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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드산 Aug 14. 2021

양평에 숨겨져 있는 세심정의 멋과 매력이 독특하다

정자를 찾아가는 재미가 남다르다. 초등학교 때, 소풍 가면 꼭 했던 놀이가 보물찾기이다. 점심을 먹고 나서 하는 보물찾기는 아이들이 제일 기다리는 시간이자 소풍의 하이라이트였다. 아이들이 점심 먹는 동안 선생님들이 몰래 보물을 숨겼고, 소풍이 끝나갈 때쯤 보물찾기가 시작된다. 보물을 찾는 대로 학용품 선물을 안겨 주니 너도나도 다 좋아했다. 정자 여행도 보물찾기하는 것처럼 큰 즐거움과 재미가 있다.

양평 땅에 숨겨져 있는 세심정(洗心亭)을 찾았다. 양평은 집에서 멀지 않아 수시로 드나드는 곳이다. 여행으로도 가지만, 국수를 잘하는 집이 있어 생각만 나면 양평을 간다. 그렇게 들락거리면서도 양평에 볼 만한 정자가 있는지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관심 이전에 역사와 경치를 품은 정자가 있다는 소리를 듣지 못했고, 지자체 홈페이지에도 딱히 나와 있는 것이 없어 가볼 만한 정자가 없는 줄 알았기 때문이다.

다 그렇겠지만, 언제 끝날지 모르는 코로나 감옥에 갇혀 있다 보니 갑갑하다. 가까운 곳으로 콧바람이라도 쐬러 가야 잠시라도 이 답답한 시간을 탈출할 수 있다. 이럴 때 좋은 곳이 정자다. 어지간한 곳이라도 정자에 가면 사람이 많지 않다. 이런 시국에는 사람들과 마주치고 부대낄 일 없는 정자가 최고의 여행지이다. 운치 가득한 정자에서 차분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어 일거양득이라고 할 수 있다.

잠시 양평에 갈 일이 생겨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정자를 검색해봤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는데, 왜 이제야 찾느냐며 뽀로통한 얼굴로 세심정이 튀어나온다. 사진 속의 세심정이 사람의 마음을 은근슬쩍 끌어당긴다. 이게 웬 떡인가! 이것저것 생각할 것 없이 카메라를 챙겨 들고 집을 나선다. 

여행의 영원한 짝꿍이자 동반자인 내비게이션이 언제나처럼 함께 한다. 천하의 길치라 내비게이션이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말을 잘 듣는 편이다. 그런데 오늘은 어째 영 미덥지 않다. 길에 관한 한 묻지도 따질 것도 없는 내비게이션이 더위를 먹었을 리 없는데, 안내하는 길이 어째 평범하기 이를 데 없다. 정자 여행을 제법 했다고 이제는 가는 길만 봐도 대충 감이 온다. 그런데 지금 가는 길은 감은 둘째치고, 이런 곳에 정자가 있을까 싶은 의구심만 키운다.



목적지를 불과 몇백 미터 남겨 두었는데도 주변은 평범한 전원의 모습이다. ‘얘가 정말 더위를 먹었나?’ 의심이 가득한 눈으로 주변을 살피며 천천히 차를 몬다. 목적지 바로 앞에 있는 세심교를 건너기 전만 해도 무엇인가 잘못되었다 싶었다. 그런데 불과 몇십 미터밖에 되지 않는 세심교를 건너자마자 반전이 일어난다.

예사롭지 않게 보이는 커다란 소나무가 강하게 시선을 끈다. 소나무를 보는 순간, 그동안 머릿속에 가득했던 의구심이 순식간에 사라진다. 이건 그동안의 경험에서 나오는 조건반사다. 사람의 눈길과 관심을 이렇게 끌어당기는 소나무가 있다는 것은 가까이에 그에 어울리는 볼거리가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내비게이션도 덩달아 입 다무는 것을 보면 세심정이 바로 보이지 않아도 목적지에 제대로 온 것이다. 서둘러 길 건너편에 차를 세우고 일단 소나무부터 살피러 발걸음을 옮긴다.

목적지에 왔으니 꽁지에 불붙은 닭처럼 서두를 것이 없다. 세심정에 앞서 소나무부터 구경한다. 멋스러운 자태를 보이는 소나무가 세 그루 있다. 길옆에 두 그루가 있고, 한 그루는 바로 옆에 있는 연당이라고 하는 연못의 섬에 장식처럼 서 있다. 길옆의 소나무는 굵은 줄기가 하늘을 향해 쭉 뻗어 올라갔다. 껍질은 옛날 장수의 갑옷미늘처럼 보인다. 비늘 하나하나를 정성 들여 붙인 것처럼 보이는 줄기는 강렬한 인상과 함께 묵직한 세월의 무게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높은 곳의 가지는 사방으로 제멋대로 뻗어나간 모습이 마치 공상과학 영화에 나오는 괴물체를 떠올리게 한다.



