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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사리 Mar 04. 2024

우리가 언제까지나 그리워할 것들

이 곳에서 자리를 잡으면 잡을 수록, 뿌리를 내리면 내릴 수록

기분 좋게 일을 마친 평일 오후에 약간은 바쁜 걸음으로 집 앞에 위치한 데이케어에 들어선다. 그리고 동시에 지금 이 순간 세상에서 가장 급한 일이 있다는 듯 한걸음에 뛰어와 안기는 작은 몸집. 이 작은 아기가 내게 주는 이 강렬하고 큰 사랑에 몸 둘 바를 모르겠다. 퇴근한 남편과 함께 어머님이 정성 들여서 해주신 맛있는 밥을 먹고 세 가족이 함께 아기 방에 들어가서 가지는 베드타임, 그 삼십 분에서 한 시간 남짓한 시간이 매일 너무나 소중하다. 이 시간을 붙잡아 두고 싶은데 그럴 수 없어서 동영상을 찍어두고 자꾸만 기억을 남긴다. 이 순간을 단 하나도 잊지 않고 가져가고 싶다.


금요일 저녁부터 시작되는 우리 가족의 시간. 가족 중심적인 문화의 호주에서 주말은 온전히 가족의 시간이으로 존중받는다. 우리가 '둘'일 때를 지나 '셋'이 되면서 우리의 활동 반경이 조금 더 좁혀졌더라도 여전히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우리들의 세계. 그 누구도 들어올 틈이 없을 만큼 알차고 견고 고하면서 따듯한 그런... 세계가 있다.


그야말로 살면서 이렇게 행복한 적이 있었을까, 질문하게 하는 가장 행복에 가까운 상태이다. 그렇지만 그 어디에도 100% 만족하고 행복하기만 한 낙원은 없는지 늘 마음속 어디엔가 약간의 불안과 불만족, 그리고 아쉬움과 그리움을 지니고 살아가는 것이 사람 사는 것인가 보다.






이곳 시드니에 온 뒤로 친구들이 두 번, 가족들이 두 번 각각 다녀갔다. 처음 나를 방문한 건 고등학교 친구 양유 부부. 그때 아가를 낳은 지 2개월이 갓 넘은 시점이라 외출 자체가 제한적이었다. 그래서 친구 부부를 만나러 나가는 순간이 얼마나 설레고 약간은 긴장됐었는지 모른다. 예전에 살던 서리힐즈 근처에 있는 카페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하필 비가 와서 뉴본(New Born) 아가를 데리고 집 밖에 나와 카시트에 넣고 또 꺼내서 프램에 태우고 이동하는 모든 것이 흡사 007 작전을 떠올리게 했다. ㅋㅋ


친구 부부와 소중한 시간들을 보내며 그들의 여행에 함께 녹아들었는데 그 여행에서 그들과 마음을 열고 하는 이야기들이 너무나 소중했다. 여기서 나를 알게 된 지 얼마 안 된 사람들은 모르는 나의 앳되고 미성숙한 모습도, 그리고 지금보다 더욱 에너지 넘치고 시원시원했던 시절의 나를 기억해 주는 친구와 친구의 소울메이트가 전해준 에너지가 그때의 내게 얼마나 큰 힘이 되었었는지 모른다. 나만을 필요로 하는 아가와 24시간 붙어지내는 삶을 살던 그 시절의 나는 엄마, 그리고 아내, 며느리이기만 했었는데 그들이 있어 나 자신으로 다시 우뚝 서게 된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다음엔 나의 분신 급인 여동생 (이 브런치북의 모든 일러스트를 그린 @Studiomyomi)이 일주일 만에 티켓을 끊고 날아왔다. 이모를 보자마자 낯설어하기는커녕 살인미소를 날려주던 뽀시래기 아가와 여동생을 차에 태우고 그전부터 가고 싶었던 카페에 갔다. 내 취향은 곧 동생의 취향이기에, 우리는 그 어떤 곳들도 거침없이 다니고 즐겼고 또 약간은 다른 취향들도 공유하며 서로의 취향을 다듬어주었다. 동생이 가져온 옷들은 자연스럽게 내 옷장으로 들어가기도 하고, 내가 아끼던 아이템들도 동생한테 더 잘 어울리면 아낌없이 동생의 캐리어 속으로 쏙 들어갔다.


