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마리는 다른 집으로 보내!”
우리 아빠의 단골 멘트. 결혼 전부터 같이 산 첫째는 정상 참작해줄 테니 새로 들인 둘째는 당장 내보내라고 성화다. 두 마리는 과한 거 아니냐고 애부터 낳아야지 또 어디서 고양이를 데려 왔냐고 기가 차서 할 말이 없단다. 그리곤 몇 월 며칠까지 원래 살던 집에 돌려주지 않으면 내쫓아버리겠다고 으름장을 놓는다. 우리 집 비밀번호도 모르면서 어떻게 내쫓겠다는 건지 나는 입을 삐쭉 내밀며 못 들은 척했다.
‘설마 여행 가느라 맡겨 놓은 동안 진짜 버리면 어떻게 하지. 그러면 당장 찾아내라고 울고 불고 난리 쳐야지. 버리기만 해 봐라. 내가 가만히 있나. 어디 한번 해보라지.’
귓등으로도 안 듣는 딸내미를 지켜보다가 엄마도 한소리 거든다. 청소는 잘하고 있냐. 우리 집에서 아직도 고양이 털이 나온다. 매일매일 청소 안 하면 그 털 다 네가 먹는 거다. 하루 한번 꼭꼭 청소기를 돌리고 있다는데도 엄마는 노랫말을 멈출 기미가 없다. 대개 비슷한 구성과 진행이다. 후렴구(Hook)는 정해져 있다. 고양이 털이 폐로 들어가 꽂힌다. 그래서 애기한테 안 좋다. 고양이 얘기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또 들어온다. 훅하고 훅(Hook)을 날리다니 우리 엄마는 힙합을 좀 아는 것 같다.
고양이 털이 폐에 꽂힌다는 설은 어불성설이다.(라임 좀 타고 있다) 폐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입자 크기가 미세먼지나 초미세먼지만큼 작아야 하는데, 고양이 털은 육안으로 버젓이 보일 만큼 크다. 사람 몸이 고양이 털도 걸러내지 못할 만큼 허술하게 설계됐을 리 없다는 이야기다. 실제로 공기 중에 떠다니는 털을 들이마셨다고 해도 코털, 비강, 기관지를 넘어 폐까지 도달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밥알과 함께 삼켰다한들 위산에 형체 없이 녹아버리거나 맛동산의 형체로 배출된다. 그럼 내 폐와 장에 흰털이 보송보송하겠다고 말이 되는 소리를 하라고 해도 엄마는 들을 생각이 없다. 아예 말이 안 통한다. 이 비과학적인 논쟁을 하고 있노라면 우리 엄마가 지난 40년간 의료계에 종사했다는 사실이 거짓말 같이 느껴진다. 이것 참 난감한 노릇이다.
고양이에 관한 괴담은 끝이 없다. 개중에 임산부가 고양이를 키우면 유산 위험이 있다는 설도 있다. 이쯤 되니 신혼부부와 고양이를 떼어 놓으려는 정치단체가 있다고 의심될 정도다. 이런 뜬소문이 퍼지게 된 이유는 임산부가 톡소플라즈마(Toxoplasma gondii)라는 기생충에 감염되면 태반을 통해 태아에게 전달되어 유산으로 이어질 수 있는데 한 보도자료에서 감염 주범으로 고양이를 지목했기 때문이다. 물론 아예 없는 말은 아니다. 이 기생충이 병원성 있는 성충으로 성장할 수 있는 유일한 동물이 바로 고양잇과 동물이다. 단, 집고양이가 생식, 토양 등을 통해 톡소플라즈마에 노출되어야 하고 마침 체내에 항체가 없던 지라 성충을 분변으로 배출하게 되었는데, 또 때마침 가족 모두 자리를 비워 24시간 이상 청소하지 않고 방치되다가 난데없이 임신 초기 집사가 나타나 분변을 손으로 집어 먹어야 감염 확률이 비로소 10% 정도이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고양이에 의한 유산은 1건도 보고되지 않았다. 이 희박한 가능성에 기대어 고양이를 멀리하는 것보다 회사를 때려치우는 것이 더 안전해 보인다.
