왜가리 한 마리가 무진정 경치에 방점을 찍는다

6월 중순, 일이 있어 처음으로 함안 땅을 밟았다. 처음 가는 길이라 내비게이션에 아바타가 되어 차를 몬다. 함안에 들어서 얼마 지나지 않아 큰길에서 뒷길로 가라고 하는데, 그 길에는 좌판이 벌어져 있다. 내비게이션을 가라고 하지만, 가도 되는 건지 망설이지 않을 수 없다. 다른 길을 모르는 데다 약속 시간에 쫓겨 결국 비좁은 길로 들어섰다.


좌판을 지키고 있는 상인들의 곱지 않은 시선이 뒤통수로 느껴진다. 보다 못한 상인 한 분이 다가와 말을 건넨다. 오늘은 장날이라 이 길로 차가 다니기 어렵고, 잘못하면 장이 끝날 때까지 옴짝달싹할 수 없으니까 얼른 돌려 나가는 게 좋다고 한다.


처음 오는 길이어서 사정을 몰랐다고 하자 선뜻 그분이 나서 차를 돌릴 수 있게 도와주었다. 좌판을 펼치고 있던 아주머니들도 싫은 내색 없이 물건을 치워주신다. 미안하고 죄송한 마음에 등줄기를 타고 진땀이 흐른다. 상인분들의 도움으로 겨우 차를 돌렸다. 몸에서는 진땀이 흘렀지만, 함안 사람들의 따스한 마음을 알게 되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일은 생각보다 빨리 끝났다. 시간에 여유가 생기다 보니 함안을 구경하고 싶은 생각이 절로 난다. 함안 사람들의 따스한 마음을 느꼈던 터라 더더욱 돌아보고 싶다. 서울에서 출발하기 전에 혹시나 시간이 나면 가보려고 생각해둔 곳이 있었다. 정자의 이름이 마음에 끌었던 무진정(無盡亭)이다.

 


내비게이션에 입력하고 보니 일을 보았던 곳에서 불과 2~3Km 정도밖에 떨어지지 않았다. 그야말로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다. 차가 출발하자마자 도착한 곳은 예상했던 것과 달리 평범한 마을 입구에서 멈춘다. 정자 하면 멋진 자연의 경치부터 떠올리는 잘못된 선입견이 있어 이런 경우가 늘 당황스럽다.


세월과 역사를 품은 정자는 이런 마음을 순식간에 바꾸어 놓는다. 흔히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크다고 한다. 반대로 크게 기대하지 않으면 놀라움과 기쁨이 더 클 수 있다는 의미가 된다. 차를 세우고 들어가면 먼저 널찍한 연못이 눈에 들어온다. 무진정은 그 연못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자리 잡고 있다.


무진정이 정자의 멋을 한껏 뽐낼 수 있는 데는 연못이 단단히 한몫한다. 연못가에는 오랜 세월을 지켜온 고목들이 둘러섰다. 연못에는 크고 작은 세 개의 섬이 있다. 커다란 나무가 있는 한 가운데 섬에는 영송루(迎送樓)가 있다. 맞을 ‘영(迎)’에 보낼 ‘송(送)’자를 쓴 것 보면 무진정으로 오가는 사람들을 맞이하고 보내는 역할을 맡았나 보다.


무진정으로 이어지는 돌다리를 건넌다. 흥에 겨웠던지 춘향을 만나러 오작교를 건너는 이 도령이 된 기분이다. 남원 사는 춘향이가 갑자기 이곳에 왔을 리 없지만, 무진정이 있어 흥이 깨지지 않는다.


아주 짧게 영송루의 영접을 받자마자 배웅을 받으며 무진정을 오른다. 무진정을 받치고 있는 목재들은 기나긴 세월의 무게에 짓눌려 거무스름하게 변했다. 그런 모습에서 옛 선비의 묵직한 기품이 엿보인다.

 


무진정은 조선 성종 때에 태어나 사헌부 집의 겸 춘추관 편수관을 지낸 조삼 선생이 지은 정자다. 후학들을 키우고 자신의 여생을 보내기 위해 지은 정자로 선생의 호를 따서 무진정이라 지었다.


무진정은 사방이 탁 트여 있지만, 전면을 제외한 나머지 삼면은 분합문으로 되어 있어 필요하면 가릴 수 있다. 정자의 크기는 여러 사람이 이용해도 될 정도로 넉넉하다.


