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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심 Feb 08. 2020

임신을 하면 살이 찐다고 들었다


내 적정 몸무게는 52키로, 미용 몸무게는 48키로이다. 갑상선 항진증이 오고 나서 앞자리가 4로 바뀌었다. 그 덕에 태생부터 하비인 내가 처음으로 반바지도 입고, 화이트 진도 입고, 앉을 때 허벅지가 눌려도 개의치 않았다. 호르몬이 적정 수치로 돌아오면서 1년 천하로 끝나긴 했어도 자신감 뿜뿜 넘치던 시절이었다. 적정 몸무게 때도 나쁘지 않았다. 옷은 스몰 사이즈 고르면 얼추 다 맞았다. 사진을 찍어도 눈에 띄게 내가 마음에 안 들거나 하지 않았다. 엄청 마르지는 않았지만 딱 붙는 옷을 입으면 적당히 날렵한 느낌을 주는 태가 났다.

그런데 결혼하고 적정 몸무게에 추가로 살이 더 붙었다. 회사에서 간식 먹고 남편이랑 야식 시켜먹은 결과다. 시나브로 한 겹 한 겹 덧발라지더니 배가 답답한 지경이 됐다. 원래 입던 옷들이 꽁기고 불편해졌다. 안 그래도 짜증 나는데 포동포동해진 볼살을 보고 사람들이 임신했냐고 묻기 시작했다. 결혼하고 나서부터 살이 올랐다 싶으면 임신이라고 단정 짓는 무례함에 화가 나면서도 이내 자신감이 곤두박질쳤다. 이제 아가씨가 아니라 아줌마로 보이는 건가 싶어 서글퍼졌다. 결혼식 사진 찍는데 깡 마르고 얼굴이 쥐콩 만한 하객들을 피해서 자리 잡느라 진땀을 뺐다. 그냥 사람들이 쟤는 왜 저렇게 살이 쪘냐고 손가락질하는 듯한 생각이 한동안 이어졌다.

그렇게 생각할 필요는 없다는 걸 알고 있다. 사람들은 나한테 그렇게 관심이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필연적으로 다이어트를 결심하게 된다. 몸무게에 연연하지 않고 눈대중으로 살핀대도 지금 모습을 용인하기 어렵다. 아마도 이 공포에 가까운 불안감은 ‘고3 몸무게에 근접하고 있으니 주의하라!’는 강력한 자가 경고에서 비롯된 듯싶다. 수능 증명사진은 물론 친구들과 찍은 사진도 남김없이 인멸해버린 그때로 돌아가는 게 싫어서 나는 몇 번째인지 모를 다이어트를 다시 시작하게 됐다. 옛날과 달리 지금은 맛있는 다이어트 도시락부터 주문하고 관절에 무리가 가지 않는 운동을 선호하게 되었다는 차이가 생겼을 뿐, 의지는 여전했다.

임신을 하면 10~15키로, 최대 20키로까지 살이 찐다고 들었다. 그러면 나는 70키로까지 불어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와, 생각만 해도 아찔하다. 내가 그토록 염려하는 고3 몸무게도 훌쩍 넘는, 난생처음 보는 숫자를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벌써부터 두근두근 거린다. 내가 연예인도 아니고 애 낳고 수유한다고 살이 쭉쭉 빠질 것 같지도 않은데, 원래 모습대로 되돌아갈 수나 있을지 걱정이 앞선다. 내가 나의 신체 변화에 적응 못하겠는데 남편이 변한 나를 여전히 예쁘게 바라봐줄지도 걱정이다. 사실 아이를 품은 아내의 모습은 아름답지만 예쁘지는 않지 않은가. 호르몬 파티로 얼굴은 푸석해지고, 여드름은 올라오고, 배에는 튼살이 죽죽 그어질 테니까 말이다.

요새는 임신 중에도 체중 관리를 한다고 하고, 인스타에 떠돌아다니는 만삭 사진을 봐도 다들 배만 불뚝 나왔지 팔다리는 늘씬해서 약간의 희망을 가져 본다. 그런데 어쩐지 남의 일인 것만 같다. 몸이 정상으로 돌아오기까지 족히 1년 넘는 시간 동안 마음에 안 들더라도 몸조리만 신경 써야지, 남의 시선 의식하지 말고 나를 긍정해야지 다짐해본다. 살이 많이 오르기 전에 시작점이라도 낮추기 위해, 살이 덜 찌는 체질을 만들기 위해 나는 오늘도 운동을 가고 식성을 통제한다. 임신하면 고삐 풀고 먹고 싶은 거 마음껏 먹어야지 기대했던 나 자신은 조용히 들어간다.


“첫 애 가지셨을 때 몇 키로 정도 살이 찌셨나요?”
“50키로에서 68키로까지 불어 났으니까 18키로 늘었네요.”
“갑자기 달라진 몸을 받아들이는데 어려움은 없으셨나요?”
“상상 그 이상으로 불편했죠. 전 살찐 후 모습을 받아들이지 않았어요. 그 전과 똑같이는 못 가더라도 갈 수 있게 노력했어요. 식이조절, 운동, 마사지, 디톡스 등등 정말 안 해본 게 없는 거 같아요.”
“그래서 지금 이렇게 날씬하신 거구나! 정말 대단하신 거 같아요.”
“옛날에 비하면 암 것도 아니에요. 이 사진 좀 봐봐요.”
“와우! 저는 태어나서 배꼽티에 핫팬츠 입어본 적 없는데! 이렇게 입으면 배탈 나지 않나요?”
“이 때는 이렇게 입고 싶었나 봐요.(웃음)”    
- 아들 하나 키우는 동네가게 원장님과의 대화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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