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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드산 Dec 25. 2023

보는 재미와 먹는 즐거움이 함께 있는 안산 다문화 거리

칠년 전, 지인들과 함께 대림동 차이나타운에 구경 갔다가 많이 놀란 적이 있다. 중국인들이 많이 산다는 이야기를 듣기는 했지만, 막상 직접 보니까 서울인지 중국에 어느 도시인지 헷갈렸다. 길거리에는 온통 한문으로 된 간판들이 즐비했고, 중국 음식과 식재료를 파는 식당과 상점들이 넘쳤다. 길거리에서 중국의 먹을거리를 파는 아주머니는 우리 말을 전혀 모르면서도 아무 불편 없이 장사하고 있었다. 그걸 보면 한국인이 아니라, 중국인이나 조선족을 상대로 장사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지인들과 점심을 먹으려고 들어간 중국집에서는 황당한 일을 겪었다. 말도 안 통하는 종업원을 상대로 겨우 몇 가지 요리를 주문해서 식사하고 있었다. 그때 일행 중의 한 사람이 음식을 먹다가 길이가 족히 3㎝ 정도가 되는 녹슨 못을 뱉었다. 자칫 큰일 날 뻔했던 상황이라 그냥 넘어갈 수 없어 종업원에게 항의했지만, 소귀에 경 읽기였다. 


나중의 주방에서 요리사이자 사장으로 보이는 사람이 나왔는데 말이 안 통하기는 매한가지였다. 우리가 건네준 대못을 들고는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혼잣말하더니 휭하니 주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러고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다들 황당했지만, 말이 통하지 않으니 더는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인지 대림동 차이나타운에 대한 기억은 썩 유쾌하게 남아있지 않은 게 사실이다. 


예전에는 돈을 벌기 위해 우리나라에 들어오는 사람들 대부분이 조선족이나 중국인들이었다. 이제는 그들뿐만 아니라, 동남아를 비롯해 여러 나라 사람이 들어와 살고 있다. 일자리를 찾아오는 외국인도 많고, 관광으로 오는 이들도 셀 수없이 많다. 이젠 세계인이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는 세상이다. 6~70년대만 해도 길거리에서 외국인 보기가 쉽지 않았다. 어쩌다가 외국인을 보면 신기해서 몇 번이고 쳐다보았다. 철없는 꼬맹이들은 외국인을 졸졸 쫓아다니기도 했다. 이젠 대도시는 물론 전국 어디를 가도 외국인을 쉽게 볼 수 있다. 이런 걸 보면 세상 참 많이 변했다.



경기도 안산에는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사는 다문화 거리가 있다. 진즉부터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어쩌다 보니 가볼 기회가 생기지 않았다. 또 대림동 차이나타운에서의 지난 기억이 있어 선뜻 가볼 마음이 들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안산 다문화 거리는 안산 9경의 하나로 꼽히는 관광명소다. 우리나라에서 외국인이 가장 많이 사는 곳으로 105개국의 8만 명이 넘는 외국인이 거주하고 있다고 한다. 그야말로 세계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다.


다문화 거리는 거리를 구경하는 재미와 함께 각국의 전통음식을 먹을 수 있어 여행 삼아 가보기 좋은 곳이다. 겨울이 계절을 까먹었는지 요 며칠 동안 날씨가 봄날처럼 풀렸다. 시간이 날 때마다 함께 여행하는 이들과 안산 다문화 거리를 찾았다. 안산역 1번 출구 맞은 편으로 보이는 다문화 거리는 다른 나라 글로 된 간판 때문인지 색다른 분위기를 보여주었다. 


날씨가 따뜻한 주말이라 그런지 다문화 거리는 입구부터 사람들로 북적였다. 눈길은 오가는 사람들에게로 먼저 갔다. 다문화 거리라는 이름에 걸맞게 다양한 피부색과 얼굴을 가진 사람들이 바삐 움직였다. 중국 사람들을 포함해서 아시아의 여러 나라 사람이 보였다. 다문화 거리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규모가 컸고, 외국인들도 정말 많았다.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을 유심히 보았는데, 우리나라 사람은 생각보다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다문화 거리는 중앙도로와 함께 이면도로까지 식당과 상점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길을 걷다 보면 여러 나라 간판이 보여 다문화 거리만의 색다른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색다른 분위기이긴 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이국적이지는 않았다. 우리 것과 외국 것들이 뒤섞여 있어 살짝 혼란스럽기도 하고, 또 이국적이기도 한 묘한 분위기였다. 어찌 되었든 우리 땅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게 신기하게 여겨졌다. 여러 나라의 간판이 있긴 하지만, 역시나 한문으로 된 중국 간판이 제일 많이 눈에 띈다. 자주 이용하는 은행이 한쪽에 한문으로 된 간판을 걸어놓았는데, 그 모습을 처음 보아서 그런지 낯설면서도 재밌어 보였다. 



상점과 식당도 역시 중국 상점과 식당들이 많았다. 상점에는 TV 여행프로그램에서 보았던 그들만의 독특한 식재료와 먹을거리가 가득해서 마치 중국 여행이라도 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다문화 거리는 구경하는 재미도 재미지만, 뭐니 뭐니 해도 각국 음식을 먹어볼 수 있는 즐거움을 빼놓을 수 없다. 이곳의 식당들은 자국민을 상대하는 곳이라, 우리 입맛에 맞게 현지화되지 않은 그들 본연의 맛을 즐길 좋은 기회이다. 


