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느리고 긴 이별을 하는 중입니다.
아가가 크면서 발도 커져서 이제는 못 신게 된 작은 신발들이 몇 켤레가 있다. 난 그 신발들만 보면 이상하게 콧잔등이 짠해지고 눈이 뜨거워진다. 이렇게 작고 예쁜 아가가 나의 껌딱지로 내게 와주어서 지금 이 순간이 너무 행복한데, 그게 유통기한이 있는걸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너는 정녕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손님이었구나 하면서 추억하는 어느 날에 보려고 동영상을 그렇게 많이 찍어두는데도 시간이 가는 게 너무너무 아쉽다. 내게로 달려와 안기는 작고 보드라운 아가의 촉감과 아무것도 아닌 일에도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웃어주는 그 모습은 붙잡아둘 수 있는 게 아니라서.
어느 날, 누군가 보내주었던 콘텐츠를 보고 울었다.
(출처: 인스타그램 릴즈 @thrilledfoodie)
나 또한 이 순수한 눈과 말을 못 해도 눈빛으로 사랑한다고 이야기해 주는 작은 존재를 평생 그리워하게 될 거라는 걸 알고 있다. 언젠가 나를 떠나 다른 곳으로 가더라도 평생 그리워하며 내 모든 걸 주어도 행복할 그런 존재가 생기는 사건이 내 삶에도 일어난 것이다. 온통 관심을 내부로 돌리던 자기애적인 사랑을 넘어 둘 사이의 세계를 이루는 사랑을 알게 되고, 이제는 그 사랑이 아래로 흐르기 시작한 것이다.
아들을 낳고 함께 가족이 되어 살아가기 시작한 지 약 1년 3개월, 그동안 내 세상은 몇 번을 돌고 돌아 서서히 엄마라는 존재가 되었다. 나의 세상이 계속해서 변하는 동안 우리 가족은 수많은 한계와 부족함을 마주해 왔다. 일단 늘 잠이 부족했고, 체력과 반비례해서 다정함과 넉넉한 마음이 줄어들었다. 나만의 것을 창작하거나 기록할 물리적 시간과 이 모든 걸 생각하고 실행에 옮길 정신적 여유까지, 모든 것이 궁핍했다. 대체로 웬만하면 무언가 하나쯤은 필히 부족한 상태로 살면서 때때로 채워지기도 했으나 또다시 무언가가 동이 났다. 게다가 호주에서 이방인으로 살며 가끔씩 뜻하지 않게 찾아오는 재정적 부담까지 (아직 무엇이 더 찾아올 것이고 무엇을 계획하고 있어야 하는지 전반적 그림이 안 그려지는 이민 5년 차) 더하면 참 쉴 새 없이 부족함과 엮이느라 바빴다.
오늘의 수면부족을 딛고도 나는 여전히 아가를 사랑하기 때문에 깨끗한 옷을 입히고 몇 가지 과일과 요구르트, 그리고 유산균을 먹인 뒤 직접 아가를 데이케어에 데려다준다. 아직 졸음이 밀려오고 나는 제대로 옷도 못 갖춰 입은 경우가 흔하지만 아가를 데이케어에 맡기고 돌아오는 동안 호주의 빨래 잘 마르는 따듯한 볕과 풀내음 가득한 아침 공기를 30분가량 즐길 수 있음에 감사하는 것이다. 집에 들어와서 아이폰으로 회사 메신저를 확인하며 캄포스 커피를 한잔 내려서 잠깐의 여유를 가질 수도 있는 재택근무의 행복과 약간의 사치를 더욱더 감사하게 된다. 일하며 그것도 해외에서 이제 막 토들러가 된 아가를 키우는 삶은 비록 어느 하루도 쉽고 편안하게 흘러간 것 같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루틴이 잡히고 난 뒤로는 행복한 허슬(Hustle)에 가까운 것 같다.
