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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심 Jan 31. 2020

미안한데 나는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아


우리 엄마는 항상 집에 없었다. 태백, 대전, 순천 각 도시를 돌아다니며 지방 근무를 했고 그나마 집 근처에서 일할 때면 새벽같이 나가 저녁 늦게 들어오셨다. 오빠와 나를 살뜰히 보살피지는 못했지만 실내화만큼은 손수 빨아 주었다. 실내화가 식물처럼 자라는 동안 엄마의 종아리엔 퍼런 핏줄이 올라왔다. 엄마는 혼자 힘으로 너네 키우고 교육시키려면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아빠가 나 몰래 퇴사하고 퇴직금 다 주식으로 날려먹었을 때 내가 너네 버리고 떠났으면 이렇게 클 수 있었겠어?”
이 매번 똑같은 레퍼토리를 들을 때면 나는 그냥 엄마가 그때 떠났으면 어땠을까 생각하곤 했다. 나와 오빠는 엄마의 건강과 인생을 담보 잡으면서 까지 크고 싶진 않았다.  
엄마는 이렇게 자식 하나만 바라보고 살아봤으면서 또 그게 얼마나 소득 없는 장사인지 잘 알면서 왜 자기 딸에게 망설임 없이 부모가 되라는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다.
“엄마는 그렇게 힘들게 키워 놓고 왜 자꾸 애 낳으라고 해? 오빠랑 나 다 키워 놓으니까 그새 까먹었어?”
“그냥... 뿌듯해”
나무라듯 물은 내가 다 민망하게 엄마가 배시시 웃었다.   
엄마 미안한데 나는 엄마처럼 살고 싶지 않아. 난 엄마의 과거가 안쓰럽고 내 미래가 애틋하다.

“우리 집이 얼마나 힘든지 알아? 너까지 보태지 마!”
우리 집은 돈이 없었다. 그래서 우리 집 형편에 재수하는 통에 1년 내내 천 원짜리 김밥만 먹었다. 그리고 대학교, 대학원에 다니는 6년 동안 악착같이 성적 장학금을 받았다. 딱 한번 어느 교직원 앞에서 우리 집이 얼마나 가난한지 설명한 대가로 복지 장학금을 받았다. 딸이 엄마에게 만원만 달라고 하는 게 지 애비 닮아서 돈 뺏어간다는 말을 들을 일은 아니라는 걸 나중에 알았다.

결혼하고 맞벌이하면서 비로소 사정이 좋아졌다. 백화점 1층에서 화장품도 사고 필라테스도 하고 때 되면 여행도 간다. 요즘은 돈 말고 물건, 경험이 주는 가치를 생각해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그래서일까. 아이 때문에 생애 처음 가까스로 얻은 여유를 내어줘야 한다는 게 언제 다시 되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게 무섭다. 내가 뭘 하고 싶은지, 뭘 갖고 싶은지 조금 솔직해지기 시작했는데 영영 나는 나에게 제일 좋은 거 다음 그다음만 주게 될까 봐 두렵다. 이게 욕심인 걸까.  



“오빠, 미니쿠퍼 연말 할인해서 2,900만원이래. 싼 거 아닙니까?”
“미니쿠퍼를 왜 삼?”
“아니 그냥 오늘 스타필드 갔다가 미니쿠퍼가 있길래. 할아버지(엄마, 오빠에 이어 현재 내가 타고 다니는 2003년식 승용차 애칭)가 워낙 노쇠해서 가끔 무섭단 말이야.”
“미니쿠퍼는 이쁘기만 하고 세컨카로는 몰라도.”
“이쁘면 됐지. 껄껄. 언제 이쁜 거 타보겠어.”
“차라리 그 돈 모아서 쏘렌토나 싼타페를 사시게나. 나중에 유모차 실으려면.”
“아니, 나는 지금 미니쿠퍼 갖고 싶단 말이야!”
“...(세상 한심하다는 눈빛)”
- 친오빠와의 대화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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