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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드산 Feb 10. 2024

양천향교

불과 7년밖에 되지 않았다. 그런데 양천향교에 대한 기억이 하얗게 지워졌는지 모르겠다. 서울식물원이 보고 싶어 시작한 강서구 여행에서 가볼 곳의 하나로 양천향교를 넣었다. 가볼 곳을 찾을 때부터 시작해 양천향교를 보고 난 다음까지도 예전에 왔었던 곳인지 까맣게 몰랐다. 오래전부터 여행한 곳은 지역별로 구분해서 기록해 놓고 있다.


양천향교를 다녀와서 여행지를 기록하려고 보니까, 이미 강서구 칸에 양천향교가 적혀 있었다. 그런데도 기억이 나지 않아 블로그까지 확인해 보니까 7년 전에 다녀왔다. 그런데도 기억이 하얗게 지워진 걸 보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양천향교가 보고 싶었던 모양이다. 


아침부터 추적추적 겨울비가 내렸다. 그 때문인지 양천향교는 쥐 죽은 듯이 고요했다. 들락거리는 사람이 없어 그야말로 적막강산이다. 사실 전국에 있는 많은 향교 중에서 몇 군데를 빼고는 대부분이 이렇다. 그렇다 보니까 향교는 여행의 목적지로 그다지 주목받지 못하는 게 사실이다. 


향교는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이지만, 어디를 가든 똑같은 모습이다. 이것이 향교만의 특색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그래서인지 사람들의 관심과 시선을 강하게 잡아끌지 못한다. 지금으로 치면 서원은 사립학교이고, 향교는 국공립학교다. 서원은 지역마다 저마다의 특색과 모습을 가지고 있지만, 향교는 표준설계도에 맞추어 지은 것처럼 어디나 같은 모습이다. 



향교의 공간 배치는 강학 공간과 제향 공간으로 나누어져 있다. 향교의 출입문인 외삼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가면 먼저 강학 공간이 나온다. 강학 공간에는 유생들의 학당이자 교실인 명륜당이 가운데에 있고, 그 앞에 좌우로 유생들의 숙소인 동, 서재가 있다.


강학 공간을 지나 내삼문을 지나면 공자를 비롯해 유가 성현들의 위패를 모셔놓은 대성전과 제수를 준비하는 전사청이 있다. 이렇게 같은 건물 구조와 색깔을 하고 있어 한두 번은 그런대로 괜찮은데,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더는 발걸음이 가지지 않는다. 역사에 관심이 맞아 우리의 문화유산을 많이 보러 다니는 여행자도 그런데 다른 이들은 오죽할까 싶다.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양천향교는 한번 가봐야 한다. 대한민국의 수도인 거대 도시 서울은 오랜 역사만큼이나 볼거리가 무궁무진하다. 그런 서울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향교가 양천향교이다. 조선 태종 때, 건립된 양천향교는 서울시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어 서울 사는 사람이나 서울 여행을 하려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들를 만한 의미와 가치가 있다. 


양천향교는 평지가 아니라, 해발 76m의 야트막한 궁산 자락에 있다. 궁산(宮山)은 양천향교에 공자를 모시고 있어 귀하고 중하다는 의미로 궁산이라 불렸다. 이걸 보면 궁산과 양천향교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궁산 자락에 있어 외삼문에 이르려면 계단을 올라야 하고, 강학 공간에서 제향 공간으로 가는 계단은 제법 가파르다. 이것이 양천향교의 특색이라면 특색이라고 말할 수 있다.



양천향교 입구에는 강서구청에서 건립한 유예당과 놀이마당이 있다. 이곳에서는 각종 문화행사와 함께 민속놀이 공연이 벌어진다고 한다. 양천향교에서는 백일장이 열리고, 교양강좌도 정기적으로 있다고 한다. 듣던 중 반가운 소리다. 이렇게 향교는 사람들과 친숙하게 어우러지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특별한 때를 빼고는 늘 문을 걸어 잠근 채 덩그러니 놓여 있는 향교가 많다. 그런 곳을 보면 조금은 아쉽고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우리의 문화유산이자 전통의 공간인 향교에서 사람들이 어우러지는 행사가 있으면 좋지 않을까 싶다. 사람들과 친숙해질수록 향교를 찾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늘어날 게 분명하다. 그로 인해 전통문화 공간인 향교는 활성화되고, 사람들은 전통 체험을 할 수 있어 서로에게 좋지 않을까 싶다. 


공간이 제한된 향교는 둘러보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날씨가 좋았으면 건물 마루에 앉아 잠시라도 고요한 향교 분위기에 빠져 보았을 텐데 그럴 수가 없었다. 아니 왔던 것처럼 발걸음의 흔적조차 남기지 않은 채 향교를 빠져나왔다. 왔던 길을 되짚어 돌아가면 그만인데, 나도 모르게 양천향교로 고개가 돌려지는 건 왜인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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