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사랑과 함께하는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삶
지금의 나는 한국에서 살 때와는 다른 시공간에 존재하는 느낌이다. 단순히 환경이 한국에서 호주로 변한 것뿐인데 시간의 흐름부터 살아가는 방식이 완전히 달라졌고, 만나서 소통하는 사람들이 다르니 그 아우라에 조금씩 녹아드는 느낌이다. 온 지 얼마 안 되었을 때는, 좋은 쪽으로든 안 좋은 쪽으로든 어떤 게 변했는지 인지하고 있었는데 이제는 뭐가 어떻게 달라졌는지 일일이 생각하며 이야기하기가 어려워졌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일 년 전, 이 시리즈를 연재하기 전과 비교해서도 완전히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다.
이번주 내내 아가가 아팠고 어느 날에는 경기(Seizure)를 해서 응급차를 불러 급히 응급실에 다녀오기도 했다. 다행히 우리는 의료파업이 없는 도시국가에 살고 있기에 적절한 조치를 취할 수 있었고 마음을 놓을 수 있었지만, 그렇지 못한 나라에 살고 있는 아가와 그 가족들의 심정은 어떠할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속해서 일하는 국제협력기관에서는 전 세계의 가장 도움이 필요한 국가들에서 60개가 넘는 지역개발사업을 하고, 분쟁지역에서는 긴급 구호도 진행하는데 그들에게는 삶과 죽음이 아주 맞닿아 있다는 것을 매일같이 접하기 때문이다. 국제사회에서 관심받지 못하는 수많은 이들을 어떻게든 조금이나마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으려고 애쓰는 이들과 하루하루를 함께하면서 나는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것이 당연하지 않다는 것을 매일 상기하며 살아가게 되었다.
그리고 그들을 생각하는 만큼 나의 가족에게도 충실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아가가 아파서 이번주는 쭉 쉬어야 할 것 같다는 민폐에도 "걱정하지 말고 다 쉬어, 넌 가족을 우선으로 둬야 해 (Don't worry about it at all, You should put family first)"하고 이야기해 주는 팀이 있었다. 그간 거쳐간 크고 작은 팀을 넘어 내게 찐사랑이자 첫사랑인 팀, 그들은 그저 일로 만난 사이 이상의 위안과 힘을 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들의 배려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했다. 아무리 상황이 이렇다한들 내 일을 하나도 돌보지 않고 일을 쉴 수 있는 성격이 못 되므로 남편과 연달아 휴가를 쓰면서 하루 안에 내가 해야 할 모든 중대한 일들을 다 처리해 놓았다.
그렇지만 그 배려 덕택에 마음 편히 쉬면서 아가의 회복에만 집중했다. 다른 생각 없이 아가에게 순도 100%로 집중한 것이 얼마만이었는지, 그게 너무 오랜만이라 미안했지만 또 너무 많이 행복했다. 아가를 낳고 길러보지 않은 사람에게는 설명할 길이 없는 감정이었고 시대를 역행하는 가치, 사랑과 희생과 내리사랑 같은 걸 말하지 않을 수 없어졌다. 그러나 나는 기꺼이 포기한 것들에 미련 없이 행복할 뿐, 여전히 나의 발전과 행복을 늘 염두에 두고 있는 사람이다. 어느 정도 타협은 할 줄 알게 되었지만.
그리고 이번 계기로 나의 세계가 얼마나 바뀌었는지 다시금 깨달을 수 있었다.
첫째로, 내 첫사랑인 아가와 함께 지내면서 나는 어려졌다. 이제 22개월에 들어선 아가 덕분에 나는 매일같이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가는 느낌이다. 같이 색칠공부 (요즘은 컬러링북이라고 하지만 우리 땐 색칠공부였음)를 하고, 과장된 말투와 몸짓으로 동화책을 읽고, 찰흙놀이 (요즘엔 플레이 도우라고 하는데... 이것 역시 라테는 찰흙이었음)를 하면서 엄마와 아빠, 동생들과 놀던 기억들이 자주 내 의식에 스쳐간다. 오래전에 무의식 저편에 봉인되어 다시는 꺼내볼 일이 없을 줄 알았던 다정한 기억들이 하나둘씩 떠오를 때마다 나는 추억에 젖고 아가에게 고마운 마음이 든다. 어느 순간부터는 직함이라는 타이틀이 마치 나인 것처럼 경직되어 있었고 늘 꼿꼿하게 자존심 세우며 살던 삼십 대의 내가 아가와 놀면서 사랑받았던 기억들을 이렇게나 많이 떠올리게 되는 것은 누가 뭐래도 삶에서 아가와 함께하는 시간이 큰 행복인 탓이다.