정자 안에는 마루방을 두었다. 개방적이면서도 실용적인 형태로 공간 활용도가 좋아 보인다. 얼마 전에 보수공사를 한 모양이다. 무진정의 흙 돌담 황토는 밝은 제 색깔을 내고 있다. 삼면의 분합문도 바꾸어 달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나무의 속살을 그대로 보여준다.


어찌 보면 서로 이질적인 색감이지만, 무진정이라는 정자에 하나로 어우러져 눈에 거슬리지 않는다. 지나온 모진 세월의 무게를 간직한 거무스름한 목재와 아직 나무의 향이 채 가시지도 않은 하얀 목재가 함께 공존하는 모습이 오히려 색다른 느낌을 보여준다.


저 하얀 목재는 얼마만큼의 세월을 껴안아야 묵직한 느낌의 거무스름한 모습으로 변할까. 아마 이 시대를 사는 사람들이 자리를 비켜주고 나서야 그렇게 되지 않을까 싶다.

그때가 되면 무진정의 목재들은 또다시 자리바꿈을 할 것이다.


지금의 하얀 목재는 세월을 뒤집어쓴 채 거무스름하게 변하고, 지금의 거무스름한 목재는 하얀 목재로 새롭게 바뀔 것이다. 세월이 흘러 시대의 사람들은 기억에서 지워지지만, 무진정은 자리바꿈을 하면서 계속 이 자리에 남을 것이다.


무진정은 지금까지 그렇게 이어왔고 앞으로도 이어갈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이렇게 이름과 실체가 끝없이 이어진다는 것이 새삼 특별하게 느껴진다.

 


서울로 돌아가야 할 시간이 되었지만, 선뜻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다. 머리와 가슴이 따로 논다. 머리는 가야 할 길이 머니 빨리 가자는데, 마음은 넌 가라 난 여기 있겠다고 한다. 머리가 아닌 가슴에 끌려 연못가 나무 그늘에 자리를 잡는다.


연못 주변은 죽은 듯이 멈추어 있다. 가끔 지나가는 도로의 차량 소리만 없으면 그야말로 완벽한 정적이다. 고요함 속에 빠진 연못은 거울처럼 잔잔하다. 연못 속을 노니는 물고기가 만들어내는 작은 파문이 잠깐씩 연못을 깨우곤 한다.


멋진 경치를 보는 것이 아니라, 그 경치를 그린 그림 속에 들어앉은 기분이다. 그때 왜가리 한 마리가 우아하게 날아와 작은 섬에 사뿐히 내려앉는다. 그 섬의 주인인 양, 여유 있게 잠시 노닐다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긴 날개를 펼치고 유유히 사라진다.


 왜가리가 미완성으로 남아 있던 그림에 방점을 찍어 완벽하게 마무리한다. 무진정은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은 아니지만, 그에 못지않은 멋스러움을 보여준다. 경치를 보는 즐거움에 마음마저 차분해진다.

 


아쉬움을 가득 품은 채 무진정을 뒤로한다. 그때 문득 연못의 이름이 무얼까 궁금해진다. 이 정도의 연못이라면 거기에 걸맞은 이름이 있지 않을까 싶다. 나오는 길에 지붕을 수리하고 있는 마을 분이 보인다. 일을 방해하는 게 아닌가 싶어 망설였지만, 그보다는 궁금증이 더 커서 말을 건넸다.


연못의 이름을 물어보자 아저씨는 싫은 내색 없이 잠시 일손을 멈춘다. 따로 말은 하지 않았지만, 우리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연못을 바라봤다. 아저씨는 친절하게 연못의 옛이야기까지 해준다. 연못에는 별다른 이름이 없다고 한다.


예전에는 농사짓던 사람들이 연못의 물을 끌어 쓰는 바람에 연못이 바닥을 보였다고 한다. 그 뒤로 항시 물을 채워두려고 수문은 높였다고 한다. 그 때문에 물이 순환되지 않아 한때 연못이 맑지 않았다고 한다.


일이 있어서 왔다가 짬 나는 시간을 이용해 무진정을 보았다. 무진정도 좋았지만, 함안에서 잠깐씩 만난 사람들의 따뜻한 마음과 배려가 오랫동안 기억될 것 같다. 멋진 경치를 사진에 담을 때, 그 경치 속에 한두 사람이 들어가 있어야 사진이 훨씬 더 살아난다. 그것처럼 여행에서 좋은 사람을 만나면 여행이 더 알차고 가슴 따스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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