그리고 몇 박 며칠을 방 두 개짜리 작은 플랫에서 동생과 아가와 남편과 함께 먹고 자고 뒹굴거렸다. 오랜만에 동생과 내가 좋아하던 음악을 틀어놓고 새벽녘까지 들으며 수다를 떨고 동생은 그림을 그렸다. 내가 추천했지만 동생이 아직 못 봤던 영화 <Everything Everywhere All At Once>를 틀어놓고 나와 남편의 최애 아이스크림을 퍼먹으며, 남편이 만들어주는 흑맥주에 칩스도 먹으며 우리가 같이 살던 때로 다시 돌아간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이곳에서 안정과 행복을 찾으면 찾을수록 나는 이들과의 시간들을 더욱더 그리워하게 될 것이라는 걸.


동생이 갑자기 사진 한장을 찍더니


쓱쓱 그려준 그림, 우리 가족이 생각나서 그렸다고. ©Studiomyomi


잠시 이전으로 돌아가 그 세계에 점입가경으로 빠져들었다가 이별이 다가오면 다시 뚜벅뚜벅 걸어나와야만 했다. 아직 이별에 익숙하지 않던 나는 그 모든것에 너무나 무방비했다. 양유 부부와 헤어지며 포옹하는데 눈물이 나고 울컥했던 경험, 그리고 아무런 대비도 없이 동생을 공항에 데려다주고 뒤돌아 나오는데 목이 메어서 그 감정을 다스리려고 혼났다. 이 감정은 나도 예상치 못한 것이어서 남편에게도 그리고 이곳에서 만난 지인들에게도 설명이 안 되었다. 겪어보지 않으면 상상하기 힘든 층위의 여러 혼합된 감정들이 올라왔고 그걸 소화하는 것은 온전히 내 몫이였다. 호주에 나와 살기로 결정한 주체가 나 자신이듯이 이 감정을 다스리고 나를 보살피는 주체 또한 나여야만 한다. 앞으로 겪게 될 수 많은 이별의 과정에서 늘 슬퍼하고 우울함에 빠져있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바로 올라왔다! 그건 이별 초보인 나의 생존본능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이 허전함과 일시적인 상실감을 인정하고 바라봐주되, 자기 연민에 빠지거나 이 감정에 끌려다니지는 말아야했다. 그러지 않으면 지금까지 주체적으로 결정하고 독립적으로 선택해온 내 삶과 지금 우리 가족의 세계를 통째로 부정하는 것 같았다.


그래서 그 다음의 이별을 위해서는 마음의 준비를 단단히 하기 시작했다. 그 다음타자가 대망의 부모님이었기 때문이다. 손자가 태어나고 처음 다녀가신 부모님과의 이주를 누구보다 잘 보냈으며 계속해서 이별의 순간을 미리 대비했다. '엄마 절대 울면 안돼' '아빠도 절대 울면 안돼요' 하면서 유머로 승화하기를 며칠째 반복하자 우리는 이별의 순간이 개그 꽁트처럼 느껴지는 경지에 이르렀다. 부모님은 어떠셨는지 모르지만 아주 쿨하게 들어가신 걸로 봐서는 우리 모두 생각보다는 유쾌하게 헤어질 수 있었던 것 같아 다행이었다.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들을 보내고 이곳에 또 내가 사랑하는 우리 가족과 함께 남게되었다.


내가 언제까지고 그리워할 것은 자매들의 시간, 아무리 생각해도 참 좋았다라고밖에 회상할 수 없는 몇 년간 치열한 이십 대를 함께 보냈던 그 중곡동에서 반려묘 깐느와 함께 한 추억들이다. 그리고 이십 대를 건너오며 만난 내가 '야!' 하면 '예'하는(I say 'Ya!' you say 'yeah!')' 사람들과의 케미스트리는 그 어디서도 못 만날 것 같다.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취향과 관심사와 가치관이 맞는 소규모의 사람들로만 자연스럽게 좁혀진 나의 가까운 지인들. 그리고 화려하지만 실상은 우리의 영혼을 갈아서 일하던 업계에서 만난 선배와 동료들은 그야말로 전우라서 몇 년 만에 만나도 방 한편 내어주고 재워줄 사람들이다. 같이 공부하고 그 시절 우리의 불안과 고민을 나누며 성장했던 사람들과 민낯의 십 대를 함께 보낸 사람들까지.  