둘째로, 다른 사람의 생각을 계속 반추해 보게 되었다. 결혼을 하고 이중언어를 쓰며 아가를 키워보니, 지금까지 해오던 것과는 수준이 다른 소통을 요구했다. 그동안 나는 커뮤니케이션을 잘하는 것이 나의 장점인 줄 알았는데... 단순히 나의 주장을 확실히 이야기하는 것이 다가 아니었다. 특히 이중언어를 섞어서 쓰는 우리 가정의 특성상 이야기를 듣는 이의 상황과 마음상태, 그리고 그 사람이 겪어온 일과와 최근의 일련의 사건들로 인한 마음의 상태 등등을 반영해서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어김없이 소통의 실패가 찾아왔다. 효율적으로 말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말하는 방식과 배려, 그리고 다정함이었다. 마치 내가 잘하는 것처럼 썼으나 나는 매번 실패하는 사람이며 그 와중에 우리 가족 간의 소통이 정말 잘 되었다고 느낀 시점은 이 모든 것을 고려하고 에너지를 써서 이야기를 했을 때였던 것이다.
이 모든 걸 다 고려해서 이야기를 해도 아직 안 통하는 아가에게 이야기를 하려면 다정함과 인내심은 필수인데, 그중 하나라도 놓치고 무성의하게 대하는 순간 소통의 실패가 찾아온다. 예를 들어 밥 먹기와 손톱 깎기, 세수하기의 과제가 있다면 일단 가장 중요한 밥을 먼저 먹이고, 가장 쉬운 세수하기를 먼저 한 뒤, 가장 고난도인 손톱깎이를 가장 나중에 해야 손톱 깎느라 울고불고해서 밥을 안 먹을 확률이 적어진다. 그 사이사이에는 아무리 힘들어도 이를 악물고 다정한 목소리톤을 유지하며 소중하게 대해주어야 한다. 엄마 목소리의 톤이 바뀌는 순간 아가는 바로 알아차릴 것이다....
셋째로, 다른 이들과 나를 비교하지 않게 되었다. 얼마 전 읽기 시작한 <Atlas of the heart>* 에서는 인간의 본성이 다른 이들과 나를 비교하는 것이며 무의식 중에도 그러한다고 하던데, 무의식 중에 하는 비교까지는 모르겠고 의식적으로는 비교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아무도 나와 그들을 비교하지 않는 사회에서는 그런 비교 마인드를 갖는 것 자체가 지질하고 그래서는 말이 안 통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고 어차피 나는 쩌리인데 비교해서 무엇하랴? 조금 이상하게 들릴 수 있지만, 내가 어차피 완벽의 경지에 이를 수 없다는 것을 받아들이면서 이곳에서 한껏 자유롭게 지내고 있다. 이곳에서 친근한 이방인으로 살면서 오히려 이 비교와 경쟁에서 자유로워졌달까? 어차피 나는 쩌리라는 생각을 깔고 살아가기 때문에 과거의 나와 오늘의 나만 비교하면 되는 거였다. 느리더라도 매일 조금씩 성장하는 나를 바라보고 지켜봐 주는 것이 얼마나 큰 성취감을 주는지, 그리고 경쟁과 비교에서 벗어나니 아는 것을 공유하고 새로운 걸 시도할 에너지가 생겼다. 이때까지 나는 주로 내가 속한 집단에서 다른 이들의 장점과 하이라이트들을 보며 나 자신과 비교 왔고 왔고, 그걸로 나를 채찍질하며 자존감을 낮춰왔던 것 같다. 너무 우울한 얘기지만 나는 정말로 그런 경쟁의식과 인정욕구가 주는 성취와 결핍이 뒤섞인 에너지에 휩싸여있었다. 그래서 비교하지 않게 된 다음부터는 이전에는 상상도 못 했던 감정과 에너지를 느끼며 살아가고 있는데 이런 게 바로 문화에 스며드는 것인가 생각했다. 그 문화를 이루고 겪는 사람들의 경험은 지극히 개인적이겠지만.
