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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홍택 Aug 23. 2019

지금 가장 먹고 싶은 그리움

당신의 집 밥은 어떤 모습인가요

나에게 집 밥은 그리움이다. 시작부터 간지러운 말이지만 사실이다. 오랜 유학 생활 탓에 나는 어릴 적부터 집밥에 대한 그리움이 컸다. 매해 명절을 맞이할 때에도 나는 가족들과 함께 시간을 보낼 수 없었다. 그래서 늘 영상통화를 통해 근황을 주고받으며 안부를 물었다. 부모님은 늘 “아들~명절인데 꼭 맛있는 거 챙겨 먹어”라며 타지에서 혹여나 외롭게 명절을 보낼까 염려해 돈을 부쳐주시곤 했다. 뭐, 그 상황에선 달리해줄 수 있는 게 없었지만 나는 그 돈을 받고도 ‘맛있는 음식’을 챙겨 먹진 않았다.


사실 타지에서도 충분히 명절 음식을 즐겨먹을 순 있다. 작정하고 음식을 해 먹을 수도, 돈을 주고 사 먹을 수도 있다. 특히 워낙 한국인 유학생이 많던 지역이라 ‘한식당’은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다만, 어디서 어떻게 해 먹든 ‘그 맛’은 느낄 수 없다는 걸 안다. 그게 꽤 구슬프다. 너무 어리지도, 적당히 철이 들지도 않았던 나이에 명절이면 이따금씩 혼자 울었던 적도 있었다. 나는 ‘집밥’이 그리웠다.


작년 7월, 대학 졸업 후 길었던 유학 생활을 끝맺고 한국으로 귀국했다. 덕분에 다가온 명절은 가족들과 함께할 수 있었다. 물론 여느 집들과 마찬가지로 우리 집도 특별한 건 없다. 널찍한 바구니에 하나씩 쌓여가는 갖가지 부침 전과 운이 좋으면(?) 갈비를 먹었고, 당면과 고기가 잔뜩 들어간 만두를 여럿이 둥글게 둘러앉아 함께 빚었다. 다만, 큰집이 우리 집이라 노동의 고통은 고스란히 엄마의 몫이었다. 어릴 땐 가족들이 알아서 찾아오니 그게 마냥 편한 건 줄 알았다.(머리가 크고 나서야 엄마 입장에서 그게 얼마나 큰 곤욕인지 알 수 있었다) 게다가 아버지가 육 남매라 식구끼리 모였다 하면 얼마나 부산스러울지 알법하다. 아무리 신문지를 잔뜩 깔아도 튀김을 하고 나면 여전히 반들거리는 거실 바닥과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 꼭 재료 하나가 부족해 집 앞 마트로 심부름을 가야만 했던 나. 온종일 스마트폰 게임을 하는 사촌동생들과, 보지도 않는 TV를 켜 두곤 소파에서 코를 골며 주무시는 아버지까지. 평범하기 이를 데 없는 가정이지만 평소 명절에 가족들을 볼 수 없던 내게는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한 모습이었다.  


같이 ‘집 밥’을 떠올려보자. 명절에 먹는 음식도 좋지만, 우리가 흔히 먹는 가정식은 따로 있다. 이를테면 야들야들 윤기 나는 흰 밥에 형형색색 조화로운 색감이 먹음직한 밑반찬들, 구수한 냄새와 보글보글 소리가 현관문까지 들리는 찌개까지. 저마다의 엄마표 시그니처 메뉴는 다르지만 내겐 ‘고등어조림’이 그렇다. 재밌는 건 이 음식들을 떠올리기 전 나는 그 과정이 잠시 잠깐 떠오른다. 방학이면 오래간만에 한국에 돌아와 가장 먼저 고민하는 첫 끼 메뉴 선택은 제법 신중하다. 귀국 하루 전날 행복한 고민에 답을 찾으면 여지없이 카톡을 보낸다. ‘엄마, 난 고등어조림’


저마다 집 밥을 떠올릴 때 생각나는 음식은 다를 테다. 아니, 오히려 음식보단 ‘맛’을 떠올리는 게 옳을지도 모르겠다. 비단 한국인이면 어느 정도 겹치는 메뉴가 있겠지만 같은 음식이라도 그 맛의 차이는 천차만별이니 말이다. 오랜 세월 길든 익숙한 그 맛. 어쩐지 똑같은 레시피에 똑같은 재료를 써도 좀처럼 ‘그 맛’은 흉내 낼 수 없다. 이는 다양한 사연을 뒤로하고 집밥이 그리워 엄마 손맛을 따라 해 본 경험이 있다면 이내 고개를 끄덕이지 않을까. 하루는 영상통화까지 하며 엄마의 고등어조림을 흉내 내다 모조리 태웠던 기억마저 있다. 곧 다가오는 추석에는 기필코 그 레시피를 전수받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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