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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드산 May 24. 2022

올챙이국수와 콧등치기국수

“올챙이국수 하나에 콧등치기국수 하나, 그리고 모둠전 하나 주세요!”

“올챙이국수 드셔보셨나요?”

“아니요. 처음인데요”

“올챙이국수는 우리가 흔히 아는 그런 국수가 아닙니다.

 백 프로 옥수숫가루로 만드는데, 숟가락으로 뜨면 올챙이 모양이라서 올챙이국수라고 합니다.

 콧등치기 국수는 메밀로 만든 국수이고요”

“아~ 네! 감사합니다”

     

올챙이국수도 국수라는 이름이 붙어 있어 일반 국수로 오해할까 봐 미리 설명해준다. 사장인지 종업원인지는 모르겠지만, 주문받으면서 올챙이국수와 콧등치기국수를 미리 설명해준다. 친절하게 미리 알려주는데 알고 있다고 말을 끊기가 미안해서 끝까지 들었다. 

올챙이국수는 TV에 여러 번 나와서 만드는 과정이나 생긴 모양을 알고 있다. 외려 콧등치기국수는 이름만 들었지 한 번도 보지 못했다. 올챙이국수나 콧등치기국수나 그 이름이 재미있어서 어떤 맛일지 늘 궁금했다.

 

정선 오일장 시장 입구에 올챙이국수와 콧등치기국수로 이름난 식당이 있다. 주말에는 그 맛을 보려면 최소한 30분에서 한 시간 이상을 기다려야 할 만큼 소문난 집이다. 사실 갈 때는 이 식당이 그렇게 유명한 곳인지 몰랐다. 시장에는 이 식당 말고도 올챙이국수와 콧등치기국수를 파는 식당이 여럿 있다. 그런데 유독 이 집만 유명세를 치르는 모양이다. 

가끔은 이런 게 궁금하다. 같은 음식을 파는데도 어떤 집은 손님들이 줄을 서고, 어떤 집은 파리만 날리는 게 알다가도 모르겠다. 그런 데는 분명 이유가 있겠지만, 때론 이해가 안 될 때도 있다. 맛있는 음식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그 음식을 먹으려고 오랜 시간 할 일 없이 기다리는 건 딱 질색이다. 그럴 땐 미련 없이 다른 곳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운이 좋았던지 기다리지 않고 곧바로 식당에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점심시간을 꽤 넘긴 시간이라 그랬는지 테이블에 다소 여유가 있었다. 그런데도 식당에는 국수 맛을 보려는 사람들이 적지 않게 자리 잡고 있었다. 

주문을 마치고 생각해보니까 아주 오래전에 한 번 와봤던 기억이 되살아난다. 오랫동안 대학 친구들과 부부 모임을 하고 있다. 코로나 때문에 근래 1~2년은 못했지만, 일 년에 두세 번은 다 같이 전국을 여행했다. 오래전 이 모임에서 정선을 여행했다. 그때 정선 오일장을 구경 왔다가 들렀다. 이름이 재밌어서 올챙이국수와 콧등치기국수를 먹고 싶었는데 먹지를 못했다. 모임의 절반인 강원도 출신들의 반대로 국수 대신에 모둠전과 막걸리를 마셨다.

 

아내와 여행하면 역할이 정해진다. 나는 구경거리 담당이고, 아내는 먹을거리를 찾는다. 정선을 가기로 했을 때, 아내는 이 식당을 찜해 놓은 모양이다. 나는 한번 먹어보고 싶었던 음식이라 좋았지만, 조금 의외였다. 나는 삼시세끼를 다 면으로 먹어도 좋은 사람이지만, 아내는 그다지 면을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막국수는 늘 별로라고 했던 사람이다. 겨울에 고성을 여행하면서 이름난 집에서 막국수를 맛있게 먹고 나서부터는 생각이 많이 바뀌기는 했다. 

[올챙이국수]

그나저나 생각지도 않게 올챙이국수와 콧등치기국수를 먹게 돼서 은근히 기대된다. 맛도 그렇고, TV에서 보았던 올챙이국수를 직접 본다는 게 기대감을 자극한다. 그것도 소문난 맛집에서 먹게 되어 기대감이 더 커진다. 식당 입구에서부터 녹두빈대떡과 메밀부침을 부치는 고소한 냄새가 코끝을 간질인다. 우리나라 식당에 큰 장점은 음식이 빨리 나오는 거다. 모둠전이 나오고 국수가 나오는 게 순서인 것 같은데 국수가 먼저 나온다. 모둠전에 전 하나가 늦어지는 바람에 국수가 먼저 나왔다고 한다.

 

눈길은 아무래도 올챙이국수에 먼저 간다. 통통하고 길쭉하게 생긴 것이 영락없는 올챙이 모습이다. 그런 올챙이들이 한데 뒤엉켜있는 개구리알처럼 그릇에 가득하다. 눈으로 보아도 알 수 있는 것을 다시 확인해보겠다는 생각에 서둘러 숟가락으로 떠본다. 올챙이하고 백 프로 똑같다고 할 수는 없지만, 올챙이국수라는 이름이 딱 어울린다.