마지막으로는, 너무 애쓰면서 안간힘을 다해서 살아가지 않게 되었다. 이곳에서 일하고 공부하며 만난 친구들에게 노상 내 불안과 불완전함을 고백하면 하는 말은 '넌 지금 최선을 다하고 있잖아, 쉬엄쉬엄해 (You are doing your best, that's all you can do it. Take it easy)'인데 나는 한국인으로서의 최선을 내려놓고 지속 가능성에 방향을 맞추면서 살아가기로 했다. 이 친구들 기준의 최선을 완전히 이해하는 것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된 것은 오래도록 최선을 다하기 위해서 순간순간에 너무 힘을 주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 여유와 미소를 잃지 않고 너무 전전긍긍하지 않는 기운이 포인트다. 그들에겐 매번 힘을 줄 수 없으니 완급 조절을 잘하면서 롱런하기 위한 전략이지만 내게는 웬만큼 최선을 다해도 잘해봤자 보통에 이르기 때문에 너무 애쓰지 말고 힘을 좀 빼자는 마음도 섞여있다. 물론, 어느 정도 이곳에서의 삶이 안정에 접어들었기에 할 수 있는 말일 수도 있겠지만, 가끔씩 큰 거 한방을 하기 위한 에너지를 비축하는 느낌으로 살아간다. 어차피 쭉 열심히 해야 하는 거면 오늘 하루만 살고 내일은 없는 사람처럼 하는 게 아니라 내일도 모레도 있다는 걸 염두에 두고 지속가능한 경주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자꾸 내가 이방인이라고 스스로 언급하는 것은 그만큼 그 아웃사이더로서의 성질을 애정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한 사회에서 주류로 살지 않고 마이너리티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은 독특한 시각과 나만의 캐릭터를 선물처럼 빚어주는 것 같다. 한국에서 나고 자란 한국인으로서 호주인들이 주류인 집단에서 생활할 때, 그리고 다양한 세계에서 온 친구들과 함께 생활하던 농장 시절, 그리고 여기서 나고 자란 친구들 사이에서 생활할 때... 그 모든 집단에서 나는 다른 형태의 이방인이라는 걸 여기서 지내면서 알았다. 각각의 집단에서 내가 보이는 모습들이 어떤지 이해하고 그에 맞게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는 중이기도 하다.
그러면서 더욱더 이곳에 적응하고 어떤 면으로는 스며들겠지만, 무조건 적응하고 동화되는 것이 아니라 어느 순간부터 내 정체성을 더 지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내외적으로 더 이상 닉네임을 쓰지 않고 본명을 다시 쓰겠다는 결정을 하기까지 오래 걸렸는데 그건 나고 자라면서 형성된 나의 정체성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한 상징 같은 것이다.
내 기준에서 다른 문화에 적응하는 것은 한국인으로 살며 쌓아온 정체성을 지키면서도 타지에서 받은 영향이 조화롭게 어우러질 때 서서히 찾아올 것이다. 특히 좋은 영향에 더욱 집중할 수 있는 마음의 근육이 단단히 생겨서 부정적인 것들을 다 쳐낼 수 있을 만큼, 지금까지 겪은 그 모든 것들이 어우러져 더 나은 버전의 내가 되었을 때 비로소 안정과 적응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어찌 보면 최근 <파친코> 같은 '디아스포라' 콘텐츠들이 집중하는 역사와 환경의 영향을 받아 변화한 수동적인 개인이 아니라 스스로가 좀 더 능동적으로 나의 삶을 사는 주도적인 이방인이 되도록 하루하루 살아가면 좋겠다.
이 시리즈를 연재하기 시작한 지 약 일 년이 되었다. 제목을 <마음을 여는만큼만 열리는 세계>로 지은 것은 내가 아주 열린 사람이 아니라 사실은 나의 세계가 단단하고 높은 자아라는 벽에 둘러싸여 좁았다는 것이겠지. 이제 다음 시리즈에서는 해외생활 적응기 두 번째 버전으로, 이 새로운 세계에서 어떻게 나의 정체성을 지키며 살아가지 다뤄보려고 한다!
그동안 이 시리즈를 읽어주신 분들께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전합니다.
*TED에서 강연도 한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작가인 브루네 브라운(Brune Brown)의 저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