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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심 Feb 05. 2020

내가 대체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엄마 회사 가지 말까? 돈 벌지 말고 홍심이랑 같이 있을까?”
오빠는 엄마 가지 말라고 대성통곡 중이었다. 나는 아무 말도 못 하고 멀뚱히 서서 이미 몇 차례 열렸다가 닫힌 현관문만 바라보고 있었다. 엄마가 재차 물었다. 나는 6살, 오빠는 8살이었고 부모님은 강원도에, 오빠와 나는 할머니와 함께 서울로 올라와 살고 있던 터였다. 나는 토요일에 만나 일요일에 헤어지는 엄마에게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서 꿀 먹은 벙어리처럼 있다가 종국에 이렇게 말했다.     

“아니야. 엄마 회사 가서 돈 벌어와. 빠빠이~”
엄마는 울지도 않고 세상 쿨하게 돈 벌어오라는 딸내미가 얼마나 인상적이었는지 종종 20년 훌쩍 넘은 그 날 이야기를 한다. 나도 한참 어릴 때지만 기억나는 일이라 같이 웃는다. 역시 나는 자본주의를 일찍 깨우쳤어. 아주 장해. 우리 모녀가 수시로 꺼내는 단골 에피소드. 나는 어린 내가 귀엽기만 했다.    

그런데 30대로 접어들고 나서 이 추억의 끝 맛이 묘해졌다. 자기 품에서 온 몸을 활처럼 뒤로 젖힌 채 세상 서럽게 울어대는 아들을 쳐다보던 엄마의 복잡한 얼굴이 떠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토끼 같은 자식새끼 떼어 놓고 밥벌이를 위해 떠나야만 하는, 대체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이렇게 살아야 하나 싶은, 내 아이들에게 미안하고 또 미안한 엄마의 얼굴. 흐릿한 표정이 카메라 초점을 맞춘 듯 선명해졌다. 정말 기억이 난 건지 아니면 기억을 메울 만큼 너무 많이 알아버린 건지 알 수 없었다.


“‘이상적인 근로자’는 언제든 일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으로 정의되고, ‘좋은 어머니’는 언제든 자녀를 돌볼 수 있는 사람으로 정의되기 때문에 사회적 이상이 충돌해서 두 그룹의 정체성은 위기에 처해 있다. 따라서 이상적인 직장 여성이라면 항상 곁에 있지는 않더라도 자녀가 잘 지낸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 이상적인 직업인의 전형을 거부하고 경력을 느슨하게 추구하거나 추구하지 않는 여성은 자신들이 타협한 결과가 가족의 이익에 필요하다는 점을 입증해야 한다. (중략)

오늘날 소위 ‘좋은 어머니’는 항상 자녀 곁에 머물면서 아이들의 필요를 헌신적으로 채워준다. 사회학자들이 ‘과잉 모성(intensive mothering)’이라고 이름 붙인 새로운 현상은 자녀에게 시간을 많이 투자하는 여성의 모습을 문화적으로 강조한다. 어머니는 자녀에게 시간과 마음을 쏟아야 한다는 기준에 따라 평가받는 까닭에 집 밖에서 일하는 어머니는 자녀에게 같은 시간을 쓰더라도 스스로 양육에 실패했다고 느낀다.”
- 셰릴 샌드버그의 책 <린 인(Lean In)>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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