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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심 Feb 11. 2020

책갈피의 기분

네번째 밑줄


편집자의 통화 #1


먼지 : 네, 출판사 김먼지입니다.
독자 : 저어, 내가 ‘인생의 마지막에 읽는 책’이라는 걸 샀는데, 이게 찢어져서 왔소.
먼지 : 어머, 어르신. 너무 죄송합니다. 구입하신 서점에서 바꾸실 수 있어요.
독자 : 그런데 내가 이틀 뒤에 일본으로 출국을 하는데, 그 서점에 찾아가서 바꾸기에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서….
먼지 : 아, 그러시군요. 그러면 혹시 찢어진 책 사진을 찍어서 주소랑 같이 제게 보내주실 수 있으신가요? 확인 후 바로 보내드릴게요.
독자 : 꼭 좀 부탁합니다. 아내에게 꼭 선물하고 싶은 책이라서….
먼지 : 네네, 그럴게요!

잠시 후, 문자로 사진은 안 오고 주소만 달랑 왔다. 연로하셔서 깜박하셨나 보다 하고 그 주소로 새 책을 보내드렸다. 그 할아버지가 책도 사지 않고 그런 식으로 출판사로 전화를 걸어 새 책을 받아낸 뒤 중고로 파는 유명한 상습범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건 몇 개월이나 지난 뒤였다. 할아버지, 출판사 코 묻은 책 중고로 팔아서 살림살이 좀 나아지셨습니까?




편집자의 통화 #2


먼지 : 네, 출판사 김먼지입니다.
독자 : 저어… 내가 『인생의 마지막에 읽는 책』이라는 걸 샀는데, 이게 찢어져서 왔소.
먼지 : …저기, 어르신.
독자 : 예?
먼지 : 동에 사시는 어르신 맞으시죠?
독자 : ….
먼지 : 지난번에도 저희 출판사에 전화해서 책 받아가셨어요. 공짜로요. 그런데 어르신, 그거 ‘중고나라’에 파신다면서요? 출판사에 소문 이미 많이 난 거 아세요?
독자 : 허허허, 내가 돈이 없어서 그랬어요. 미안합니다!
먼지 : 다시는 그러지 마세요, 어르신.
독자 : 내가 이다음에 꼭 갚겠습니다! 허허허!


- 김먼지의 책 <책갈피의 기분>(제철소) 중에서 -


매거진 < 표지와 밑줄친 문장들> 책을 읽으면서 밑줄친 문장들을 모으고, 표지   그려 같이 껴넣는 개인 수납공간입니다. 요새 시간이 많아서 누가 보면 배곯고 다닌 사람처럼 만나는 족족 책을 해치우고 있거든요.  마음을 요동치게  문장이 누군가에게도 수신되기를 바라면서 칸칸이 모아놓을 예정입니다. 고상한 취향을 보여주기 위해 그럴싸한 문장만 골라낼 생각은 없습니다만, 예쁜 표지를 만나면 표지가 예뻐서 올리는 주객전도가 일어날  있습니다.  1 발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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