엄마가 되고 난 뒤 지금껏 당연하던 모든 것에 어느 하나 당연한 것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가가 잠에서 깨어나 집 안을 걸어 다니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아가는 위험에 놓인다. 아무리 위험한 것들을 다 정리했다고 해도 아가가 크면 클수록 위험한 것들의 난이도도 올라가기 때문에 한시름 놨다가도 또다시 긴장하며 따라다니게 된다. 하다못해 그런 게 있는지도 잊고 살았던 물건들을 어디 구석에서 꺼내와서 어른들을 놀라게 만들기가 일쑤일 정도로 우리들 눈에는 위험한 게 아니더라도 아가한테는 모든 것이 사고의 가능성을 내재하고 있다. 그래서 나는 직접 지켜볼 수 없는 순간들에도 아가가 늘 안전하게 있어주기를 기도하기 시작했다. 여러 아이들과 어울리고 소통하며 선생님들의 케어를 받는 데이케어에서의 삶이나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하는 일상들이 하루하루 안전하게 흘러가기만 해도 감사할 것이 넘쳐나게 되는 것이다.
호주의 국제개발협력 기관에서 커리어를 새로 시작하게 되면서 가장 좋았던 점은 하루나 이틀만 집 근처 사무실에 나가면 되고 나머지는 집에서 근무하면서 '일하는 부모'로서 유연하게 시간을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내가 태어난 지 돌밖에 안 된 아가를 가진 엄마라는 걸 다 고려하고서 나를 채용했으니, 한 시간 일찍 일을 시작하고 한 시간 일찍 끝내거나 아니면 정해진 근무시간에 시간을 빼서 아가를 픽업하러 가야 하는 것들도 미리 말해두기만 하면 그 누구도 눈치를 주지 않고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정도로 그런 환경이 자리 잡혀있다. 누군가 내가 빠지면 일을 대신해야 하거나 일에 차질이 생겨서 팀에 지장을 주지 않도록, 이 모든 것을 고려해서 내 롤이 정해져 있었고 여기에 요구되는 일의 강도와 팀 내에서의 업무 분장이 이뤄져 있다.
이렇게 말하면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이곳에서 일하기 시작하면서 '내가 이렇게 살아가려고 호주에 왔구나'라고 매일같이 생각했다. 물론 나 혼자만의 결단이나 의지로 이루어나가고 있는 것도 아니며 이방인으로서의 삶에 수반되는 크고 작은 업 앤 다운은 어쩔 수 없이 따라오는 것이긴 하지만. 그래도 나의 가치를 알아봐 주는 매니저와 결이 맞는 팀원들을 만나서 매일매일이 배울 것 천지임에도 이곳에서 안전하다는 느낌과 내 자아를 실현하는 해방감을 느끼며 진정으로 ‘살아있다’. 일을 하면서 성장이 요구되더라도 계속 이런 방식으로 일하는 것이 지속가능한 환경에서는 계속해서 내 목표를 세우고 상의하며 수정해 나갈 수 있다. 일차적으로는 내 스킬 셋과 가지고 있는 경험이 이 롤에서 요구하는 것들과 맞아떨어져야겠지만, 정말로 나의 5년과 10년 뒤의 목표를 고려해서 내게 프로젝트를 준다는 것이 놀라웠다. 물론 그것이 회사의 니즈와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있어야겠지만. 지금 한 살 아가를 키우는 엄마로서 할 수 있는 것들과 할 수 없는 것들을 고려해서 당장의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내가 성장할 것을 염두에 두고 지속 가능한 장거리 레이스를 달릴 수 있게끔 나를 트레인 시켜준다는 것이 인상 깊었다. 일단은 사람이 귀한 나라이고 한번 사람을 뽑을 때 여러 가지를 다방면에서 심도 있게 고려하고 뽑기 때문에 자리가 나더라도 적격자가 없으면 계속 공석인 경우도 많은 것이다. 그래서 호주에선 네트워킹이 중요하다는 말이 괜히 나오는 것도 아닌 게 일단 어디에서든 시작해야만 하는데 그 시작하기가 어려운 것이었다 (궁금하시면 <어쩌다보니 해외에서 일하게 되었습니다>를 참고해주세용.)
