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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드산 Sep 06. 2022

봉황정은 아직도 봉황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텅 빈 높은 터에

이름난 정자를 세웠다고

사람들은 전해오나

새야 알는지

태평성대 풍류 소리

지금은 고요한데

봉황은 그 어느 날에나

찾아올 건가 

    

역사의 인물인 백사 이항복이 지은 양평 봉황정(鳳凰亭)에 대한 시다. 봉황정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정자는 봉황에 대한 의미와 바람이 깃들어 있다. 봉황은 고대 중국에서 신성시했던 상상의 새로 고귀하고 상서로움을 나타낸다. 옛사람들은 봉황이 나타나면 천하가 태평하다고 믿었다. 그래서 봉황은 천자의 상징이 되었고, 이는 천자가 나라를 잘 다스리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선 시대에 들어와 성군을 상징하는 의미로 사용되었다. 이것을 보면 봉황은 태평성대의 상징물이다.


봉황정은 조선 인조 때, 남원 양씨 가문에서 세운 정자다. 글과 학문을 익히는 곳이자 지역 선비들과의 교류 장소였다. 빼어난 경치를 품고 있어 시인 묵객들이 시를 지으며 경치를 즐겼던 곳이다. 철종 때, 불타버린 것을 1967년에 복원했다. 봉황정에는 구성대(九成臺)와 남휘정(覽輝亭) 이라는 또 다른 편액이 걸려 있다. 

구성(九成)은 태평성대를 아홉 번이나 이루어 봉황이 춤추는 모습을 뜻한다고 한다. 남휘(覽輝)는 봉황이 천 길을 날다가 덕이 빛나는 거를 보고 내려앉았다는 뜻이라고 한다. 안 그래도 정자 이름이 봉황정인데, 이렇게 봉황과 관련된 편액이 두 개씩이나 걸려 있는 걸 보면 그 당시의 세상이 태평성대였던가 아니면 태평성대가 오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름을 지은 게 아닌가 싶다. 


정자 이름에 봉황이 들어 있어 이야기가 자꾸 본론에서 벗어난다. 요즘의 여름비는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다. 장마가 끝났다고 했는데,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지면서 온 나라가 물난리를 겪었다. 휴가철이라 딱히 갈 데가 없어도 엉덩이가 들썩이는데, 날씨가 이 모양이라 밖을 나가지 못한다. 다행히 쉬는 날을 맞아 내리던 비가 잠시 멈추었다.


 


이때다 싶어 며칠 전에 찾아놓고 기회만 보던 봉황정을 보러 간다. 주말의 오전은 양평으로 가는 차가 밀리겠다 싶어 점심까지 먹고 집을 나섰다. 그런데 사람들 생각이 다 같은 모양이다. 오후인데도 양평으로 가는 팔당대교를 건너려고 차들이 길게 늘어섰다. 가기는 가야 하니까 일단 그 대열에 합류할 수밖에 없다. 이러다가도 뚫리면 금방 빠질 거라는 희망으로 서 있는데, 시간이 가도 꽉 막힌 도로는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얼마나 지났을까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대열을 빠져나왔다. 좀 멀리 돌기는 해도 퇴촌 쪽으로 내려가서 양평으로 들어가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봉황정은 찾기 쉽게 용문로 도로변에 있다. 내비게이션은 목적지에 다 왔다고 하는데, 주차장은 보이지 않는다. 그나마 다행스럽게 봉황정 삼문 앞에 딱 차 한 대를 세울 수 있는 공간이 있어 마지막 퍼즐을 맞추듯이 그곳에 차를 세웠다.

 

봉황정을 가려면 삼문을 지나야 한다. 그러고 보니까 삼문이 세워져 있는 정자를 본 적이 있나 싶다. 원래부터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후대에 추가로 지은 것인지는 따로 안내 자료가 없어 알 수가 없다. 그렇지만 힘이 넘치는 글씨체의 봉황정 편액이 당당하게 걸려 있어 눈길을 끈다. 삼문은 굳게 닫혀 있지만, 걱정할 건 없다. 삼문 옆으로 드나드는 샛길이 있다는 것을 미리 알고 있어서 자연스럽게 발걸음을 옮긴다.

 

샛길을 지나면 삼문을 사이에 두고 안과 밖의 경치와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삼문 바깥쪽은 차가 오가는 도로지만, 안쪽은 울창한 나무숲이라 마음과 기분이 금세 새로워진다. 오른편에는 기와를 얹은 담장이 둘러쳐져 있고, 왼편은 돌계단을 따라 마치 성벽처럼 보이는 돌담이 이어졌다. 돌담 옆에는 봉황정으로 가는 돌계단이 이어진다.



굳게 닫혀 있는 삼문이 바깥세상의 번잡함과 소음을 가로막았는지 주위가 조용하다. 봉황정으로 가는 돌계단은 나무숲이 만들어 놓은 어스름한 그늘로 덮여있다. 그 때문인지 돌계단을 오르는 발걸음이 나도 모르게 조심스럽다. 은근한 무게감이 느껴지는 그 무엇인가가 있는 역사의 공간이어서 행동거지가 조심스럽다. 큰소리를 내거나 발소리를 크게 내면 잠들어 있는 역사의 어느 순간이 깨어날 것 같다. 


