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레드산 Mar 28. 2022

효사정이 한강의 경치를 고스란히 품었다

“사정(思亭)이 높이 큰 강 위에 임했는데

 효성스러운 아들 착한 손자를 갖추어 아름답다.

 세덕(世德)은 이미 산같이 무겁고,

 가성(家聲)은 길이 물과 함께 흐른다.

 봄바람 살랑거리는데 개오동나무 늙었고,

 가을날이 쌀쌀하니 골짜기가 그윽하다.

 굽어보고 쳐다보는 정회(情懷)를 누가 알아주리.

 때때로 북궐(北闕)을 보니 서기(瑞氣) 띤 연기가 떴네.” 

    

정인지의 시를 옮겨 적어 보았는데 좀 어렵다. 시의 내용이 머릿속에 명쾌하게 들어오지 않는다. 빨리 이해를 못 하는 건 내 사정이고, 아무튼 이 시는 정인지가 효사정(孝思亭)의 정취를 읊은 것이다. 효사정과 관련된 시문은 이것 말고도 여러 학자와 문인들이 남겨 놓은 게 많다. 밑도 끝도 없이 효사정 이야기를 했는데, 어디에 있는 정자인지 궁금할 것이다. 

정자 하면 어디 지방에 산 좋고 물 좋은 곳에 있는 것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효사정은 먼 곳에 있는 게 아니라, 서울 동작구 흑석동에 있는 정자로 한강을 굽어보고 있다. 효사정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2015년 8월, 함께 여행을 다녔던 지인을 통해서 알았다. 그때 보고 다시 보는 거니까 얼추 6년 만이다. 


근래 들어 느닷없이 효사정 생각이 많이 났다. 코로나로 갇혀 지내다 보니까 그랬는지 불쑥 효사정이 보고 싶었다. 효사정에서 장엄하게 흐르는 한강을 보며 갑갑한 마음을 잠시나마 떨쳐내고 싶었던 모양이다. 멀지 않은 곳에 있지만, 이런저런 일에 치여 차일피일 가보지를 못했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날씨가 오늘은 봄이 온 것처럼 화창하다.

뭔 일이 되려는지 오늘은 딱히 할 일이 없다. 이 좋은 날에 집에서만 빈둥대기가 아까워 이때다 싶어 효사정을 찾는다. 엊그제 다녀온 것 같은데 6년이란 시간이 훌쩍 지났다. 시간이 빨리 간 건지 세월의 무게에 대한 느낌이 무디어졌는지는 몰라도 벌써 그렇게 되었다, 서울의 모습은 하루하루가 다르다. 효사정도 서울이라는 테두리 안에 있어 그 물결을 피할 수 없었는지 주변이 몰라보게 변했다.



예전에는 효사정만 자리를 지키고 있었는데, 이제는 주변이 효사정 문학공원으로 바뀌었다. 효사정 문학공원이 주인공인지 효사정이 주인공인지 애매하게 되었다. 예전에는 한강대교 방향에서 효사정을 올라갔다. 이제는 흑석역 1번 출구 앞에서 손쉽게 효사정을 올라갈 수 있다. 올라가는 길이 길지도 않은데, 길 초입에는 지름길 계단까지 생겼다. 

이렇게 되면 성격에 따라 선택하는 길도 달라진다. 빠르게 목적지에 가려는 사람은 계단을 오르겠지만, 잔뜩 여유를 부려보고 싶은 여행자는 앞으로 이어지는 길을 택한다. 경사가 심하지 않은 오르막길에 군데군데 시비가 보인다. 소설 “상록수”로 우리에게 잘 알려진 심훈의 시비이다. ‘아니? 여기 왜 심훈의 시비가 있지?’ ‘효사정과 심훈 사이에 무슨 관계가 있나?’ 

오르막이 끝나는 곳에 이르면 그 궁금증이 자연스럽게 풀린다. 그곳에는 한강을 등지고 앉아 책을 펼치고 있는 심훈 동상이 있다. 안내문을 보면 소설가 심훈은 1901년 흑석동에서 태어나 이곳에서 오랫동안 살았다. 학창 시절, 교과서에서 처음 배웠던 심훈이 흑석동에서 태어나고 살았다는 사실을 오늘 처음 알게 되었다. 


