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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심 Feb 08. 2020

안전한 집을 마련할 수 있을까


위험한 세상이다. 길 가다가 묻지 마 폭행을 당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은 세상. 성인이 될 때까지 큰 병이나 사고 없이 성장한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새삼 깨닫는다. 부모에게 버림받거나 학대받지 않은 행운, 심한 따돌림이나 성폭행을 당하지 않은 행운. 수많은 행운이 겹겹이 쌓여서 대개 별 볼 일 없지만 가끔 썩 괜찮은 내가 되었다는 사실을 알고 난 뒤, 나는 가슴을 쓸어내렸다.  

신혼집은 먹자골목 대로변에 있었다. 제대로 둘러보지도 않고 덜컥 계약한 집이었다. 처음으로 밤 산책을 나왔을 때 나는 낮보다 밝은 밤 풍경에 적잖이 놀랐다. 술집, 노래방, 모텔 간판이 휘황찬란했다. 술 취한 사람들이 무리 지어 오가고 담배연기가 꼬리처럼 따라붙었다. 나는 편의점 앞 테이블에 앉아 줄담배를 피우는 사람, 골목에 바짝 붙어 오줌을 휘갈기는 사람, 잔뜩 취해 소리치며 소란을 일으키는 저 사람이 혹시라도 나를 쫓아오진 않을까 해치려하지 않을까 두려웠다. 나는 그날부터 밤 산책을 나가지 않았다.

길 안쪽으로 조금만 들어가면 빌라촌이 있었다. 어린아이들이 많았다. 인도 차도 구분 없는 도로 위를 비틀대는 어른들 사이로 위태롭게 빠져나가는 아이들이 자꾸만 눈에 띄었다. 나는 잔뜩 올라간 어깨, 분주한 걸음걸이에서 아이들도 나처럼 위협을 느끼고 있음을 발견하곤 했다. 그때마다 안전한 환경에서 아이를 키우고 싶다고 생각했다. 내가 꽁으로 얻은 행운은 모두에게 주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세상은 점점 위험해지는데 부모는 핸드폰 위치추적 기능 하나에 의지해야 한다는 사실이 슬펐다. 안전한 동네에 집을 마련할 수 있는 부모가 될 수 있을지 모른다는 것도 슬펐다.


“언니, 정말 끔찍한 일이었어. 초등학교도 입학하지 않은 남자아이가 넘어진 자리 위로 트럭 바퀴가 지나간 일은.(중략)
뒤따라오던 아이의 어머니는 그 현장을 보고 달려와 절규하면서 여기저기 벚꽃처럼 흩날린 아이의 부서진 뇌 조각을 쓸어 담으면서 정신없이 아이의 이름을 외쳤다고 해. 나는 선배가 울음을 참으며 찍어 온 현장 사진을 끝내 보지 못했어.(중략)
나와 나이가 비슷한 어머니, 아니 그 여자. 말 한마디도 통하지 않는 한국으로 시집와서 한국에서도 남쪽, 그 남쪽 중에서도 못 사는 동네, 그 못 사는 동네에서도 손에 꼽힐 정도로 낙후된 집, 그 집에서 말이 잘 통하지 않는 어린 두 아이를 남편 없이 키우다가, 상상하기도 어려울 만큼 끔찍한 사고로 큰 아이마저 잃게 된 여자. 언니, 난 들은 적도 없는 그 어머니의 절규가 들리는 듯해 때때로 눈물이 고이는 날이 많았어.
아이가 쓰러진 곳엔 흰색 스프레이가 뿌려졌고 사람들은 그 흔적을 보고 수군거렸으며, 한동안 동네 부모들은 어린아이와 함께 길을 나설 때면 아이의 손을 꼭 잡고 지나갔어. 비가 오고 바람이 불면서 뿌려놨던 스프레이가 희미해지는 동안 동네 사람들은 다른 이야깃거리에 눈을 돌렸고 아이들은 늘 그렇듯 방실방실 웃으며 잘 지냈지. 우리는 어느새 인구가 한 명 줄어버린 관내를 전과 다름없이 순찰했고 세상 그 무엇도 바뀐 것 하나 없이, 멈춰버린 곳 없이 그렇게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가더라.”
- 원도의 <경찰관 속으로(언니에게 부치는 편지)>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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