올챙이국수는 옥수숫가루로 만든다. 국수라고 부르지만 만드는 방법으로는 묵 요리에 들어간다. 열량이 낮고 소화가 잘돼서 살찔 염려 없는 건강식이다. 정선지방에서는 속풀이용 음식으로 먹었다고 한다. 올챙이처럼 생긴 면 위에 잘게 썬 묵은김치와 고추, 파, 김 가루가 고명으로 올라갔다. 

어떤 맛일까? 잔뜩 궁금해하면서 면과 고명을 골고루 섞는다. 그런 다음 숟가락에 넘치도록 가득 떠서 먹는다. ‘아니? 이게 뭐지?’ 분명 먹었는데 입안에서 순식간에 사라진다. 맛을 느껴보기도 전에 목구멍으로 사라진다. 씹을 것도 씹을 틈도 없이 입안에서 사라진 것이다. 마치 귀신에 홀린 듯하다.


이번에는 그 정체를 밝히고야 말겠다는 생각으로 다시 가득 떠서 신중하게 입 안에 넣는다. 결과는 마찬가지다. 입안에 들어간 올챙이들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진다. 이게 뭔 일인가 싶다. 이젠 안 되겠다 싶어 연거푸 퍼먹는다. 그래도 결과는 똑같다. 블랙홀로 변한 목구멍으로 올챙이들이 사정없이 빨려 들어간다. 

이렇다 보니 올챙이국수의 맛을 제대로 느낄 새가 없다. 처음 먹는 것이라 그 참맛을 모르는 것인지는 몰라도 딱히 어떤 맛을 느끼지 못한다. 굳이 맛을 이야기한다면 면 위에 올라간 고명들의 담백한 맛이다. 올챙이국수는 100% 옥수숫가루를 사용하기 때문에 식감을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아주 부드럽다. 옥수수는 살짝 달큼하면서 구수한 맛이 있는데, 올챙이국수는 딱히 씹을 게 없어 옥수수 본연의 맛을 느끼기가 쉽지 않다. 


콧등치기국수를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콧등치기국수의 면은 칼국수 면처럼 넓적한데, 메밀로 만들어서 그런지 색감은 막국수와 똑같다. 생김새로 보면 칼국수와 막국수를 섞어놓은 것이다. 콧등치기국수는 투박하고 소박하게 보인다. 면이 굵고 넓적해서 식감이 아주 쫄깃하다. 

[콧등치기국수]

콧등치기국수에는 열무김치와 오이, 고추, 김 가루가 들어갔다. 면도 면이지만, 새콤한 맛이라서 마음에 쏙 든다. 간이 강하지도 약하지도 않게 적당한데다 새콤함이 더해져 젓가락을 멈출 수가 없다. 

콧등치기국수는 정선지방의 향토 음식이다. 메밀로 빚은 반죽을 칼국수처럼 눌러서 만들어 “느름국”이라고 하기도 하고, 어렵던 시절에 하도 많이 먹어 꼴도 보기 싫다고 해서 “꼴뚜 국수”라고도 한다. 예전 모임에서 강원도 친구들이 국수에 왜 손사래를 쳤는지 이제 알 것 같다. 


너나 할 거 없이 어렵게 살던 시절에 먹었던 음식들이 있다. 수제비, 국수, 콩나물국, 비지찌개 같은 음식은 그 시절에 물리도록 먹어서 그때는 두 번 다시 먹고 싶지 않았다. 그랬던 것들이 이젠 별미가 되어 잘하는 집을 일부러 찾아가는 세상이니 유행처럼 먹는 것도 돌고 도는 모양이다. 

콧등치기국수는 요즘 말로 “면 치기”를 하면 면발이 콧등을 칠 정도로 쫄깃하고 탄력이 좋아 붙여진 이름이다. 정말 그런지 한번 해보고 싶은데, 사방으로 국물이 튈까 싶어 참는다. 굳이 시험해보지 않아도 면발의 그 쫄깃함은 입안에서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어른들이 아이를 놀릴 때 하는 질문이 하나 있다. “엄마가 좋으냐? 아빠가 좋으냐?” 예전 아이들은 선뜻 대답하지 못하고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마음이 약한 아이는 울음을 터트리기도 했다. 요즘 아이들은 똑똑해서 엄마, 아빠 다 좋다고 한다. 누가 올챙이국수가 좋으냐? 콧등치기국수가 좋으냐? 하고 물으면 아이도 아닌데 선뜻 대답하기가 애매하다.

 

오랫동안 전해져 내려오는 향토 음식은 좋고 나쁨을 따지기 어렵다. 향토 음식은 꼭 맛으로만 이야기할 수 없다. 향토 음식은 지역의 역사와 그곳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삶의 이야기가 배어 있는 음식이다. 그런 음식을 시대가 변하고 생활이 변한 지금에서 섣불리 맛으로만 이야기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도 누가 은근슬쩍 다가와 옆구리를 쿡쿡 찌르면서 솔직히 대답하라고 하면…     

“콧등치기국수”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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