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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드산 Feb 19. 2024

해방촌의 야경이 서울을 정겹게 해준다

부산에서 태어나자마자 포대기에 싸여 서울로 왔다고 한다. 그렇게 서울에 와서 지금껏 살고 있으니까 분명 서울 토박이다. 예나 지금이나 클 대로 큰 서울에는 수많은 동네가 있다. 그렇기에 서울에 아무리 오래 살았다고 해도 이름은 들어봤어도 가보지 못한 동네가 수두룩하다. 대부분의 일상이 사는 지역과 직장이 있는 곳을 다람쥐 쳇바퀴 돌 듯이 살기 때문이다. 그밖에 모임이 있어 다른 지역을 간다고 해도 서울의 곳곳을 다 가지는 못한다.


용산구 해방촌이 그런 곳 중의 하나다. 많이 듣기는 했어도 그동안 딱히 갈 일이 없어 기회가 닿지 않았다. 요즘의 해방촌은 젊은 사람들에게 서울 핫플레이스 중의 한 곳으로 꼽힌다. 해방촌은 행정구역상 용산동 2가와 후암동 고지대 동네 일부를 지칭한다. 일제 강점기 때는 경성 호국 신사가 있었고, 일본군 사격장으로도 사용되었던 곳이라고 한다. 


해방되면서 월남한 실향민들이 집단으로 거주하면서 해방촌이라 불리게 되었다. 이태원이 사람들의 주목을 받으면서 해방촌에도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또 해방촌 맛집들이 인기를 얻으면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해방촌 카페의 루프톱에서 보는 아름다운 저녁노을과 서울야경은 해방촌의 멋진 경치로 널리 알려져 있다.


해방촌의 그 경치는 TV에도 여러 번 나왔다. 그 때문에 한번 가보고 싶었지만, 좀처럼 기회가 생기지 않았다. 그러던 차에 잘 아는 후배가 해방촌에서 찍은 사진을 SNS에 올렸다. 마침 그 친구를 포함해 정기적으로 만나 여행하는 이들과의 모임이 있어 해방촌을 가기로 했다. 

겨울 속에 섣불리 찾아온 봄날 같은 주말에 숙대입구역에서 모였다. 가보고 싶었던 곳이라 궁금증과 호기심이 커서 은근히 마음이 설렜다. 지하철역 바로 앞에 있는 버스 정류장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해방촌으로 출발했다. 해방촌으로 가는 즐거움은 작은 마을버스를 타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작고 귀엽게 생긴 마을버스는 평소에 거의 탈 일이 없다. 


사람들을 가득 태운 마을버스는 해방촌을 향해 힘차게 출발했지만, 머릿속은 타임머신을 탄 것처럼 시간을 거슬러 올라갔다. 그렇게 추억 속으로 달려간 마을버스는 6~7살 꼬맹이 때로 데려갔다. 


그 당시 60년대에는 마을버스보다 조금 더 작은 버스들이 있었다. 아침 출근 시간에는 버스는 작은 데 탈 사람이 많아 정류장에는 사람들이 늘 길게 줄을 섰다. 출근 시간인 아침에는 출근 준비를 하는 아버지를 위해 아이들이 미리 나와 대신 줄을 섰다.


그러다 아버지가 오시면 서 있던 자리를 내드리고 집으로 돌아갔다. 우리 집도 형제들이 돌아가면서 줄을 섰는데, 늘 서로 하려고 했다. 아버지가 오시면 언제나 동전을 손에 쥐어주셨기 때문이다. 그때 줄을 섰던 전농동 로터리의 버스 정류장과 사람들의 모습이 마치 현실처럼 머릿속에 생생하게 그려졌다. 


10분? 15분 정도 지났을까? 후배의 내리라는 소리에 서둘러 버스에서 내렸다. 어디가 어딘지는 모르지만, 차에서 내려 눈에 들어온 해방촌의 모습은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것처럼 보였다. 살짝 놀랍기도 했고 신기하기도 했지만, 금세 그 모습들이 정겹게 다가왔다. 


해방촌의 모습이 커다란 자물쇠로 잠가놓았던 기억의 창고를 열어젖혔다. 빈틈없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집들과 그 집들을 이어주는 늘어진 전깃줄 그리고 비좁은 골목 계단이 방금 기억의 창고에서 빠져나온 추억들과 딱 들어맞았다. 사진을 하는 어느 후배는 이 순간부터 해방촌의 매력에 푹 빠져 버렸다. 


해방촌은 지대가 높아서 골목길과 도로가 다 경사졌다. 버스를 내린 곳에서 얼마 가지 않아 108계단이 나왔다. 왜 108계단이지? 불교에서 말하는 중생의 108가지 번뇌를 말하는 건가? 아니면 계단 수가 108개 이어서 그런가? 계단은 마치 하늘로 들어가는 길처럼 가파르다. 그런 계단 가운데에는 생각지도 않았던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다. 엘리베이터는 TV 여행프로그램에서 보았던 외국의 푸니쿨라처럼 보였다. 

골목길 계단에 엘리베이터가 있는 게 신기하고 재밌어서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푸니쿨라를 타 보지는 못했지만, 영상에서 보았을 때의 느낌과 분위기가 그대로 느껴졌다. 엘리베이터 앞쪽으로는 비좁은 건물 끝에 파란 하늘이 걸렸고, 뒤쪽으로는 드넓게 펼쳐진 도시가 비좁은 골목 사이에 갇혔다. 운행 시간은 짧았지만, 시간에 상관없이 재미와 즐거움을 주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이리저리 해방촌을 걸었다. 먼저 다녀온 후배 덕분에 헤매지 않고 볼거리가 가득한 길을 걸었다. 경사길을 오르다 보면 지난날 삶의 흔적과 살아온 세월의 무게를 보여주는 건물들이 자연스럽게 옛 추억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해방촌의 경사진 도로가 눈과 마음을 잡아끌었다. 요즘은 일상에서 딱히 경사진 길을 오를 일이 거의 없다. 