일일이 돌계단을 세워보지는 않았지만, 얼마 오르지 않아 봉황정이 모습을 드러낸다. 안 그래도 조심스럽게 올라가는 사람을 봉황정이 지그시 내려다본다. 그 모습에서 봉황정의 중후한 기운이 느껴진다. 그 순간, 마음이 더욱더 조심스러워진다. 곧이어 봉황정이 한눈에 들어오면 생각했던 것보다 커서 살짝 놀라게 된다. ‘아! 이래서 봉황정을 누정이라고 하는구나’


누정은 누각과 정자를 합쳐 부르는 말이다. 가끔 누각과 정자의 차이가 헷갈린다. 벽과 문이 없이 사방이 툭 터져 있는 건 누각이나 정자나 같다. 다른 점은 정자보다 누각은 높고 규모가 크다. 정자는 방을 드린 곳이 많지만, 누각에는 방이 없다. 그리고 정자는 사적인 용도로 많이 지었지만, 누각은 공적인 용도가 많다. 이 정도가 누각과 정자의 차이점이다.

 

봉황정은 그동안 보았던 정자들보다 규모가 확실히 크고, 방은 따로 없다. 꽤 많은 사람이 앉을 수 있게 마루가 널찍하다. 흔히 보았던 정자와는 규모에서 차이가 있어 중후한 느낌이 먼저 다가온 듯하다. 앞에서 미리 말했듯이, 봉황정에는 “구성대”와 “남휘정”이라는 편액도 걸려 있다. 또 여러 사람의 시편도 걸려 있다. 시편에는 한문과 한글이 같이 적혀 있다. 그런 것을 보면 옛것이 아니라 새로 만든 것임을 알 수 있다. 역사적인 사실감은 떨어지지만, 뜻도 모른 채 시편만 바라보는 것보다 시의 내용을 알 수 있어 그건 괜찮아 보인다. 



수령이 꽤 되어 보이는 큰 나무들이 봉황정을 둘러싸고 있다. 돌담과 함께 나무들이 정자를 에워싸고 있어 숨어 있는 듯한 포근함과 아늑함이 있다. 이런 분위기도 좋지만, 그래도 정자는 전망이 툭 터져 있는 게 좋지 않을까 싶다. 봉황정 앞으로 흑천이 흐른다. 그 흑천을 봉황정에 앉아서 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니까 봉황정의 실제 옛 경치가 어땠는지 궁금하다.

 

봉황정은 규모가 있어 단청의 아름다움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이럴 땐 단청의 아름다움이 화려함과 함께 웅장한 멋도 살려준다. 정자에서 가장 눈길을 끈 건 기둥 윗부분의 익공(翼工)이었다. 익공은 기둥 위에 새 날개처럼 뻗어 나온 장식 효과의 부재이다. 전통 목조건물에서 많이 봤지만, 정자에서 이처럼 크고 화려한 익공은 보지 못했다. 가장 윗부분의 새 얼굴은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날카로운 눈이 여간 매서운 게 아니다.

 

봉황정에서 가장 극적인 장면은 정자와 그 앞에 있는 소나무가 마주 보고 있는 모습이다. 만만치 않은 세월의 무게가 느껴지는 소나무가 하늘로 뻗어 올라가다가 봉황정 쪽으로 고개를 수그렸다. 그 모습은 오랜 세월의 동지끼리 고개를 맞대고 지난 이야기를 주고받는 것처럼 보인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그 모습이 내심 부럽다. 



사람은 제아무리 오래 살아도 백 세를 넘기기 어렵다. 봉황정과 소나무는 지나온 세월과 함께 앞으로 함께 할 세월이 그야말로 무궁무진하다. 이 시대의 사람들이 다 떠나도 그들은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지금처럼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를 나눌 것이다. 그들에게는 흘러가는 세월과 시대의 사람들 이야기가 세월을 버텨내는 힘이 되는지도 모른다. 한참 뒷날 어느 시대에 지금의 나처럼 이곳에서 이 모습을 보는 이가 분명 있을 거다. 봉황정과 소나무는 그 사람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궁금하다. 


봉황정이 어떤 곳에 자리 잡았는지 궁금했다. 삼문을 나와 옆에 있는 다리 쪽으로 올라가 봉황정을 바라봤다. 봉황정은 나무숲에 가려 있어 보이지 않는다. 길게 흘러가는 흑천이 툭 튀어나온 절벽 밑에서 잠시 머물다 간다. 나무숲이 우거진 그 절벽 위에 봉황정이 있다. 흑천과 절벽 그리고 모습을 드러낸 봉황정이 어우러진다면 그건 완벽한 한 폭의 동양화가 된다. 그러자 봉황정의 옛 경치가 더욱더 궁금해진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세상이 태평하기를 바란다. 그렇지만 수많은 사람이 뒤엉켜 살아가는 세상이 마냥 태평스러울 수가 있을까?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각자가 근심 걱정을 내려놓고 평온하고 여유롭게 살아가면 그것이 태평성대가 아닐까 싶다. 그런데 살아봐서 알지만, 그것 역시 쉽지 않은 일이다. 그래도 꿈과 희망을 안고 언제 봉황이 올지 기다려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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