효사정에서 멀지 않은 곳에 지금도 친하게 지내는 고등학교 친구의 집이 있었다. 자주 놀러 왔던 곳이라 흑석동은 늘 친근하게 여겨진다. 내가 책을 좋아하게 된 거는 순전히 그 친구 덕분이었다. 지금도 나와 친구는 여전히 책을 좋아한다. 그 친구가 그렇게 책을 좋아한 건 심훈과 같은 지역에서 살았던 영향 때문이 아닐까 하고 억지로 꿰맞추어 본다. 다음에 만나면 한번 물어봐야겠다. 

그뿐만이 아니다. 심훈이 태어난 생가가 효사정 문학공원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흑석동 성당에 있었다고 한다. 이것도 인연이라면 인연이다. 흑석동 성당 1층 봉안당에 돌아가신 장모님이 계신다. 장모님을 모신 자리는 장례 기간에 내가 와서 정했다. 무언가 자꾸 심훈과 인연의 끈이 이어지는 기분이다. 흑석동 성당은 생각날 때마다 아내와 함께 찾는다. 성당에 심훈 생가터 표식이 있다니 다음에 꼭 한번 찾아봐야겠다.



효사정에 왔다가 생각지도 않게 심훈에 대해 알게 되어 보너스를 받은 기분이다. 심훈 동상에서 조금만 오르면 효사정이다. 오르막 계단 위쪽으로 보이는 효사정의 지붕이 유난히 반갑게 느껴진다. 오랜 시차를 두고 다시 보는 데다 한번 눈에 익어 그런 모양이다. 서둘러 계단을 올라 효사정과 마주한다. 소나무 사이로 보는 효사정의 모습이 정자의 멋을 물씬 풍긴다.

효사정은 그대로이지만, 주변은 변했다. 효사정과 관련한 안내문이 많고, 옆에는 전망 쉼터도 있다. 효사정 문학공원으로 꾸미면서 이것저것을 보태놓았다. 한강 변 언덕에 있는 효사정은 조선 세종 때, 한성 부윤과 우의정을 지낸 공숙공 노한의 정자이다. 모친이 돌아가시고 3년간 시묘살이를 했던 자리에 정자를 지었다.

 

지금의 효사정은 조선 성종 때 헐린 거를 1993년에 새로 지은 것이다. 눈앞의 효사정은 이름만큼의 세월을 끌어안지는 못했다. 그래도 지울 수 없는 역사의 무게는 이름깨나 알려진 정자에 뒤떨어지지 않는다. 효사정의 기록과 시문을 참고해서 효사정의 옛터와 가장 가까운 자리에 정자를 세웠다고 한다. 그동안 강산이 셀 수 없이 뒤바뀌었으니 온전하게 옛 자리를 찾는 건 불가능했을 것이다. 

효도의 상징으로 꼽히는 효사정은 예로부터 한강을 끼고 있는 정자 중에서 최고의 경치를 품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도 서울시 우수 경관 조망 명소로 선정되어 있어 경치에 대해서는 더 말할 것이 없다. 먹어봐야 맛을 안다고 효사정에 와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효사정은 정자치고 꽤 큰 편이다. 많은 사람이 둘러앉을 수 있을 만큼 대청마루가 널찍하고, 한쪽 편에 치우쳐 있는 방도 작지 않다. 대부분 정자는 정자 가운데에 방을 드렸는데, 효사정은 한쪽 편에 있다. 여러 사람이 즐길 수 있게 대청마루를 넓게 하려고 그렇게 한 모양이다. 아쉬운 점은 정자에 올라갈 수 없다. 마루 끝에 올라가지 말라는 안내판이 떡하니 가로막고 있다.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이럴 필요가 있을까 싶다. 자주는 아니어도 기회가 되는 대로 전국에 있는 정자를 찾는다. 근래 들어 찾은 정자 중에서 사람을 못 올라가게 하는 정자는 보지 못했다. 아주 오래된 정자라도 정자에 올라 정취와 경치를 마음껏 즐겼다. 요즘은 사람들의 의식 수준이 높아서 문화재를 대하는 마음 자세가 예전 같지 않다. 즐기면서도 그 소중함을 알기 때문에 함부로 대하지 않는다.