아무튼, 이곳에서 돌잡이 엄마임을 다 밝히고도 일하기 시작하면서 회사 내에서 여러 엄마들과 교류하며 직장에서 일하는 엄마로 살아가는 건강한 마음들을 많이들 만났다. 나는 유럽식 육아도 한국식 육아도 잘 모르고 이제는 호주식 육아가 가장 친근한데, 가장 명확한 특징은 엄마가 죄인이 되지 않는 육아인 것 같다. 나와 비슷한 또래부터 중년의 엄마들까지 다양한 연령대의 호주 엄마들은 일터에서 프로페셔널했고 그러면서도 자녀들을 진심으로 케어하고 그걸 주변에 나눈다. 엄마들끼리 스몰톡은 당연히 아이들 얘기인 경우가 많지만, 싱글이거나 자녀가 없는 사람들도 미팅의 시작에 산뜻하게 '너희 아가 요즘 어때?'하고 물어준다. 잘 모르긴 몰라도 분명 누군가는 아가를 어느 나이까지는 엄마가 키워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나도 대학교 때 유아교육학 개론 시간이었나... 교수님이 다섯 살까지는 엄마가 키워야 아가와의 애착형성에 좋고 자아가 튼튼해진다며 강조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니까 말이다. 아가를 낳고 나서 알았다. 아가에 모든 포커스를 맞추고 식단이며 놀이며 집안 정리까지 다 챙기는 삶을 살기 위해 얼마나 정신적으로 성숙해야 하며 수준 높은 생활력과 그리고 몸에 밴 부지런함이 있어야 하는지. 혼자서 의지를 갖고 아가와 함께하는 일상을 힘 있게 꾸려나가며 가족들의 일상의 중심을 잡는 일은 앞으로도 잘해나갈 자신이 없다. 직장에서 일을 통해 얻는 보상과 성취들을 통해 자아를 실현하고 인정욕구를 채우며 살아온 나는 아가와 24시간 함께하는 삶은 딱 1년이면 되었다는 것을 어느 모로 봐도 알 수 있었다. 다시 복귀할 준비를 해야 한다는 걸 온몸으로 알았다.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그 모든 것이 말하고 있었다.
그래서 아가와 함께 몇 년간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엄마들이 대단하다고 생각을 한다. 하지만 모두가 그렇게 할 수 있는 건 아니므로 아가를 데이케어에 맡기고 직장에 출근하는 게 전혀 엄마가 미안할 일이 아니다. 그리고 아가의 영양과 발달이 중요하지만, 풀타임으로 일을 하면서 놓치는 것들이 종종 생길 수 있고 그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미디어든 옛날 어르신들이든 또래 맘들이든 누군가가 엄마의 불안과 죄책감을 매개로 삼아 '엄마는 ~해야 돼'라는 폭력의 틀을 씌울 때마다 나는 우리 직장에 있는 다양한 연령대의 엄마들을 보면서 힘을 냈다. 아이가 크면서 엄마를 필요로 하는 순간에 최대한 있어주려고 노력하고 일과 육아를 그리고 삶을 저글링 하는 그들을 보면서 나도 할 수 있겠구나, 하는 힘이 차올랐다. 내가 하는 일도 사랑하고 우리 가족도 사랑하는 것, 도저히 양립할 수 없어 보이는 그 두 가지를 균형 맞춰서 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내 주위에 너무너무 많으니까. 일을 사랑하고 잘하려고 할수록 '자아'가 높아져서 오히려 가족이나 주변사람들에게 잘 못하게 되는 게 아니라 일에서 쓰는 에너지가 원동력이 되어 가족에게 쓸 에너지가 되어주고, 결국 그 힘으로 내 삶이 더욱 탄탄해지는 선순환이 일어나고 있었다. 물론 일과 삶이 안정되지 못하고 때때로 균형이 깨지는 상황이 발생하면 그대로 좌절하고 힘들어하겠지만, 그건 잠깐이고 또다시 균열을 메꾸면서 더욱더 단단해지는 '회복탄력성'이 그들에게 있었다. 그리고, 그런 것들은 잘 전파된다.
그래서인지, 나는 가족 중 누군가 아플 때도 내가 아픈 것처럼 쓸 수 있는 케어러를 위한 병가를 쓰기 위해 내가 조금 몸이 안 좋아도 비타민을 때려먹으며 버티고, 미래를 바라보는 눈이 생겼다. 날씨가 추워지면 다시 데이케어에 아픈 아가들이 하나둘씩 오기 시작하면서 우리 아가도 옮아올 테니... 그날이 오기 전까지 병가는 아껴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