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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심 Feb 05. 2020

이제 아무래도 상관없으니 애만 잘 키우고 싶어


코스메틱 회사에서 디자이너로 일하는 언니가 있었다. 언니는 내가 아는 가장 세련된 커리어 우먼이었다. 누가 화장품 회사 직원 아니랄까 봐 어디 하나 들뜨거나 밀린데 없이 찰떡같은 메이크업. 옷장에 후드티, 보세 옷 같은 건 절대 취급 안 할 거 같은 깔끔한 정장 패션. 언니는 그런 딱 떨어지는 포멀함이 잘 어울리는 직장인이었다. 퇴근시간이 다가올수록 다크닝 때문인지 개기름 탓인지 나는 출근할 때 얼굴, 퇴근할 때 얼굴 완전 딴판인데, 언니는 이상하게 저녁에 만나도 지금 막 외출한 사람처럼 흐트러짐이 없었다. 나만 일하고 온건가. 신입생이 졸업반 언니를 보듯, 나는 언니가 닮고 싶었다.

언니는 소개팅 4개월 만에 결혼을 속행했다. 그리고 결혼 며칠 전 아기를 가졌다는 사실을 알았다. 언니는 신혼여행을 다녀와서 여행 내내 얌전히 누워있기만 했다고 속상해했다. 형부는 혼자 노느라 심심했다고 했지만 사진 속의 그는 누가 봐도 잔뜩 신이 난 얼굴로 언니를 향해 웃고 있었다. 내가 취업에 헤매는 사이, 언니는 배가 불렀고 아이를 낳았다. 결혼도 하기 전이라 나는 언니가 엄마가 됐다는 소식이 사실처럼 느껴지지 않았다. 인생에서 두 단계나 먼저 앞질러간 언니가 너무 아득히 멀게 느껴지는 바람에 어설프게 축하 인사를 건넸다.       

조카가 태어난 지 채 30일도 안됐을 때, 언니네 집을 찾았다. 언니는 말도 못 하게 부어 있었다. 세련된 도시녀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민낯의 푸근한 동네 아기 엄마가 되어버린 언니가 처음엔 너무 어색했다. 나는 행여나 이런 생각을 들킬까 봐 생긴 게 다 똑같은 신생아 얼굴에서 벌써부터 콧대가 완성됐네, 머리털이 풍성하네 각종 칭찬을 쏟아내며 정신없이 굴었다. 사실 나는 생애 한 달을 맞은 조카보다 언니의 퉁퉁 부은 손목과 발목, 늘어진 뱃가죽, 뒤뚱뒤뚱 걷는 걸음걸이가 훨씬 더 신경 쓰였다. 다행히 언니는 출산휴가, 육아휴직 다 쓰고 복귀할 예정이라고 했다. 둘째는 없을 거라는 말도 덧붙였다.  

살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났다. 그 사이 나는 새댁이 됐고 조카는 5살이 되었다. 아이 동반 모임에서 오랜만에 언니를 다시 만났다. 언니는 화장법, 옷차림이 달라졌지만 얼추 원래 모습대로 돌아와 있었다. 나는 언니 좀 쉬라고 하고 애기랑 잘 놀아주고 싶었는데, 조카는 잠시 나에게 관심을 주다가도 이내 언니만 찾았다. 언니는 데면데면 애를 보는 것도 아닌 것도 아닌 나에게 다가와 아이랑 놀아주는 시범을 보여줬다. 나는 회사는 다닐만하냐고 물었다. 언니는 최근에 일이 적고 덜 중요한 부서로 자진해서 옮겼다고 했다. 그리고 ‘이제 내 경력은 아무래도 상관없으니 애만 잘 키우고 싶다’고 했다.

왜 언니는 아무래도 괜찮은 거야? 기회를 봐서 물어보려고 했는데 아이가 울음을 터뜨렸다. 언니가 황급히 둘러업고 자리를 떴다. 그렇게 폭풍 같은 모임이 끝나고 사계절이 지났다. 그리고 언니가 둘째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나는 그 작고 얇은 몸으로 치러낼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지금까지 상관있었지만 이제부터 상관하지 않기로 할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일을 나가는 것보다 두 아이를 키우는 게 낫다는 셈이 서면 언니는 직장을 그만둘까. 어째 주위에 행복한 워킹맘이 단 한 명도 없다. 주위에 있다면 제보 부탁드린다.



“너는 이제껏 누군가의 딸이었고, 누군가의 친구였고, 누군가의 선후배였으며 어느 회사의 직장인이었다. 그런데 결혼을 하는 순간 너는 누군가의 아내, 누군가의 며느리가 되었고 앞으로 누군가의 엄마가 될지도 모른다. 해야 할 역할이 늘어나는 것이다. 사람들은 보통 역할이 늘어날 때 그것 또한 잘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 다른 사람들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으려 하고, 주어진 책임과 의무를 다하려고 애쓰는 것이다. 게다가 세상은 많은 것을 잘 해내는 사람을 능력 있다고 칭찬하고 다른 이에게도 그것을 권장한다.
그러나 나는 모든 것을 잘하려 애쓰는 사람을 보면 안타깝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그러느라 자기 자신을 희생하는 사례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내가 괴롭고 힘들어도 조금만 희생하면 모두 편안하니까 내 목소리를 줄이고, 내가 먹고 싶은 것을 참고, 내가 하고 싶은 것보다 해야 할 일을 먼저 한다. 우리네 어머니들이 그렇게 살아왔다. 자식을 위하느라, 남편을 위하느라 자신을 희생하면서도 그것이 당연하다고 여겼다. 화병이 생기든 말든 자신을 방치한 채로 말이다. 심지어 세상은 그것이 진정한 모성이라고 강요하기까지 했다.
딸아, 만약 누군가 너에게 여자의 미덕을 이야기하고 모성을 운운하며 우리네 어머니처럼 살아야 한다고 말하거든 귀를 닫아 버려라. 그리고 모든 것을 다 잘할 수 없다고 잘라 말해라. 만약 상대방이 “참 못됐다”라고 말하면 칭찬으로 들어라. 그래야 많은 역할을 하면서도 중심을 잃지 않을 수 있으며, 너 자신을 지킬 수 있다.”
- 한성희의 <딸에게 보내는 심리학 편지>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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