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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과 약은 약국에서 받지 않는다. 처방전을 받아 약국에 들르는 부담 없이 병원에서 진료가 끝난 뒤 수납하면서 바로 약을 받아서 갈 수 있다.*
첫 방문에 약까지 받게 될 줄은 몰랐는데, 병원을 나올 때 내 손에 쥐어진 약봉지에는 2주 치의 항우울제와 항불안제가 들려 있었다. 받는 과정도 생소했지만 평소 신체 건강했던 내가 2주나 연속해서 투약할 일은 잘 없었기에 그 부피감도 상당하게 느껴졌다. 마치 순식간에 중환자가 된 기분이었다.
익사할 것만 같은 느낌,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은 느낌, 소스라치며 잠을 깨는 등의 증상으로 일상이 무너지고 있었기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용감하게 난생처음 정신과에 방문을 감행하긴 했지만, 그 이후에 대해서는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꾸준히 치료하겠다는 생각보다는 당장 지금 내 상태가 어떤지 솔직하게 터놓을 곳이 필요했던 것이리라.
배가 아파 내과에 방문했다거나, 목이 아파 이비인후과에 방문한 직후였다면 받은 약의 효과를 한시라도 빨리 보기 위해 일부러 밥을 잘 챙겨 먹고 얼른 약을 삼켰을 텐데, 정신과에서 받은 약이라는 이유만으로 다음 한 끼, 그다음 한 끼를 먹을 때까지도 좀처럼 약봉지를 열고 싶지가 않았다.
이튿날, 오랜만에 만난 대학 친구들과의 오붓한 술자리에서 최근에 겪은 일들을 털어놨다. 지옥 같은 내 마음과는 달리 날씨는 화창하고 끝내줘서 야장에서 막창과 소주를 한 잔 기울였었다. 많이 힘들었겠다는 위로 끝에 맞은편에 앉은 친구의 한마디, "근데 그 약, 웬만하면 먹지 마."
무슨 뜻으로 한 말이었을까? 망설이는 내 마음에 동조해주고 싶었던 의도였을까? 오래 먹어야 한다더라, 끊기 힘들다더라 등 수많은 카더라를 기반으로 한 걱정이었을까? 그런데 내 마음 한구석에서는 왠지 서운함이 뭉게뭉게 피어났다. 그 친구가 내 힘듦을 오롯이 이해해주지 못하는 것 같아서였다. 복잡한 마음이었다. 아마 나는 "힘들면 먹어, 니가 살아야지"라는 답을 바라고 있었나 보다.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나 자신에게 얘기해 주고 싶다. "그냥 먹어, 니가 죽겠는데 뭐가 대수야?" 끊을 때가 되면 다 끊는다. 그리고 약 없이도 사계절을 오롯이 나고, 심지어 평생 그 약 다신 안 먹고 살 수도 있을 것 같은, 더 단단해지는 네가 되는 그런 순간까지도, 반드시 온다고.
* 정신과는 의약분업 예외 과로, 병원 내 조제가 가능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