딱히 아는 곳이나 미리 알아본 데가 없어 핸드폰 찬스를 썼다. 안산 다문화 거리의 맛집을 검색하면 여러 나라의 음식점이 줄줄이 올라온다. 어디서 어떤 나라의 음식을 먹을까 고민하는 것도 나름 소소한 즐거움이다. 처음에는 먹어보지 못한 나라의 음식을 먹으려고 했는데, ‘북경 오리’를 하는 식당이 있어 마음이 바뀌었다.


북경 오리는 유명해서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음식이다. 겉껍질은 바삭하면서 속이 촉촉한 북경 오리는 쉽게 접하기 어렵다. 오래전, 시내에 있는 어느 식당에서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있어 본토의 맛이 궁금했다. 이곳이 북경은 아니지만, 중국인을 상대하는 중국 식당이라 나름 본토의 맛을 엿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맛집이라 오래 대기해야 하는 건 아닌지 걱정스러웠지만 다행히 그렇지는 않았다. 


식당 입구에는 사진이 있는 큰 메뉴판이 있어 음식들을 미리 살펴볼 수 있었다. 우리는 ‘북경 오리 세트’를 먹기로 했다. 식당 안은 바깥에서 보던 것과 달리 사람들로 가득했다. 주말이라 그런지 널찍한 홀에는 빈 식탁이 보이지 않았고, 구석 쪽에 빈자리가 딱 하나 남아있었다. 겨우 자리를 잡고 어떤 사람들이 왔을까 궁금해서 귀를 쫑긋 세워보았다. 들리는 말은 온통 중국말이었다. 그래서인지 제대로 왔다는 안도감과 함께 마치 중국 여행을 와서 식당에 들어온 것 같은 설렘과 긴장감을 즐길 수 있었다. 


그때 불현듯 대림동 차이나타운이 떠올랐다. 여기서도 그때처럼 주문하는 데 애를 먹는 게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었다. 다행히 주문받는 아주머니는 우리말을 유창하게 잘해서 주문하는 데 전혀 어려움이 없었다. 아주머니는 음식을 가지고 와서 먹는 방법까지 친절하게 설명해주었다. 음식은 가격 대비 기대 이상으로 정갈하고 푸짐했다. 오리는 살코기와 다리, 뼈를 분리해서 두 접시로 나왔다. 고기를 따뜻하게 먹을 수 있도록 접시 밑에 작은 불을 피워주었다. 



오리고기와 함께 먹을 수 있는 탕도 함께 나왔다. 국물만 있는 게 아니라, 고기가 제법 붙은 뼈들이 꽤 많이 들어 있었다. 오리고기를 싸 먹는 종잇장처럼 얇은 밀전병이 따라 나왔고, 쌈에 넣는 썬 파, 오이, 마늘도 나왔다. 오리고기를 밀전병에 싸 먹는 건 처음이라 그 맛이 궁금했다. 겉이 바싹하고 속이 촉촉한 오리는 나무랄 데가 없이 맛있었다. 함께한 일행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오리고기에 채소를 함께 싸 먹는 밀전병도 기대 이상으로 좋았다. 사실 처음에는 그 맛이 궁금하긴 했지만, 고기와 밀전병이 어울릴까 싶었다. 밀전병이 두꺼웠으면 맛이 떨어졌을 것 같은데, 종잇장처럼 얇아서 그런지 오리고기의 맛을 그대로 살려주면서 어우러졌다. 우리 쌈처럼 고기와 채소와 양념장이 어우러져 싸 먹는 맛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고기와 함께 밀전병을 먹을 수 있어 한 번에 탄수화물까지 해결되니까 영양적으로도 균형을 갖춘 조합이 아닐까 싶었다.


오리고기로 목이 메면 끓는 탕으로 해결할 수 있다. 잡내에 예민한 편이라 처음에는 조심스러웠는데 생각과 달리 아주 담백하고 시원했다. 고기와 함께 국물을 내는 게 신의 한 수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오랜만의 중국집에서 중국 음식을 먹는데 고량주 한잔을 빠뜨릴 수 없다. 식당을 찾는 중국인들이 많이 마신다는 고량주를 주문했다. 고량주 특유의 목구멍이 타는 듯한 짜릿함을 생각했는데. 뜻밖에 목 넘김이 부드럽다. 술을 잘못 골랐나 싶어 도수를 확인해보니 36도다. 이젠 중국 사람들도 도수 낮은 고량주를 마시는 모양이다.


북경 오리에 고량주까지 곁들여 먹고 나니 기분이 붕 하니 뜬다. 다문화 거리는 어디론가 분주히 오가는 사람들로 여전히 붐볐다. 배부르고, 기분까지 한껏 좋아져서 그런지 다문화 거리를 빠져나오는 발걸음이 마냥 가벼웠다. 처음 길을 트는 게 어렵지 한번 길을 트면 자주 오갈 수 있다. 다문화 거리를 빠져나오기도 전에 다음엔 어느 나라 음식을 먹어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으음?? 태국 음식을 먹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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