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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심 Apr 02. 2020

당신이 옳다

일곱번째 밑줄


국가는 독립적인 영토를 가진다. 자기만의 역사, 법, 언어를 가지고 있고 자기들만의 문화와 풍습을 공유한다. 나라마다 그들 고유의 음식 문화도 다르다. 기후도 다르다. 추운 나라도 있지만 1년 내내 더운 나라도 있고 안정적인 지질 조건을 가진 나라도 있지만 잦은 지진과 태풍으로 순식간에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나라도 있다. 지하자원이 보물처럼 땅속에 그득하게 담겨 있는 나라도 있고 풀 한 포기 제대로 나기 어려운 척박한 땅이 국토의 대부분인 나라도 있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국가처럼 각각 모두 고유하고 개별적인 존재들이다. 나는 나 아닌 다른 사람과 전혀 다른 개인의 역사를 가진다. 성격과 기질도 다르다. 심지어 일란성 쌍둥이나 샴쌍둥이도 그렇다. 말투나 심성, 취향이나 취미, 식성이 다 다르다. 같은 나라가 둘 존재하지 않듯 같은 사람이 둘 존재하지 않는다. 천만 인구를 가진 나라의 대통령 10명을 합해야 1억 인구를 가진 나라의 대통령 1명과 동등한 자격을 갖지 않는 것처럼 작든 크든 국가 대 국가는 일대일의 존재감을 갖는다. 하나의 우주로 일컬어지는 사람은 더 말할 게 없다.


국가 간에는 국경이 있다. 국경은 한 국가의 물리적 정체성의 마지노선이다. 타국의 국경을 무단으로 침범한다는 건 상대 국가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존중할 마음이 없다는 메시지다. 이때는 모든 걸 동원해서 이를 막거나 맞서 싸워야 한다. 타국의 도발을 막지 못하면 목숨을 빼앗기거나 유린당하며 비참한 삶을 살 수밖에 없다. 국경이 튼튼해야 오롯이 내 삶을 살아갈 수 있다. 그래서 각국의 국경에는 군인들이 중무장을 한 채 엄중한 경계를 하고 있다.


국가의 국경처럼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경계가 존재한다. 모든 인간이 개별적인 존재라는 것은 나와 너 사이에 둘을 구분하는 경계가 있다는 걸 의미한다. 내 신체의 경계가 피부인 것처럼 말이다. 국경 수비대가 하는 일은 사람 사이의 경계에서도 반드시 필요하다. 그런데 사람 사이의 경계는 눈에 보이지 않아서 지키는 일이 어렵다. 경계를 인지할 수 있어야만 나도 지키고 상대방을 침범하지 않을 수 있다.


자신의 경계가 뚫려서 피를 철철 흘리면서도 내가 왜 이렇게 아픈지 모르는 경우도 많다. 반대로 내가 타인의 경계를 침범해서 마구 짓밟고 훼손하고 있으면서도 그걸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상대방을 사랑해서 그랬다는 둥 진심을 몰라줘서 답답하다는 둥 자신이 피해자인 줄 착각하는 경우도 흔하다. 본인이 그런 일을 했다는 사실조차 모른다. 사람 사이의 경계는 눈에 보이지 않아서다. 사람 사이의 경계를 지킬 수 있으려면 경계를 인식하는 일이 무엇보다 우선이다.


공감을 주고 받는 일에서도 똑같은 원리가 적용된다. 나와 너의 관계에서 어디까지가 ‘나’이고 어디부터가 ‘너’인지 경계를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너를 공감해야 할 순간인지 내가 먼저 공감을 받아야 하는 건지 알아야 너와 나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공감을 할 수 있다. 경계에 대한 인식이 있어야 공감에 대한 정확성이 높아진다.


- 정혜신의 책 <당신이 옳다>(해냄) 중에서 -


매거진 < 표지와 밑줄친 문장들> 책을 읽으면서 밑줄친 문장들을 모으고, 표지   그려 같이 껴넣는 개인 수납공간입니다. 요새 시간이 많아서 누가 보면 배곯고 다닌 사람처럼 만나는 족족 책을 해치우고 있거든요.  마음을 요동치게  문장이 누군가에게도 수신되기를 바라면서 칸칸이 모아놓을 예정입니다. 고상한 취향을 보여주기 위해 그럴싸한 문장만 골라낼 생각은 없습니다만, 예쁜 표지를 만나면 표지가 예뻐서 올리는 주객전도가 일어날  있습니다.  1 발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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