내가 동경하고 존경하던 사람들, 그들이 있어서 척박하고 꿈 많던 이십 대를 건너왔다. 


아무리 시절인연이라는 말이 있다지만 그들은 내 안에 고스란히 남아서 나의 가치관과 언행에 아직도 많은 영향을 미친다. 이곳에서 나를 변화하게 하는 사람들을 만나며 새로운 경험을 하고 다양한 취향에 노출되면서도, 여전히 내게 '고양이와 기타' 하면 떠오르는 사람은 하나이고 ‘영화인’하면 생각나는 사람도, 취향 좋은 사람을 이야기할 때 떠오르는 사람도 ‘강원도의 순수한 감성을 그대로 담은' 딱 한 사람이다. 언제나 곧은 자세와 반짝반짝한 에너지를 가진 그리고 언제나 도전할 수 있는 아이 같은 용감함을 가진 사람까지... 모두들 내겐 대체 불가능한 존재들이다. 아무리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도 그들은 대체될 수 없고 오히려 그들과 어딘가 닮은 면이 있는 사람들을 새로 만나면 좋아하게 되겠지. 그렇게 이곳에 와서 지내면서도 늘 잊지 않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솔직히 가끔씩은 그들이 그립다. 가끔씩 순도 100%의 대화를 나의 언어로 아무런 필터 없이 하던 시절이 그리운 것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슬프거나 그리운 감정에 한없이 빠져들지는 않는다. 왜냐면 더 이상 우리가 만나지 않아도 닿을 수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더 이상 예전처럼 시간을 함께 보내지는 못하더라도 우리가 함께한 그 시간들은 언제라도 꺼내볼 수 있는 소중한 추억으로 방울방울 저장되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 사람들이, 그리고 그들과 함께한 시간들이 나의 자부심이 되어 내 마음 한편에 자리 잡고 있다. 그래서 내가 그러하듯이 어디선가 나를 그리워할 사람들 또한 그 소중한 추억들을 잘 저장해 두었다가 한 번씩 꺼내서 만져볼 수 있으면 좋겠다.


지난 주말에도 회사에서 만난 너무 좋아하는 동료이자 친구인 서녕이네 부부가 시드니에 와서 함께 시간을 보냈다. 내가 애정하던 따듯한 웃음과 건강한 에너지를 그대로 간직한 그녀가 소울메이트를 만나 서로가 서로에게 더욱더 사랑스러운 빛을 불어넣어 준 것 같았다. 우리가 다른 곳에 떨어져 있으면서도 서로를 너무너무 좋아하는 친구로 기억하고 추억하며 서로의 솔메이트에게 이야기해 왔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는 설명할 수 없는 감정이 들었다. 그럭저럭 친근한 이방인의 존재로 살면서 이리저리 잘 흔들리기도 하고 꽤 자주 치이기도 했던 나를 꽉 채워주고 한없이 따듯하게 바라봐주는 오랜 친구의 우정과 애정을 느꼈다.


©Studiomyomi, 존재만으로 위안이 되는 (2023)




그리고 그 자리에 남편과 아가가 함께 있었기 때문에 나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이어진다. 지금까지 내 오랜 친구들과 동생들이 시드니에 와서 남편과 함께 시간을 보내면서 나와 그가 서로 알지 못하는 존재로 살아온 시간들에 생생한 숨을 불어넣어 주었기 때문이다. 그 시절의 내가 지금의 남편을 만나기 위해 준비되고 만들어지고 있었다고, 그리고 우리는 모두 그 시절을 잘 건너왔다고 말하는 것처럼 :)






물론 여기서도 좋은 친구들을 만났고 그들과의 인연은 다른 의미로 감사하다. 내 언어가 완벽하지 않은 상황에서 서로 다른 문화권에 속해있는데도 쌓여온 우정과 신뢰여서 너무나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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