빙 둘러 석축을 쌓은 연못 한가운데에 소나무는 앞의 소나무들과 생긴 모습이 다르다. 소나무의 줄기는 두 갈래로 갈라져 옆으로 퍼져나갔다. 생긴 모습이 그래서인지 조금 떨어져서 보면 잎사귀가 풍성한 한 그루의 활엽수처럼 보인다. 하늘로 거침없이 솟아오른 두 그루의 소나무가 강인한 남성의 모습이라면, 연못의 소나무는 우아한 자태에 여인의 모습이라 할 수 있다.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나다”라는 우리의 전통 우주관이 연못에 투영되어 있다. 그런데도 연못은 원형에 가깝다. 이건 아마도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땅을 의미하는 연못의 형태가 여러 이유로 변형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석축을 쌓은 연못의 한쪽 귀퉁이를 보면 네모 형태의 흔적이 보이기 때문이다. 특이한 것은 연못의 크기에 비해 하늘을 의미하는 가운데 섬이 유난히 크다. 

섬이 연못 대부분을 차지한다. 흔히 보는 우리의 전통 연못은 대부분 네모난 연못이 크고 가운데 둥그런 섬이 작다. 이것 역시 세월의 부침으로 연못의 형태가 변형되면서 나타난 결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혼자 해본다. 그렇지 않고 연못을 지을 때부터 이런 모습이었다면 시대의 구도를 뒤흔드는 파격이 아닐까 싶다. 물론 이 모든 생각이 지극히 개인적이다. 이러다가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혼나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 이런 궁금증을 풀어줄 설명이 없어 혼자 북 치고 장구를 치는 셈이다. 



세심정 주변에 펜션과 주택들이 있지만, 예상했던 대로 오가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가끔 지나가는 차 소리만 빼면 세심정 주변은 아주 조용하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세심정이 내 것이 된다. 세심정은 야트막한 구릉에 있어 돌계단을 올라야 한다. 나무에 살짝 몸을 숨기고 있어 유혹의 눈길이 더 진하게 느껴진다. 세심정은 향토유적으로 지정되어 있다. 조선 시대 정암 조광조의 수제자로 이름 높았던 조욱 용문선생이 세웠다. 정암 조광조와 그 문하들이 화를 당했던 기묘사화 이후, 이곳에 은거하며 학문 연구와 후진 양성에 힘썼다. 지금의 세심당은 1940년경에 중수한 것이다.

세심정은 육각형이면서 원형에 가까운 육각원당형이다. 지붕은 육모지붕으로 단청을 입히지 않아 거쳐 간 세월의 흐름이 정자에 고스란히 배어있다. 세심정이 품은 연못의 모습이 그렇듯이 세심정도 그동안 보았던 정자들과 다른 독특함이 있다. 세심정은 우물마루를 깔고, 마루 끝에 돌아가며 낮게 난간을 둘렀다. 이 때문에 정자 전체가 하나의 큰 방처럼 여겨진다. 난간 밖으로 짧은 툇마루가 깔린 것이 독특하다. 드나드는 출입구가 따로 없어 어느 방향에서건 낮은 난간을 넘나들게 되어 있는 것도 특이하다.



세심정이 품은 자연의 경치를 딱히 꼽을 수 없다. 그 대신에 연못이 있어 정자의 멋과 운치를 더했다. 밑에서 보는 연못과 세심정에서 굽어보는 느낌이 아주 다르다. 가까이에서 볼 때는 이것저것 세심하게 보지만, 세심정에서는 여유로운 마음으로 느긋하게 전체를 보게 된다. 세심정과 연못이 이렇게 각자의 자리를 잡은 게 어떤 이유인지 대충 알 것 같다.

세심정을 지을 당시에 주변 경치가 궁금하다. 그것을 상상해보는 것도 정자 여행의 또 다른 즐거움이고 묘미이다. 지금의 시선으로 보면 세심정에서 보는 자연의 경치는 딱히 보이지 않는다. 그때 그 당시에도 이랬을까? 세심정 앞에 있는 도로 옆으로 계곡물이 흐른다. 이것이 또 다른 상상의 날개를 펼치게 한다. 예전에는 이 계곡 주변이 아름답지 않았을까? 풍류를 빼고 정자를 이야기할 수 없듯이 멋진 경치를 빼고 정자를 말할 수 없다.

주춧돌 위에 떡하니 올라있는 기둥을 보면 늘 보는 것이지만 대단하다. 접착제는 물론 홈도 없는 돌 위에 나무 기둥이 얹혀 있다. 얼핏 보면 튼튼할 것 같지 않은데, 그 오랜 세월을 끄떡없이 받치고 있다. 정자의 자체 무게 때문에 그렇다는 건 알지만, 이렇게 단순한 구조가 모진 비바람과 오랜 세월을 견딘다는 것이 새삼스럽게 놀랍다. 콘크리트 가지고도 부족해 철근까지 넣는 요즘 건물을 생각하면 무리도 아니다. 



툇마루에 걸터앉아 소리 없이 흘러가는 시간 속에 몸과 마음을 내맡긴다. 늘 하는 소리지만 이렇게 정자에 앉아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또 여유로워진다. 이런 멋과 맛을 즐기려고 정자를 찾을 때는 될 수 있으면 혼자 간다. 이 평온과 여유를 오롯이 즐기기 위해서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닭 우는 소리가 세심정의 고요를 깨뜨린다. 하루를 깨우는 새벽도 아니고 한낮에 울어대는 것을 보면 조용하기 그지없는 마을이라 꽤 심심한가 보다. 심심하고 지루함을 달랠 길 없는 닭 울음소리가 세심정의 멋과 독특함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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