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째 밑줄
홍콩에 란콰이펑이라는 유흥가가 있다. 밤이 되면 홍콩 사람, 중국 사람, 유럽 사람, 그리고 각국의 관광객들이 몰려들어 인산인해를 이루는데, 대부분이 펍이나 바 혹은 클럽이고 시끄러운 음악들이 섞여 나온다. 개중에는 싸이의 ‘젠틀맨’, 지드래곤의 ‘삐딱하게’ 등 한국 노래들도 들린다. 그곳에서 1년 동안 케케묵었던 모든 체증과 짜증을 전부 다 풀어버리고 왔다. 돈도 적당히 흥청망청 쓰며 술을 마시고 친구도 사귀고 하면서 말이다.
“헤이 웨어 아유 후롬.”
“오우 아임 프롬 프랑스, 앤 유?”
“오 아임 코리안, 지드래곤스 네이션! 지드래곤 이즈 마이 후렌! 왓 쭐 넴?”
“아임 오뜨맨! 앤 유?”
“오뜨맨? 와우 스페셜 네임! 아임 죵민! 나이스 미 쭐!”
“미 투! 디스 이즈 마이 뿌렌!”
“와우! 뷰리풀! 웨어 아유 후롬!”
“한국 사람이에요.”
…
“지드래곤은 거짓말입니다.”
“알아요. 그럴 거 같아요. 뭐 하시는 분이세요?”
“배웁니다.”
“뭐 배우시는데요?”
“아니 배우라고요.”
“아… 못 봤는데. 엑스트라?”
“뭐 중요한가요. 들어가서 노시죠.”
“어? 권오중?”
“들어가라고.”
- 배우 박정민의 책 <쓸 만한 인간> (상상출판)중에서 -
매거진 <책 표지와 밑줄친 문장들>은 책을 읽으면서 밑줄친 문장들을 모으고, 표지 한 장 그려 같이 껴넣는 개인 수납공간입니다. 요새 시간이 많아서 누가 보면 배곯고 다닌 사람처럼 만나는 족족 책을 해치우고 있거든요. 제 마음을 요동치게 한 문장이 누군가에게도 수신되기를 바라면서 칸칸이 모아놓을 예정입니다. 고상한 취향을 보여주기 위해 그럴싸한 문장만 골라낼 생각은 없습니다만, 예쁜 표지를 만나면 표지가 예뻐서 올리는 주객전도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주 1회 발행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