나도 한 가지 걱정되는 부분이 있긴 하다. 아기가 울거나 소리 지르거나 같이 놀자고 덮치는 바람에 고양이가 놀라는 경우다. 고양이가 깜짝 놀라 도망가다가 우연히 아이가 다칠 수 있다. 나도 갑자기 물건이 떨어져서 품에 있던 고양이가 발톱 자국을 내며 달아난 적이 있다. 아프긴 한데 누굴 탓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닌 듯싶다. 그저 아이 곁을 지키며 나와 다른 종과 함께 살아가는 법, 상대의 언어로 사랑을 표현하는 법을 알려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인 것 같다. 고양이도 안다. 자기 가족에게는 절대 이유 없이 발톱을 드러내거나 솜방망이질을 날리지 않는다. 꼬리로 바닥을 내리치며 귀찮게 하지 말라고 경고하는데도 불구하고 귀엽다고 발도 만지고 배도 만지다가 종종 물리곤 하는데 츄르 봉지를 뜯어먹을 때처럼 무는 힘이 세지 않다. 가끔 힘 조절을 못해 아팠겠다 싶으면 미안하다고 핥아주기도 한다. 다 느껴진다. 분명 내 아이도 느낄 것이다.
아이와 고양이를 함께 키우면 아이 두뇌 및 정서 발달에 좋다고 한다. 면역력도 높아져서 아토피, 천식 같은 알레르기 질환이 발생할 확률이 낮아진다고 한다. 이런 연구결과를 일일이 열거하지 않더라도 고양이를 들인 이상 새로운 가족이 생겼다고 기존 가족을 내칠 수는 없다는 게 내 생각이다. 아이에 대한 고민이 무거운 만큼 고양이에게 책임감을 느낀다는 것을 알아주지 않아도 좋으니 사료값이나 모래값을 보태줄 생각이 아니면 남의 가족 걱정은 좀 넣어두면 좋겠다. 부부, 고양이 두 마리 그리고 어쩌면 미래의 아이까지 나의 가족이고 소관이다. 고양이 카페에 육아 육묘 일기 게시판이 있다. 아이와 고양이가 나란히 누워 잠들고 서로 지그시 바라보는 사진들이 올라온다. 그 예쁜 모습을 보며 용기를 얻는다.
“여보, 결혼하면서 내가 키우던 고양이 데려온다고 했을 때 어땠어?”
“처음에 첫째 분양받을 때 내가 같이 데리러 갔잖아. 그래서 당연히 우리 둘이 키운다고 생각했지. 걱정 반 기대 반이었던 거 같아. 어릴 때 고양이에 대한 안 좋은 선입견이 있었던 거 같은데, 여보가 계속 사진 보내주면서 오해도 많이 풀리고 걱정이 많이 줄었는데도 불구하고 내가 과연 새로운 동물이랑 잘 지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은 있었네.”
“맞아. 여보는 강아지만 키워봤지 고양이는 키워본 적 없잖아. 강아지랑도 그닥 안 친하고.”
“우리 집 강아지는 엄마만 좋아해서 가끔 날 물거든. 그러다 보니까 내가 동물이랑 가깝게 지내본 적이 없는 거야. 평생 같이 살아갈 반려동물이 생기는데 개인적으로 내가 되게 잘 해낼걸 알고 있었어.(웃음)”
“나중에 애기랑 고양이랑 같이 키우는 건 어떻게 생각해?”
“매우 좋지. 애기도 어릴 때부터 같이 커온 반려동물이 있다고 하면 긍정적인 영향이 더 클 거 같거든. 그리고 사실 지금은 둘이 따로 키운다는 선택안이 상상이 안되네. 애를 키운다고 해서 고양이를 보낸다는 게 상상이 안돼.”
“만약에 애기가 고양이 알레르기가 있으면 어떻게 하지?”
“알러지도 시간 지나면서 괜찮아지기도 하던데.. 그래도 정 안되면 그때 가서 고민하지 않을까? 알러지도 선천적인 영향이 크지 않나? 우리 둘 다 알러지가 없으니까 자식도 없지 않을까 생각해.”
“맞아. 나는 그런 상황 상상도 하고 싶지도 않아.”
- 남편과의 대화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