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홍심 Feb 08. 2020

딸에게 보내는 심리학 편지

세번째 밑줄


단언하건대 지금의 현실은 20대의 잘못이 아니다. 잘못이 있다면 세계 경제가 전반적으로 불황을 겪고 있는 이때, 그 여파에 시달리고 있는 대한민국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이 자라는 동안 한국 경제는 내내 불황이었다. 더군다나 그들은 어려서부터 경쟁 체제에 냉혹하게 내몰렸다. 그 결과 ‘죽을 만큼’ 노력해야 ‘겨우’ 평범하게 살 수 있음을 몸소 경험했다. 아무리 노력한들 부모 세대만큼 살기도 결코 쉽지 않다고 판단을 내린 것이다. 그래서일까. 그들은 과거 20대들과는 다르게 매우 현실적이다. 실현 가능한 꿈만을 꾸며 ‘가성비’가 만족스러운 일을 우선으로 한다. 지금의 노력이 먼 훗날의 결실로 돌아올 거라는 말을 믿지 않고, 눈앞의 확실한 행복을 더 중시한다. 그런 그들에게 기성세대는 꿈이 없다며 한숨부터 내쉰다. 하지만 어떻게 그들을 비난할 수 있으랴. 그들은 자신들이 처한 환경에서 가장 합리적인 길을 택한 것일 뿐이다.


과연 현재 20대들이 어떤 미래를 열어갈지 엄마는 모르겠구나. 뭐든 양면성이 있듯이 낙관적인 부분도, 비관적인 부분도 있을 테지. 그리고 나는 그들이 어떤 방식으로든 건강하게 미래를 꾸려 나갈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다만 정신과의사로서 해 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냉소를 조심하라는 거야. 만약 큰 꿈을 꾸지 않는 이유가 ‘해 봤자 뭐해. 어차피 안 될 게 뻔한데’ 하는 심정이라면, 그러니까 사실은 보란 듯이 잘살고 성공하고 싶은데 안 될 거라는 생각에 지레 포기하는 거라면, 다시 한번 생각해 봤으면 좋겠구나.


꼭 이루고 싶은 꿈이 있지만 환경적인 상황 때문에 그 꿈을 이룰 수 없을 때, 사람들은 좌절감을 해소할 방어기제로 냉소를 택한다. 꿈의 가치를 격하해 애쓸 필요가 없는 대상으로 만드는 것이다. “여행 가서 뭐해. 어차피 고생만 할 걸.” “변호사 돼서 뭐해. 요즘은 변호사들도 실업자가 많다던데.” 이런 말들이 바로 냉소적인 반응이라고 할 수 있다. 욕망의 대상을 깎아내림으로써 자신의 초라함을 감춰 보려는 태도다. 그래서 냉소를 택한 이들은 웬만한 일은 전부 시시해하고 비웃는다.


그런데 냉소가 정말 무서운 게 뭔지 아니? 힘든 상황 속에서도 어떻게든 좌절을 이겨 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언젠가 한 발자국이라도 앞으로 나아가게 되지만 냉소로 자신을 무장한 사람은 그저 제자리만 맴돌 뿐이라는 것이다. 나중에는 해 본 게 없어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인간이 되어 버리고 만다. 그러니 아무리 힘들어도 냉소적으로 살아서는 안 된다. 냉소야말로 절망에 빠진 인간을 벼랑 끝으로 몰고 가 결국 스스로를 망치게 하는 주범이기 때문이다.


- 한성희의 책 <딸에게 보내는 심리학 편지>(메이븐) 중에서 -



매거진 < 표지와 밑줄친 문장들> 책을 읽으면서 밑줄친 문장들을 모으고, 표지   그려 같이 껴넣는 개인 수납공간입니다. 요새 시간이 많아서 누가 보면 배곯고 다닌 사람처럼 만나는 족족 책을 해치우고 있거든요.  마음을 요동치게  문장이 누군가에게도 수신되기를 바라면서 칸칸이 모아놓을 예정입니다. 고상한 취향을 보여주기 위해 그럴싸한 문장만 골라낼 생각은 없습니다만, 예쁜 표지를 만나면 표지가 예뻐서 올리는 주객전도가 일어날  있습니다.  1 발행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경찰관 속으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