어렸을 때, 큰고모 댁이 부산 초량이었다. 학창 시절 방학을 맞아 몇 번 큰고모 댁에 갔던 기억이 있다. 큰고모 댁으로 가는 동네 골목길은 이곳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가팔랐다. 어쩌다 눈이 내리거나 길이 얼면 동네 사람들이 모두 나와 집 앞에 쌓아두었던 연탄재를 부숴 길에 깔았다. 그래야 미끄러운 경사길을 그나마 안전하게 오갈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옛 추억을 떠올리며 걷다 보면 도로 바닥에 굵게 그어진 선들이 눈길을 끌었다. 처음에는 도로 공사를 하려고 아스팔트를 갈라놓았나 했는데, 그게 도로의 열선이라는 걸 금방 짐작할 수 있었다. 이런 시설이 없으면 눈이 오거나 빙판길이 되면 버스나 자동차가 경사진 도로를 다니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길바닥에 연탄재를 뿌렸던 옛 시절을 생각하면 세상이 좋아지긴 많이 좋아졌다. 


젊은이들의 핫플레이스답게 젊은 사람들이 많다. 친구나 연인끼리 호기심이 가득한 얼굴로 신기한 듯이 해방촌을 둘러본다. 해방촌에 있는 신흥시장은 젊은이들을 위한 먹거리 시장이다. 문을 연 시장의 음식점이나 카페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이런 공간들이 있어 젊은 사람들이 꾸준히 해방촌을 찾는 게 아닌가 싶다. 

요즘은 핸드폰 카메라가 좋아 언제 어느 때고 누구나 사진을 찍는다. 해방촌에는 추억을 떠올리며 셔터를 누르는 사람이 있고, 옛 시절의 느낌과 분위기를 즐기면서 사진을 찍는 이들도 있다. 


나 역시도 열심히 사진을 찍었지만, 평소와는 달랐다. 세로 사진은 은근히 찍기가 어려워 주로 가로 사진을 많이 찍는다. 그런데 해방촌에서는 모든 게 하늘로 치솟아 있어 어쩔 수 없이 세로 사진을 많이 찍었다. 


해방촌의 아름다운 노을 경치는 이미 많이 알려졌다. 그 멋진 경치를 보려고 일행들과 전망 좋은 루프톱 카페를 찾았다. 운이 좋았던지 찾아간 곳은 루프톱이 아주 넓었다. 


무엇보다 겨울 속에 찾아온 봄날이라 루프톱에서 전망을 즐기기에 아주 그만이었다. 그런 데다 루프톱에 투명하게 만든 실내 공간의 돔이 있어 일행들과 오붓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일행들과 이야기꽃을 피우면서 노을이 지기를 기다렸다. 그렇지만 세상일이 한 번에 다 좋을 수만 없다. 오후까지도 맑고 파랬던 하늘이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하면서 흐려졌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짙은 회색 구름이 하늘을 뒤덮었다. 비가 내릴 것 같지는 않았지만, 잔뜩 기대했던 노을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실망할 건 없었다. 노을이 없는 대신에 어둠이 짙어지면서 도시의 불들이 하나둘 켜지기 시작했다.


한번 밀려들기 시작한 어둠은 순식간에 거대한 서울을 어둠 속에 가두었다. 그 짙은 어둠을 헤치고 켜진 불들이 해방촌의 아름다운 야경을 만들어 냈다. 어둠 속에 숨어버린 건물에서 환하게 들어온 불은 크리스마스트리를 장식한 꼬마전구처럼 예뻤다. 해방촌의 야경을 보면서 정확히 언제 갔는지는 기억에 없지만, 어느 여름밤 남산에서 보았던 서울야경이 또렷하게 떠올랐다. 

같은 서울 하늘 아래의 야경인데, 남산에서 보았던 야경과 해방촌에서 보는 야경의 느낌이 다르게 느껴졌다. 같은 서울야경인데 뭐가 다르냐고 하겠지만, 분명 같은 듯 다른 느낌이었다. 


남산의 야경이 웅장하고 화려하다면, 해방촌에서 보는 야경은 왠지 모르게 서정적으로 보였다. 그래서인지 보는 내내 마음이 편안하고 차분했다. 


해방촌의 아름다운 야경을 보고 있으면 젊은 사람들이 왜 해방촌을 좋아하는지 알 것 같았다. 세월에 찌들어 감성이 메말라 버린 사람도 이런데, 열정과 감성이 풍부한 젊은 사람들이야 오죽할까. 


도시의 야경에서 잠시 눈을 떼고 몸을 돌리면 불 밝힌 남산타워가 손에 잡힐 듯이 가까이 있다. 그렇게 오랜 세월이 흘렀어도 남산타워의 날카로운 위용은 여전했다. 요즘은 N타워라고 하지만 남산타워가 입에 붙어서 쉽게 바뀌지 않는다. 남산타워는 해방촌에서 보는 서울야경에 방점을 찍었다. 시끌벅적하게 정신 없이 돌아가던 거대한 도시가 어둠의 침묵 속으로 가라앉는다. 오늘따라 왠지 모르게 서울이 정겹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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