어찌 됐든 올라가지 말라니까 지킬 수밖에 없다. 정자에서 선비라도 된 것처럼 즐겨보는 운치는 접어두고, 정자에 올랐거니 하는 마음으로 경치를 둘러본다. 자주 보는 한강과 수시로 이용하는 올림픽대로가 시원하게 펼쳐진다. 한강 너머로 보이는 북한산, 남산, 동작대교, 한강공원과 빈 곳이 보이지 않는 빽빽한 빌딩 숲이 한눈에 들어온다. 

효사정에서 보면 자연의 경치만 아름다운 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사람이 만든 건축물도 그 나름의 멋스러움이 있다. 그 건축물들이 유유히 흐르는 한강과 저 멀리 보이는 산과 함께 어우러지는 바람에 멋스러움이 더해진다. 이렇게 멀찌감치 떨어져서 큰 강을 보면 강물이 흐르는지 멈추어 있는지 구분되지 않는다. 잔잔한 한강의 물줄기를 가르며 유람선이 지나간다. 여느 그림엽서와 비교해도 뒤떨어지지 않는 멋과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올림픽대로에는 잠시도 쉴새 없이 자동차가 꼬리에 꼬리를 문다. 소음으로 들릴 법한 자동차 소리가 넉넉한 경치 속에서 들려 그런지 별로 거슬리지 않는다. 공익광고에서 나라의 역동성을 보여주는 장면에는 고속도로가 단골손님으로 등장한다. 자동차가 빠르게 달려가는 올림픽대로를 보고 있으면 연출하는 사람들이 왜 그렇게 했는지 이해가 된다. 시원하게 쭉 뻗은 올림픽대로에서 활기 넘치는 역동성이 느껴진다. 

효사정이 품은 경치를 보면 효사정의 규모가 왜 이 정도는 되어야 하는지 알 것 같다. 넓은 한강과 올림픽대로 그리고 맞은편 빌딩 숲의 경치를 온전히 품으려면 이 정도는 되어야 한다. 효사정이 자그마한 정자였다면 보이는 경치를 다 품는 데 부하가 걸려 그 멋스러움이 떨어졌을 것이다. 당당하고 의연한 모습의 효사정은 펼쳐진 눈앞의 경치에 조금도 밀리지 않는다.



TV 여행 프로그램을 보면 외국인들이 자주 등장한다. 그들이 한옥을 보면서 감탄하는 것 중의 하나가 날렵한 지붕과 처마다. 한옥의 지붕과 처마 너머로 보이는 경치가 아주 멋있다고 한다. 우리는 우리 것이라 좋은 줄을 놓칠 때가 있지만,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는 한옥만의 특별한 아름다움일 것이다. 오늘 효사정에서 그동안 잊고 있었던 그 멋과 아름다움을 재발견한다. 같은 하늘이라도 처마 너머로 보이는 하늘이 더 진하고 예쁘다. 회색빛 도시의 빌딩 숲도 단청을 입은 처마 너머로 보면 단청에 물들어 아름답게 보인다.

 

하루가 다르게 날씨가 풀린다. 화창한 날씨가 사람들의 마음을 기분 좋게 해준다. 물에 빠진 사람을 건져주니까 봇짐을 내놓으라고 한다는 옛말이 있다. 효사정에서 경치 구경을 하고 있으니까 그윽한 향기의 커피 생각이 간절하다. 커피를 마시며 한강의 경치를 즐길 수 있다면 지금, 이 순간에는 그 보다 호사가 없다. 그뿐 아니라, 늘 목을 죄며 달려가는 시간의 굴레도 훌훌 벗어던질 수 있을 것 같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자동차 소리가 악기 소리처럼 리드미컬하게 들린다. 

작가의 이전글 차가운 눈발 속에서 의연하게 서 있는 자네는 누군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